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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지기의 자세 (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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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의 자세 (딤후 4:7~8) 
 
 
19세기 말 미국의 영적각성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들 가운데 아도니람 골든(Adoniram Gordon) 목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보스톤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미국 침례교의 부흥에 큰 몫을 감당했고, 한국선교에도 보이지 않게 기여했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영적으로 큰 사역을 하게 된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번은 이분이 설교 준비하다가 피곤해서 그만 책상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꿈을 꾸게 됐습니다. 꿈에 주일예배의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중석을 돌아보니 낯선 30대 남자가 자기의 설교를 경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왠지 자꾸 그 남자에게 시선이 끌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그 남자를 찾으려 했는데, 먼저 가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내위원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안내위원 말이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꿈을 꾼 후 이 골든 목사의 마음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자기의 설교를 들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만 의식하며 예배를 진행했고 설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교인들이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서 이 예배를 기뻐받으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설교를 통해 예수님의 뜻을 전할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예배는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이분의 설교가 달라졌습니다. 교회가 크게 부흥하게 됐고, 과거와 달리 큰 사역들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자세가 중요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대통령다운 마음자세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도 든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일반국민과 다를 바 없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린다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도 엉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이 세상에서 맡겨주신 일들을 감당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지기다운 마음자세를 가지고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지기다운 마음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청지기로서 어떤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영적 제자인 디모데에게 전한 교훈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선 자신이 청지기다운 마음자세로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도 그런 청지기다운 마음자세로 살아가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장차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안에서 청지기의 마음자세를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자세

본문을 보면 바울은 철저하게 청지기 의식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한 평생의 주인이 자기가 아님을 철저히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특히 자기의 인생을 “나의 달려갈 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길을 달려온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인생에 대해 내리시는 평가를 기다릴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살았습니다. 추호도 욕심을 가진다든지 딴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다. 청지기로서 언제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빈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눅 16장을 보면 소위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가 나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서 옳지 않는 청지기의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그 문제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주인의 것을 제 멋대로 쓴 것입니다.

눅 16: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주인의 뜻을 묻지 않고 제 멋대로 써서 손해를 입혔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인의 것을 자기를 위해 쓴 것입니다.

눅 16:4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청지기가 주인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청지기가 주인에게 빚 진 자들을 불러서는 장부 상 빚을 감해 주고 돈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쁜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주인의 것을 주인 몰래 제 멋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것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들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자세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떡이 맛있고 값이 싸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떡을 사먹은 사람은 반드시 다시 사러 오고 또 처음보다 더 많이 사가려 했습니다. 웬일인지 할머니는 두 번째 장사가 더 잘됐는데도 기뻐하기는커녕 한숨만 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마을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한 마을에서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떡을 샀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와서는 더 많은 떡을 사갔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 소년이 이 할머니에게 금화를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께 산 떡에서 이 금화가 나왔어요. 제 것이 아니라서 가져왔어요”

이 할머니는 그제서야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이 어린 소년을 꼭 껴안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일가친척도 없이 큰 부자이고 또 큰 사업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후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야 말로 자기의 후계자가 되어 그 많은 유산과 사업을 잘 관리하고 올바른 곳에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할머니처럼 올바른 마음자세를 가진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아니 이미 우리를 믿고 청지기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맡겨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은 인생을 마무리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을 돌아봅니다. “나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최선을 다했고 이제 차분하게 하나님의 평가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맡겨진 일에 임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청지기들은 이런 마음자세를 지켜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지기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 가운데 하나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욕만 먹지 않을 정도로 일 하고 맙니다. 그렇게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열심히 해 봐야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군대 용어가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데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잘 맞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어영부영”이라는 말입니다.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군에서 어영부영하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군에서 어영부영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크게 혼이 납니다. 고문관이라고 찍힙니다. 그런데 잘하면 계속 불려 다니며 혹사를 당합니다. 그렇다고 크게 상을 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충 중간정도만 하려고 합니다.

둘째, 자기가 할 수준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수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 학력, 경력 등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 수준에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일이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기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일이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존심 상해합니다.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단 내게 어떤 일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게 득이 되던 그렇지 않든 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14살 때 양복점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18살 때 구두 수선공의 딸과 결혼한 후 부인에게서 글을 배웠습니다. 책을 읽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후에 정치계에 들어섰습니다.

한번은 그가 시의회 의원으로서 워싱턴에서 연설할 때 군중 속에서 "양복쟁이 출신 주제에!"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분은 이런 빈정거림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어떤 신사께서 제가 재단사였다고 말씀하시네요. 맞습니다. 저는 재단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재단사로서 저는 일등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만약 이분이 재단사로서 3등이었다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큰 일을 하게 됩니다.

완주하는 자세

오늘 본문을 보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일을 마지막까지 완수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달려갈 길을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두 가지 동사를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는 “마치다”라는 동사이고, 다른 하나는 “지키다”라는 동사입니다. “마치다”라는 말은 양적인 개념이고, “지키다”라는 말은 질적인 개념입니다. “마치다”라는 말은 도중하차 하지 않았고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키다”라는 말은 그 사명을 초지일관 유지하며 완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청지기로서 맡겨주신 청지기의 길을 완주하려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는 일단 마치는 것입니다. 도중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키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세운 뜻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청지기들의 청지기들이 완주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이런 것들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청지기직을 수행하는 일에도 힘든 고비가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외적으로 너무도 힘든 상황이 계속됩니다. 박해와 핍박이 있습니다. 음해나 비난이 있습니다. 계속 그 길을 가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내적으로 견뎌낼 힘이 모자랍니다. 지쳤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됐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맙니다.

7전8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또 여덟 번째 일어납니다. 그래서 일곱 번 넘어졌지만 여덟 번 일어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이 넘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넘어졌어도 또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넘어졌어도 마지막에 일어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유혹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일이 그렇듯이 청지기직을 수행할 때도 유혹이 있습니다. 때로는 더 좋은 조건으로 유혹합니다. 같은 일인데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다른 길로 가자고 유혹합니다. 때로는 전혀 다른 일로 유혹합니다. 지금 그 길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대우를 보장한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청지기직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따라 나섭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 뜻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어 갈 때 한눈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눈팔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한눈팔면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청지기로서 맡겨주신 일을 완주하려면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눈팔지 말고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라톤 레이스 도중 관중 한 명이 도로에 뛰어 들어와 선두로 달리고 있던 브라질의 리마 선수를 밀쳐 넘어드린 것입니다. 

35km 지점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인해 리마 선수는 인도까지 밀려 넘어졌습니다. 가까스로 다시 일어나 다시 달렸지만 이미 페이스가 무너져서 계속 달리기가 힘이 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리마 선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두를 빼앗겨 3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인상적인 것은 이 선수가 마지막까지 완주하고 골인 점에 들어설 때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세레모니까지 펼쳐보였습니다.

관중들이나 TV 중계를 지켜본 사람들이 이 리마 선수야 말로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네티즌들은 이 경기야말로 역대 마라톤 경기 사상 가장 아름다운 역주라고 그리고 이 리마선수야 말로 진정한 올림픽의 영웅이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청지기는 완주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 바톤을 넘겨야 합니다. 그 후 주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많은 청지기들을 세우셔서 주의 일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청지기들이 청지기다운 마음자세를 갖추지 못해서 주의 일이 차질을 빗기가 일쑤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세우셨습니다. 청지기들이 갖춰야 할 올바른 마음자세를 갖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늘 마음을 비우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맡았든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완주하겠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께 칭찬받는 청지기로서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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