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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꾸다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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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다 (창 28:10~22)           
  

들어가는 말

우리가 서기 위해서는 다만 몇 자의 땅만 필요하지만 실제로 딛지 않은 땅을 모두 파 없애버리면 우리는 서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위가 온통 허공이면 현기증이 나서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비록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있음으로 나의 자리는 안정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가 절연되고, 홀로 들판에 고독하게 서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1. 도망자를 찾아오신 하나님.

본문의 내용은 야곱이 먼 나라로 도망하는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아들 야곱의 공모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늙어 안력이 약해진 이삭은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에서는 분을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생을 죽이려는 살의를 품게 됩니다. 
창 27:41절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일이 이렇게 되자 야곱은 더 이상 아버지의 집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형의 손에 죽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외삼촌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이란 곳으로 몸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살고 있는 브엘세바에서 밧단아람까지는 약 800km나 되는 먼 거리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 집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생전 처음으로 집을 떠나 국경을 넘어 먼 나라로 도망을 치는 중입니다. 
동행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 사냥에 익숙한 에서가 달려와 마치 짐승을 덮치듯이 그를 덮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급하게 집을 빠져나왔기에 가진 것조차 변변치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돌을 베게 삼아 잠을 청했겠습니까?(창 28:18)

벧엘이란 곳에 이르렀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벧엘까지는 약 90km가 되는 거리입니다.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오다시피 한 것입니다. 
얼마나 화급했는지, 얼마나 생명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야곱은 그 불편한 잠자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이면서 형의 축복을 가로챌 때의 긴박감, 서슬이 시퍼런 형의 복수의 칼날을 피해 집을 나설 때의 조바심, 장거리 여행에서 오는 피곤 등 정신적, 육체적 긴장감과 피로가 겹쳐 아마 야곱은 눕자마자 그대로 깊은 잠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야곱의 고달픈 모습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바로 그 다음에 터집니다. 
깊은 잠에 빠졌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하늘로부터 사닥다리가 자기 앞으로 내려왔습니다. 
높은 하늘에서 땅까지 사닥다리가 닿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사닥다리 끝에 엄위하신 하나님이 서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쯤해서 여러분께 묻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도망치는 야곱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지요.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셔서 일방적으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몸이 달아 야곱을 축복하시겠다고 난리입니다. 

마치 축복하지 못해 안달하신 분처럼.
하나님께서 야곱을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로 인정하시고 땅과 후손의 약속을 골자로 하는 언약을 그에게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야곱을 새 세대의 진정한 주역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14-16절까지 나옵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3절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네 자손에게 주리니”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땅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2) 자손을 번성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4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우리가 먹을 것을 안 먹고, 입을 것을 안 입고 애쓰는 이유는 자식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런 자식을 번성시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늘 함께 하시겠다고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15절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여기에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먼저다가 오시는 하나님.
자신이 몸이 달아 우리에게 축복하시겠다고 난리를 치시는 하나님. 
마치 우리를 축복하지 못해 안달하신 하나님.
저가 본문을 읽고 묵상할 때 만난 하나님이십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구나!’

복음성가-내가 반드시 네게 축복주리라

2. 야곱이 경험한 변화 

하나님을 만나고 야곱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습니까?

1) 눈을 떴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망자 야곱을 만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바로 그의 눈을 고쳐 주신 일입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유의하여 보아야 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꿈에 본즉’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 뒤에도 ‘또 본즉’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13절에도 ‘또 본즉’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여기에 쓰이고 있는 ‘본즉’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히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단순히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어 내뱉는 감탄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야! 정말 놀랍다’, ‘야! 정말 희한하다’라는 뜻을 가진 감탄사입니다. 

눈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눈을 새롭게 열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눈이 열리면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남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아내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직장 동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미워하는 대상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때문에 주님은 라오디게아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눈이 열려 ‘히네’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2) 귀가 열렸습니다.

야곱은 창 28:13-15절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귀가 열리는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나이 일흔일곱 살이 되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그의 음성을 들려줄 때였습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나아가 어머니 리브가가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심방을 하면서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묻곤 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의 설교가 꼭 나의 사정을 다 알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때로는 가슴이 뜨끔하고, 때로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경험을 한다고 고백합니다.
저가 어떻게 여러분의 사정을 다 알겠어요?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한사람을 대상으로 설교를 준비하겠습니까?
만일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경험을 하셨다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귀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귀에 설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은 은혜 받을 징조입니다.

딤후 4장에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점점 귀가 가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영적인 청각을 상실한다는 말이지요. 

딤후4: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귀가 가려워서’
때문에 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신 주의 사자는 무려 일곱 번이나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 11, 17, 29, 3:6, 13, 2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귀가 열려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길 축원합니다.

3) 입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입이 열렸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보십시오.

창 28:20-22절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는 지금까지 영적 벙어리였습니다. 
물론 자기를 위하여 입을 연 적은 있습니다. 
“팥죽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시오.” 
“내가 에서가 틀림없습니다.” 
이런 입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입은 완전히 닫혀 있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분을 향하여 찬송을 한 적도, 진지하게 입을 열어 기도한 적도 없습니다. 
영적 벙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벧엘에서 그의 굳은 혀가 풀립니다. 
입술이 열립니다.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이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그는 지금까지 기도를 몰랐던 사람입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 본 적이 없는 구두쇠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입을 열어 서원 기도를 올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의 입이 열립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입이 열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복음을 전하고,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교우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영화배우 헐렌 헌트에 대한 얘기입니다.
TV 단역배우로부터 시작한 헌트는 비중 있는 배역을 따내고자 여러 번 오디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떨어졌습니다.
고민 끝에 그는 배우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찢어질 듯 아픈 마음을 안은 채 장을 보러갔습니다.
마침 그 때 상품을 진열하던 한 직원이 그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직원은 “당신을 TV에서 봤는데 진짜 놀라운 재능을 타고 났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헌트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녀는 연기에 다시 도전했고 결국 ‘파이오니아 우먼’이라는 드라마 오디션에 합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를 일약 스타덤에 앉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헌트는 훗날 “그 사람은 아마도 나를 도와주러 온 천사였을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영적인 입이 열려 많은 사람들에게 날개를 감춘 천사가 되길 바랍니다. 

4)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황량한 들판에서 돌을 세워 놓고 홀로 예배를 드리면서, 야곱은 인상적인 행동을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은 베개로 사용했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야곱이 기름을 부은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야곱에게 있어서 이 기름은 더없이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화폐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이 중요한 물물 교환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야곱이 형에게 미움을 받아 황급히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챙긴 것이 바로 기름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먹을 양식도 구하고 노잣돈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기름은 여행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명같이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기름을 지금 돌 위에 쏟아 부어버립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더 이상 기름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결단으로 기름을 쏟아 부어버립니다. 
사실 그는 지금까지 이 ‘기름’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입니다. 
기름을 붙잡고, 더 많은 기름을 소유하기 위하여 발버둥 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기름을 이제 포기해버립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떻게 이런 행동이 가능했습니까? 
야곱은 기름이 인생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생을 보장해주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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