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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라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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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라 (행 20:22~24)
   

지난주에 성도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 분이 ‘나는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면 가슴이 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장금이나 요즘 파스타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면서요? 전문가들이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쿵쿵쿵 뛴답니다. 이상 하지요? 어느 사람은 부엌을 없애고 싶어 하는데···. 여러분은 어떤 분야, 어떤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쿵쿵쿵 뜁니까? 

저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들을 보면 가슴이 꿍꿍 거립니다. 얼마 전에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주는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감동으로 울렁거립니다.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이야기,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요동칩니다. 

월드 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봉사하는 한비야 씨가 전염병이 돌고 환경이 열악한 케냐 난민촌에서 고군분투하며 봉사하는 40대 중반의 케냐 출신의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는 케냐 대통령도 치료를 받으려면 며칠을 기다려야할 만큼 명의로 소문난 사람입니다. 한비야 씨가 그에게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케냐인 의사는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비야 씨는 그 케냐 의사가 ‘이 일은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합니다’ 라는 대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한비야 씨는 사람들로부터 ‘왜 이렇게 힘든 긴급구호 일을 하려고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한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그 일을 생각하고 활동하면 가슴이 뛰고 보람이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을 향해 부지런하게 살라고 충고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을 치료하는 처방은 단순히 부지런하게 살자는 결심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게으름을 치료하는 가장 적절하고 유일한 처방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불꽃, 즉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힘들어도 의미가 있고 신바람이 나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직장생활을 하든, 가정생활을 하든, 교회생활을 하든 보람이 있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굿굿하게 걸어 나갑니다. 

소명이 없는 사람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힘이 들고 어려우면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소명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고 그 일을 헤쳐 나가며 보람을 느낍니다.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소명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서1장 7절의 말씀을 한번 찾아서 읽어봅시다. 신약 353면입니다. ‘또 천사들에게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불꽃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그 불꽃과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의 가슴에는 누구도, 어떤 환경도 꺼Em릴 수 없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가슴을 불타게 만들며 그것만 생각하며 가슴을 쿵쿵 울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빌립보서3장 12절에서 14절입니다. 신약 321면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일에 매여 삽니다. 내가 과거에 이런 일을 이렇게 했다고 말하며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가슴에 하나님의 불꽃을 품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불꽃, 즉 사명에 불타는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사는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갑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성령을 통해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과 환란을 당할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자신의 앞길에 그렇게 어렵고 험난한 일이 있을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지식입니까? 쾌락입니까? 그런데 그것을 얻기 위해 생명과 바꿀 수 있습니까? 그것들이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합니까? 생명이 있을 때 돈이고 생명이 있을 때 권력이고, 명예이고, 지식이고, 즐거움이지 생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위해 단지 있으면 좋은 것들입니다. 생명과 바꿀 만큼 소중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감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생명을 던져서라도 붙잡아야 할 가치를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자신의 재물, 명예, 그 동안 쌓았던 지식, 권력 모두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25절에 보면 자신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가치가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 어렵고 힘들 일이지만 자신의 복음 사역을 통해 죽어 가는 영혼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 나라를 함께 소유할 수 있다면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생명도 바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무인은 노일전쟁의 영웅 노기 다쇼, 노기 대장입니다. 일본인들은 노기 대장을 마지막 사무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천황이었던 메이지천황이 사망하는 날 그와 그의 부인이 함께 할복자살을 했기 때문입니다. 노기 대장은 노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삼만 명이 넘는 군대가 죽었습니다. 

천황에게 승전 보고를 하는 그날 노기 대장은 많은 군사를 잃은 책임감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메이지천황은 노기의 눈물이 할복자살할 결심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엄하게 명했습니다. ‘그대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된다.’ 노기 대장은 결국 살아 있었고 천황이 죽자 더 살아야할 생애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 그는 할복자살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의 잘잘못을 떠나 자신이 섬겼던 주인을 향한 충성에 대해서는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도 충성스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주며 주인으로 섬기는 이의 뜻을 따르며 행복해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그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한 결 같이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복음을 생명과 바꾸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안드레는 스코틀랜드에서 X자 십자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스페인에 가서 전도하다가 참수를 당하여 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러시아 남부 스키티아에서 전도하였고 히에라폴리스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마태는 카스피해 아래에서 전도하였고 이디오피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시라이아서 전도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다대오는 시리아와 아라비아와 페르사아에서 전도하다가 시리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시몬은 터키와 북 아프리카와 아르메니아와 영국 런던 등을 두르 다니며 전도하다가 페르시아에서 톱으로 켜서 순교하였습니다. 

가룟 유다 대신 뽑힌 사도 맛디아는 대신 뽑히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뽑혀서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였고 이디오피아에서 두 눈을 뽑히고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참수를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오로지 요한만이 에베소에 가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살펴 마지막까지 남아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연사하였습니다. 조지 폭스의 ‘순교자 열전’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사람들은 결코 우울함 속에서 순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쁘게 하나님의 나라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그 열정을 가집시다. 생명을 바치면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 줄 알고, 생명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그 나라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될 수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적든, 많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가슴에 타오르게 하신 복음의 불꽃을 발견하고 헌신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지고 있는 재능과 힘을 가지고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이웃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 가는 가운데 우리의 가슴이 뛰는 기쁨과 감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뛰는 가슴을 가지게 될 때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행복함이 충만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믿음의 삶을 살 때 그곳에 믿음의 사람이 누리게 되는 진정한 평안과 보람을 느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 안에서 가슴이 뛰는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가정과 직장, 교회 삶을 이끌어 가는 축복이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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