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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받는 것보다 더 복된 것 (행 20: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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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것보다 더 복된 것 (행 20:31~35)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이장현 씨(51세)라는 분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날 서대문에서 손을 흔드는 여대생과 할머니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여대생은“할머니를 동대문 이대부속병원까지 모셔다 드리세요.”하면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었습니다. 택시기사는 할머니에게“참 예쁜 손녀를 두셨네요. 참 좋으시겠어요.”라며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손녀가 아니야. 지하철역 앞에서 처음 만났어. 길을 잃었다고 하니까 내 손을 잡고 택시를 잡아 주더라고. 그러면서 할머니, 예수 믿고 오래오래 사세요. 하면서 조심해 가시라고 하지 뭐유.”할머니는 그날 아침 침을 맞으러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오전 내내 시내를 헤매다가 그 학생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내릴 때 택시기사는 그 만원을 할머니의 손에 쥐어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뿌듯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이러한 사람이 많아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교훈“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미태복음 5:14~16)말씀의 의미입니다. 

20세기의 성자로 부렸던‘헨리 나우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30대에 노틀담 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예일 대학과 하버드대학교에서 신학, 상담, 영성분야를 가르쳤습니다. 나이 50세에 그는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사람들은 내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나의 영혼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라.”그는 즉시 모든 명예와 직분을 내려놓고 프랑스 파리의 한 정신장애인 공동체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습니다. 말년에 그는 세상을 향해 교훈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낮은 데로 임하는 행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실속 추구에서 사랑으로, 유명세에서 섬기는 자리로,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내려오십시오. 진정 당신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나를 위해 즉 나의 명예를 위해, 나의 욕망을 위해, 내육신의 안일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은, 내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했을 때인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교훈입니다. 본문 35절에“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설교의 한 토막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이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주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은 누가복음 6장 38절에 나타나 있는“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말씀의 인용입니다. 이 말씀은 산상수훈에 나타나 있는 8복에 이어“아홉 번째의 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 나누어 주는 것이 복이 될까요?

1. 성숙한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해지면 주는 것의 가치와 보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주는 것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산다면, 이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병적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유아기적 고착 증세”라는 것입니다. 어른이지만 일종의“성인 아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는 어른이지만 사실은 아이 같은 사람 즉“성인 아동들”로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한 가장의 가장이 되면 그 가정은 불행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한 직장의 보스가 되면 그 직장은 갈등과 수많은 불화로 가득 찰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빼앗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사람들이 어느 날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 현장을 위해서 선교헌금을 내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무척 기뻐했습니다(빌립보서 4:10~20). 그러나 그는 헌금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게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받았던 그들이 뜻있는 일을 위해 자신들을 내어주는 것을 보고 바울은 그들의 성숙에 대해 기뻐하는 것입니다. 줄 수 있다는 것이 왜 축복일까요? 줄 수 있다는 것은 성숙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이란 과일에 비유하면 잘 익은 과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잘 익은 과일은 상품가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므로 비싼 값에 팔려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레온 사울이라는 정신과의사는 <정서적 성숙> 이라는 책에서 성숙한 인간의 8가지 조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1. 독립적이며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
2. 남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
3. 협력할 줄 아는 사회적 성품을 가진 사람.
4. 자기 양심과 조화하며 느낌과 행동을 조정할 줄 아는 사람.
5. 성(性)을 건실하게 생각하며 잘 조화할 줄 아는 사람.
6. 분노와 적개심을 잘 조정할 줄 아는 사람.
7. 현실을 잘 파악할 줄 아는 사람.
8. 융통성과 적응성이 있는 사람.
성숙한 사람의 조건 중 하나가“남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어 주시는 분으로 존재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만 내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사도는 야고보서 1장 17절에 말하기를“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한 시인은 이러한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늘은 축복을 내린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태양은 따사로이 우리를 지킨다.

하나님은 달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래서 달은 우리가 가는 밤길을 은은히 비춰준다.
하나님은 공기를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는 이 공기로 호흡한다.

하나님은 땅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땅은 모든 열매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은...?

시는 여기서 ?로 끝납니다. 사람만이 아직도 주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 아집과 욕심과 이기심을 깨버리고 주는 것을 배울 때 창조주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우리가 주는 삶을 배울 때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구세주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한 미군병사가 유럽의 거리를 걷다가 길모퉁이에 있는 어떤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피곤한 모습이었고, 창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병사는 이 소년에게 다가서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 배고프니?” 소년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던지 모릅니다. 그래서 병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답해봐 나는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어. 나는 너에게 좋은 빵을 줄 수가 있어.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껌도 줄 수가 있어. 네가 원한다면 따뜻한 커피도 줄 수가 있지.” 이때 소년은 미군병사를 올려다보면서 이 병사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 그러면 아저씨가 하나님이에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는 것을 배웠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줄때 주시는 하나님의 스타일을 닮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큰 혼란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어느 정도 하나님을 느낍니다. 찬양을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웃과 대화하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느낍니까? 이웃을 상대하면서 거기서 얼마나 하나님을 발견합니까?

우리는 성탄절이 오면 동방박사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세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네 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함께 출발했습니다. 네 번째 박사는 자신의 가방에 의약품을 가득 집어넣고 출발했습니다. 사막을 지나다가 어떤 병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거의 죽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네 번째 박사는 그를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나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씨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네 번째 박사는 세 박사들에게 먼저 길을 출발하라고 말합니다. 며칠을 씨름하는 가운데 이 환자는 열이 다소 가라앉으면서 소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박사는 계속 치료하면서 그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자 아무래도 친구들인 세 박사들을 따라 잡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탄생하신 메시야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여 그는 주저앉아 이런 슬픈 기도를 그렸습니다. “메시아시여, 나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놀라운 모습을 함께 보고 축하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이 기도를 끝냈을 때 갑자기 자기가 치료하고 섬겼던 그 사람이 메시야의 모습으로 그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메시야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이 강조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5절에“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름 모를 소자 한 사람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한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주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1장 24절~25절에도“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대접한 사렙다의 과부의 경우가 이를 증명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고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인도의 어느 왕이 지방을 순찰할 때 어떤 거지가 와서 무엇을 좀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때 왕은 그 거지에게“네가 먼저 무엇을 내게 주면 나도 네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거지는 왕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조금 전에 어떤 집에서 구걸한 옥수수가 조금 있었는데 주머니에서 다섯 알을 꺼내 바치면서 “저는 이것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것을 받아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고 뒤에 있던 재정을 맡은 대신에게 “네가 가진 그 금 자루를 풀어 이 옥수수의 금알 다섯을 내어 이 사람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 거지는 옥수수 대신 금덩이 다섯을 받았으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면서 크게 후회를 했습니다. “내가 이 옥수수 주머니 전부를 왕에게 바쳤다면 그 만큼 많은 금덩이를 받았을 터인데 내가 왜 다섯 알만 바쳤던고?” 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힘을 얻으려면 인구가 5천만정도 되고 국민소득이 2만불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구 5천만이 되고, 국민소득이 2만불이 되는 나라가 세계에 일곱 나라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일곱 나라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테리, 프랑스,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국제원조액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퍼센트로 볼 때 1/3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체면에 손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원인은 가난하게 살아온 고정관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국을 대단한 나라로 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스스로 약소국가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부대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려면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움켜 쥐고만 있으면 따돌림을 당하지만 나누어 줄 때 국가 브랜드가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누어줄 때 그 사람이 개인의 가치가 향상되어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과 더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는 우리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닐라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던 필리핀이 그렇고, 대지진으로 아비규환이 되어 버린 아이티가 그렇습니다. 적극적인 사랑의 손길을 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심정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에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에“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눔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길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1장 24절~25절에도“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랑의 실천에 기꺼이 참여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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