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브니엘의 아침 (창 32:24~31)

  • 잡초 잡초
  • 565
  • 0

첨부 1


브니엘의 아침 (창 32:24~31) 
 
 
2월 첫째주입니다. 새해 한달이 지나고 벌써 두달 째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브니엘의 아침"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며,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뜻의 지명입니다. 압복강가에서 밤새워 씨름했던 야곱이 맞이한 새 아침이 바로 '브니엘의 아침'이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집을 떠나 하란에서 산 20년은 도망자의 삶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거부가 되기는 했었지만 여전히 그는 도망자의 신세였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하겠다. 그리고 도망자의 삶을 청산하려고 하란을 떠났으나 역시 라반의 집, 처가집에서 도망나온 신세였습니다.   

도망자의 삶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 
가끔 완전 범죄를 꿈꾸며 범죄한 사람들이 자수를 하거나 검거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제 도망자의 삶을 청산할 수 있어서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두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다. 차라리 이제 평안하다고 합니다. 
  
도망자인 야곱은 형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거르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고향이 가까워지는 얍복강 앞에서 그는 또다시 인간의 꾀를 냅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합니다. 인간의 경영, 인간의 매니지먼트를 해봅니다. 야곱은 대단한 전략가였습니다. 전략으로 에서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였습니다. 그 전략가 다운 능력으로 하란의 라반의 집에서도 지팡이 밖에 없었는데 거부가 된 것입니다. 

10번이 넘도록 품삯을 변궤 시켰으나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의 전략은 비범했습니다. 그는 얍복강에서도 완벽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그는 크게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 건너간 그 압복강을 홀로 건너지 못하고 자기와 씨름합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근본적으로 내 자신이 도망 나온 것은 아버지집도 처가집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자인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면 사람의 낮도 피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망자가 되면 결국 모든 것으로부터도 도망자가 되는 것입니다. 

백문일답이란 말이 있습니다. 백가지 질문에 답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천문일답이요, 만문일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의 해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물음의 답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열하고 기회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모든 삶의 주인은 언제나 자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온 자신에게 최고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 앞에 야곱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게 된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결국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했습니다. 홀로남은 야곱, 인생은 결국 홀로 남는 것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물질도 함께 해 주시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단독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무엇도 함께 해 주지 못합니다. 

홀로 남은 야곱에게 찾아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야곱과 밤새워 씨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씨름도 하시고, 씨름도 해주시고, 씨름할 기회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쌍방적입니다. 우리를 배려해 주십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이 어느 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고집도 부려보고 끝까지 도망도 해보려고도 합니다. 그래서 씨름이 길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과의 씨름도 밤이 새로록 씨름 했습니다. 
어찌 힘으로만 했으면 밤이 새도록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힘을 쓰신다고 하면 어떻게 인간이 버텨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씨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지 자격이 있든지 없던지 하나님을 놓지 않고 씨름하면, 결국 우리의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전략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략의 승리가 곧 야곱의 승리고 우리의 승리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모든 문제는 타인에게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타인 때문이라고 핑계를 하면서 공격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고백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어찌할바 몰라 안절부절하고 인간의 얕은꾀를 생각해내는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이 우리 안에 숨어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내 속에 존재하는 부끄러운 나의 치유되지 못한 못난 자아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씨름해야 할  또다른 대상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이 씨름을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여 이겼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대향하여 씨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 하나님과 함께 씨름한 것입니다. 바울도 이 씨름을 주님을 의지함으로 이겼습니다. 고린도전서 15:5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밤새워 자기와 씨름하고 자기를 이기는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와 싸워 이긴 자"라고 했습니다. 자기와 싸워 이긴 자는 다른 사람의 성을 빼앗는 자보다 훨씬 강하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싸울 대상은 외부에 있는 적보다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적이 강적입니다. 그러므로 힘써서 고쳐져야 하고 변화되어야 할 것은 자신입니다. 다른 사람 고칠려고 하지 마십시오. 고쳐져야 할 것은 자신입니다. 이 싸움은 인생 최대의 싸움입니다. 평생에 걸쳐서 싸워야 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 싸움을 혼자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싸워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씨름에서 이겨야 우리는 새사람이 됩니다. 이 씨름에 이겨야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씨름에서 두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광의 상처 자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이제는 한 평생 '절뚝거리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31절).

예수님은 마 5:29~30에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마 18:8~9에서 다시 반복하여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하셨습니다. 

야곱은 이 싸움을 마치고 아침을 맞이합니다. 온 몸이 땀에 젖었고 먼지를 뒤집어 썼습니다.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터오는 아침햇살을 받는 야곱의 입술에는 미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도 그저께도 떠오른 태양이건만 브니엘에서 바라본 태양은 하나님의 은총의 태양이었고 모든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승리자의 태양이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야곱이란 이름이 아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었습니다.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야곱이란 고백을 들으신 그 분께서는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야곱란 말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순서가 아닌데도 먼저 나올려고 했고 먼저 나가려는 에서를 못나가게 붙잡는 욕심쟁이요, 약탈자요, 사기꾼이란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름으로 축복을 받겠느냐? 네 이름을 이제, 승리자란 이름으로 바꿔라 그 승리자란 뜻의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브니엘의 아침이 온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브니엘의 아침을 여는 예배가 되시기를 바바니다.  2월 한달이 매일 브니엘의 아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