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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사야가 만난 하나님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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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만난 하나님 (사 6:1~13)

    
설교내용     
  
오늘 말씀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는 내용입니다. 그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의 부정을 봅니다. 그리고 천사가 제단 숯불로 입술을 지져주면서 정결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원하여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다 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만나야 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는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상시에 사용하라고 기도라는무기를 주셨습니다. 기도라는 무기로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은 달려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돕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성자라고 하는 ‘죠지 뮬러’는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 어떤 어두움이 오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믿음으로 지키는 자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어둠, 어려움이 오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승리합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선조들은 믿음으로 승리해서 축복의 반열에 섰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기도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바벨론의 신하들 중에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어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단6: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길에 어둠이 깔릴 때 하나님 앞에 업드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에 빠져 눈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탈출하여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온 백성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짚었을 때 바다가 열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습니다. (시78:13)“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 하셨으며” 길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길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본문의 웃시야 왕은 이스라엘 남왕국의 10대 왕으로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타락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회복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윽고 웃시야가 왕이 되었고 그는 백성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정치를 잘했습니다. 특별히 우상을 멸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 앞에 성실히 행해서 왕과 백성은 태평세월을 52년 동안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교만에 빠졌 버렸고 이 일로 인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웃시야 왕이 이스라엘의 희망이었는데 이제 이스라엘의 희망은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둠에 빠졌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라와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성전에 들어갑니다. 문제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문제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갔습니다. 문제를 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문제를 푸는 열쇠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해답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31:1에서 이사야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가는 것은 세상적인 도움과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말과 병거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은 하나님께 있는데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구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은혜가 넘칩니다. 오늘 하나님께 나온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고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전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습니다.” 이은상씨가 작사한 이 노래 가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나고 싶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집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서성이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올라 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어떤 행동을 취하기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시급한 일이 었고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많아도 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만났든 보았든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사야가 본 주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주님보다 높은 보좌에 앉을 존재는 없습니다. 여러분들보다 높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회사의 사장입니까? 기관의 이사장입니까? 나라의 왕입니까? 대통령입니까? 물론 그들이 나름대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온 우주에 주님보다 더 높은 존재는 없습니다. 주님만이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엡1:20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주님보다 높은 세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만이 높이 들려 계십니다. 주님만이 온 우주에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또 주님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신 분인 동시에 성전에 가득하게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분입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옷자락이 있습니다. 지난 허물을 덮어주는 옷자락, 우리들의 실수를 덮어주는 옷자락, 주님의 부름을 받고도 아무렇게나 살아갔던 못난 나를 덮어주는 옷자락, 그 눈의 눈물을 덮어주는 옷자락, 실패를 했는데 용기로, 절망을 했는데 희망으로, 게으른 사람들에게 사명을 새롭게 해주는 옷자락. 성전에 나와 하나님의 옷자락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는 그 옷자락을 잡고 회개 합니다. 용서 받습니다.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13절에 상수리나무는 다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말씀을 듣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 백성을 살려 주시는구나. 할렐루야

그리고 천사들의 찬양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는 분입니다. 3절에 보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그 찬양소리가 얼마나 장엄하고 웅장 했던지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연기가 충만한지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운이 감도는 것입니다. 정말 장엄한 찬양을 들을 때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기운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느끼겠지만 저는 우리 성가대가 정말 잘 준비된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의 기운을 피부로 느낍니다. 그리고 가슴이 부르르 떱니다. 두렵습니다. 옷매무새를 다시 잡습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아직 응답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의 병이 아직 고침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의 가난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가 그저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 날것을 믿습니다. 바울의 찬양이 옥문을 열어 놓듯이 여리고성을 도는 이스라엘의 찬양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듯이 여러분의 찬양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 1월부터 우리는 주일 저녁에 뜨거운 찬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지 주일 저녁에 오시는 분은 다 느낄 것입니다. 여러 성도들에게 감동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찬양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임재합니다. 찬양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찬양소리를 들은 이사야가 두려워 하나님 앞에 업드립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그들 중에 거하는 자로다. 하나님 앞에 서 보아야 자신을 압니다. 바울은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보니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나 자신을 본다고 나를 아는 게 아니에요. 나를 아무리 보아도 나만 가지고 나를 알 수가 없어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야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마당에서 개하고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가 개더러 오라고 그러는데 안 오는 거예요. 자꾸 오래도 안오니깐 아이가 하는 말이 “너 내 말 안 들으면 죽어”“너 안와 죽여버린다” 그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가서 붙들고 하나님 앞에 깊은 회개를 했답니다. 내 잘못이다.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넣어 주었구나. 그 어린아이를 보면서 자기 모습을 보았어요.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깊이 회개했습니다,

무디 선생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어디를 가든지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늘 시비를 걸고 비난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번은 어느 마을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갔더니 아 그 마을 신문에다가 무디에 대해서 구두수선쟁이 학교도 못 다닌 무식한거하며 그의 허물들을 줄줄이 나열해 가지고 가지가지 험담을 늘어놓았어요. 

이 신문을 보는 동안 그 지방의 목사님들, 또 그리고 무디를 사랑하는 분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이 나쁜 놈들, 이런 이런…….” 그리고 욕을 할 때에 무디는 그 신문을 보면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버려두라고. 신문에 나지 않은 허물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럴 것 없네” ‘저들이 말하고 있는 그것보다 나는 훨씬 더 부족한 사람일세. 

그들이 지적하는 죄보다 더 큰 죄인이라네’ 무디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 본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면 그저 죄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할 말이 없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할 말이 없고 고개도 들 수가 없습니다. 웃시야 왕의 친척이라는 것 때문에 얼굴을 아무데나 내밀고 다녔어요. 그리고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똑똑한 줄만 알았어요. 할 말, 안 할 말 다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어요. 그 모습 보니 부끄러운 거예요. 눈이 지은 죄, 귀로 지은 죄, 입술로 지은 죄가 많아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회개합니다. 

그런 이사야를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사랑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화저로 단에서 핀 숯을 취하고 그것을 손에 가지고 이사야에게로 날아와서 입술에 대며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더럽던 모든 것들이 사하여졌습니다. 부끄럽게 하였던 모든 것들이 사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은혜받은 이사야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은혜 받았는데, 축복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는데, 건강 얻었는데, 지금 하나님이 쓰시겠다. 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보내소서입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입니다. 

1885년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왔던 언더우드선교사는 인도로 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하다가 1883년 커네티컷에서 열린 신학교 연맹에서 주최한 캠퍼스 부흥집회에서 앨버트라는 목사를 통해서 조선의 소식을 듣고. 자신의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꿉니다. 이렇게 결심한 후 2년만에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 항구에 첫발을 내 딛습니다. 그가 기도한 기도문이 있습니다.「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입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 뿐입니다. /--중략---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장례식에 거는 사진 영정은 대개 시커먼 끈을 메달아 근엄하고 웃지 않는 사진을 갔다 놓습니다. 어느 장로님 장례식을 보니까 천연색으로 환하게 웃는 사진을 갖다 걸어 놨어요. 그런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상하다 는 생각이 안들고 "아 장로님이 웃으면서 천국가셨구나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맡겨 주신 사명 잘 감당하다가 다 이루었다 하고 웃으며 하나님 앞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분 예수 잘 믿다가 환하게 웃는 모습 보여 주면서 "얘들아 천국서 만나자" 하고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때 멋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 때 하나님을 만나시기바랍니다. 자신을 늘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하다 웃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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