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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 (눅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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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로 내려가다가 ... (눅 10:30)


본문은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 로 알려진 이 말씀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의미의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30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폭행을 당해서 피투성이 된 채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아담 이후로 인간들 모두는 강도만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강도는 누구입니까?

1. 강도는 영적인 사단을 의미합니다. 

인간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사단입니다. 강도가 여리고로 내려가던 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듯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 것은 사단 마귀입니다. 
마귀는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간에게 온갖 상처와 아픔을 주며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죄를 통해서 말입니다. 
죄는 마귀가 가지고 있는 영혼을 파괴하는 강력한 비밀 병기입니다. 
죄는 언제나 탐스럼게 보이고 보암직하게도 보입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것처럼 그럴듯한 포장지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에 빠지면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마귀에게 강도 당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순간 마귀는 인간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2. 강도 만난 사람의 특징

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졌고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숲 속에 숨었습니다. 

② 이웃을 향한 사랑이 파괴됩니다. 
사랑은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에게 서로 간에 가져야할 사랑을 송두리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수치심에 못이겨 나뭇잎으로 벗은 몸을 가리웠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무너진 증거입니다. 
사랑을 뺏긴 그들은 서로 비난합니다. 너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헐뜯었습니다. 사랑은 결코 상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고 그의 허물과 상처로 인하여 함께 울어줍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사랑을 뺏긴 그들의 모습은 서로를 부끄러워하며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는 불쌍한 모습입니다. 

③ 영혼을 빼앗김니다. 
마귀의 목적은 결국 인간의 영혼을 도적질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자신들의 영혼을 송두리채 넘겨줍니다. 그때부터 사단은 모든 사람의 주인 행세를 하고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영혼 사냥꾼입니다. 

④ 참된 행복과 기쁨을 빼앗깁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여야 행복하고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처논 죄의 올무에 걸려든 후부터는 참 기쁨과 참 행복이 없어졌습니다. 마귀에게 다 빼앗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인간의 영혼과 행복을 뺏는 날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왜 인간이 영혼의 강도를 만나는가를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3. 강도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 

① 올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이 비유에는 두 곳의 지명이 나옵니다. 예루살렘과 여리고 입니다. 지형적으로도 예루살렘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는 평지 즉 낮은 들녘에 있는 마을입니다. 그러니까 내려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의미로도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는 곳으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신앙과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리고를 가는 것을 내려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내려가다가 강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에서 내려가는 신앙이 되면 안 된다는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내려가는 신앙은 강도의 표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지금 내려가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올라가는 신앙입니까?
내려가는 길은 힘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려가다 보면 가속도가 붙습니다. 그야말로 쏜살같이 내려가는 것이 내려가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신앙은 힘듭니다. 점점 더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다고 해서 내려가는 신앙이 되면 강도에게 당하고 맙니다. 
내려가는 신앙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꾸 인간 편리 주의로만 향합니다. 
육신 중심이 됩니다. 
신앙생활의 열심히 올라가야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뒤로 퇴보하는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딤전 4:15절에 보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 10:39절에서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영적인 악셀레이터를 밟으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당신의 신앙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계속 영적으로 침체되어 내려가고 있습니까? 영혼의 떼강도들을 이길 수 있는 대책을 가지고 있습니까? 교회도 올라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악셀레이터를 밟는 사람들이 많아지시기를 축복합니다. 

② 영적인 동행자를 찾아야 합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던 이 사람이 두 세 사람과 동행했더라면 강도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습니다. 하와도 혼자 있을 때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혼자일 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진정한 친구를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원래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 “에클레시아” (ἐκκλησἰα)로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힘써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무리속에 들어가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야 사단의 유혹이나 꾀임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전 4:12절에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영혼의 강도인 사단과도 두 사람이 주님과 함께 삼 겹줄을 만들어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삼겹 줄이 되려면 세 사람이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거니와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혼의 강도를 만나지 않으려면 영적인 삼 겹 줄을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인 삼겹줄은 

첫째는 목회자와 동행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표본이 되는 것이 목회자입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그의 사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손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이유는 성도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양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목회자는 주님으로부터 사역을 위임받은 권한으로 주님의 양떼를 먹이고 가르치는 사역을 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목회자와 동행할 때 영적으로 가장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주의 사역자를 붙들고 계시고 그를 통해 일하신다면 주님의 양된 성도들은 사역자와 동행하여야 가장 안전한 것입니다. 주의 종과 동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출 32:26절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내려와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는 모두 내게로 나아 오라” 라고 했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데 동참하지 않았던 레위지파 사람들이 모세편에 섰습니다.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리고 나와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출 32:27-29절에 보면 모세가 칼을 차고 우상을 만든 형제 친구를 닥치는 대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서 행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 편에 있었음으로 모세 편에 섰고 하나님은 그 날 하나님 편에 선 레위 지파 사람들을 통해 우상 쪽에 서 있던 3천명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 편에 있다는 것은 곧 모세 편에 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영적이며 신앙적인 문제를 가지고는 담임목사와 의논하고 교훈을 받으며 가르침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영적으로 강도를 당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둘째는 영적인 동지들과 함께하라. 
신앙의 길을 가면서 홀로가는 것은 마귀에게 미혹의 빌미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들이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서로 함께가야 하는 길이 천국길이며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모인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세에는 모이기를 싫어하는 병이 성도들에게 찾아옵니다. 될 수 있으면 모이는 일을 기피합니다. 구역예배 새벽 예배 철야 기도회 등 교회에서 공식적인 예배 뿐 아니라 심방이나 봉사를 위한 모임도 자꾸만 싫어합니다. 

신앙생활은 모여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과 서로 사랑으로 얽혀져야 힘있는 신앙 올라가는 신앙이 됩니다.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화합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임의 화합을 깨트리는 일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이 시대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교회의 지도자가 잘못해서 교회가 안됩니까? 성도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까?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교회를 망하게 하는 요소는 성도들의 모이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이 모이기를 힘쓰면 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할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만사 제처 두고 모여서 기도하고 사랑하며 전도하면 부흥의 불길은 일어나게 됩니다. 이제부터 교회의 부흥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자꾸 예배에 빠지고 기도회에 빠지고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자신이 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모임에 열심하시기를 바람니다. 
이렇게 나와 하나님과 그리고 성도들과 삼겹 줄이 되면 영혼의 강도가 왔다가도 내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주변에 기도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어 든든한 삼겹 줄이 된 것을 보고 겁을 먹고 한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올라가는 신앙이 되도록 영적인 악셀레이터를 힘껏 밟읍시다. 
그리고 홀로이기를 거부하고 목회자와 동행하고 성도와 동행합시다. 
그러면 영적으로 강도를 만나지 않습니다. 아니 영적인 강도떼가 우글거리는 험한 산골짜기를 가도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천국길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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