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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3) (고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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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3) (고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 중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구절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피차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음식의 맛을 내려면 반드시 소금이 들어가야 하듯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요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는 우리의 신앙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심령에 은혜가 충만할수록 감사를 많이 하게 되고, 은혜가 떨어질수록 감사가 줄어들고 불평이 늘어납니다. 내 마음속에 감사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입으로 감사의 말을 얼마나 하는지 살펴보면 현재 나의 신앙상태가 어떠한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감사의 유익에 대하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얻는 유익은 범사에 많습니다. 
먼저, 감사할 때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시편 50편 23절에 이르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제물을 바친다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이 그저 주일이 되었으니 교회에 나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라면,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 열납 되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알맹이가 없는 형식적인 예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향기로운 제사로 받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배는 성도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랑의 교통을 나누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고, 힘과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예배할 때, 예배를 통해서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솔로몬이 그같이 큰 은혜를 받은 것은 단지 수많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열왕기상 3장 3절에 이르기를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고 증언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시고 그 같은 복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예배 역시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와 같이 감사의 제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예배가 형식적인 주중행사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고 복과 은혜를 받아 누리는 영적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 때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세일 산 거민과 연합해서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적을 막아낼 아무 준비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 때 여호사밧은 온 백성에게 금식을 공포하고 기도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모여온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 회중 가운데 서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때에 하나님의 신이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시니 저가 말하기를 “15)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에 왕과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튿날, 여호사밧은 성가대를 조직하고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다. 이에 성가대가 적진을 향하여 나아가며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하였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가대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시작할 그 때에 적군 속에서 자중지난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암몬과 모압 자손이 힘을 합해서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고, 그런 후에 암몬과 모압이 서로 싸워 다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현장에 가보니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위대한 기적을 경험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 우리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역경을 만나 마음이 우울하고 낙심이 되면 저절로 입에서 한숨이 나오고 불평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 같은 시련을 주시는가?”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 말을 할수록 우리 마음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그러나 역경을 만나 우울하고 낙심될 때에, 우리가 의지를 발동해서 감사의 말을 하면 놀랍게도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어떤 남자가 벙어리 귀신 드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그 아이로 하여금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니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비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말을 고쳐주셨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거든 도와주세요.” 이렇게 반신반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 아이의 아비의 말을 시정해 주셔서 “내가 믿나이다” 라고 믿음을 고백하게 하신 연후에, 귀신을 쫓아내어 그 아이를 온전케 만들어 주셨습니다.

혹, 생활 속에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까? 여러분의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원망, 불평, 의심의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시고, 그 대신에 감사의 말로 바꾸어 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의 믿음을 정금 같이 단련하시기 위해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몸이 병들어 괴로울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병에 걸렸단 말이냐?’ 불평이 나오려 할 때, 그것을 꿀꺽 삼켜버리고 그 대신 “하나님, 이 질병을 통해서 저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을 바꾼 것밖에 없지만, 그로 인해 우리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할 때 검은 구름을 뚫고 태양이 비취듯이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고, 낙심한 마음에 소망이 싹틉니다. 나에게서 멀리 떠나 계신 것만 같았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할 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돈과 결부시킵니다. 지금은 행복하지 않지만 앞으로 부자가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부자가 되어도 결코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어서 돈을 많이 벌었어도 만족을 모르고 더 벌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감사를 아는 사람이라야 자족할 수 있습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 가족이 마른 빵 한 조각을 앞에 놓고서도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감사를 모르면 진수성찬을 가득 차려놓고서도 다투고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자가 아니어도 감사하는 사람은 자족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지만, ‘범사’ 곧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좋은 일이 생기면 물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질병에 걸리고, 실직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등 어려운 일을 만나면 감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명하신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면 역경에서도 감사하고, 슬픈 일을 만나도 감사하고, 고통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그 해답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구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은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관계를 말해 줍니다. 

외견상으로 볼 때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직장에 다니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먹고 사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와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판단하지만, 비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서 판단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일을 놓고서도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감사할 이유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범사에 감사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구원으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68억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저와 성도님들은 이 구원 받은 소수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 지혜 있는 사람, 부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잘 난 사람들, 강한 자들, 지혜 있는 자들, 부자들, 능한 자들, 문벌 좋은 자들만 뽑아서 구원을 주시기로 하셨다면, 우리 가운데 구원 받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요즘 세상에서 하듯이, 경쟁에서 이긴 자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등수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못나고 미련하고 가난하고 무능한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장 26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감격이 저와 성도님들의 심령에도 넘쳐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영국의 국왕 루이스가 민정을 살피러 다니는데 어느 물방앗간에서 찬송가가 들려왔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노인이 즐겁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한 절을 마치자, 왕이 노인에게 “둘째 절은 이렇게 부르라”고 했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하네. 영원토록 누릴 영화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신분에 대하여 이 같이 말씀했습니다.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받은바 구원의 내용이 얼마나 풍성하며 영광스러운가를 탐구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단순히 죄 사함 받은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영광스럽고 위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달아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범사에 감사하려면, 나에게 없는 것을 들추어내서 불평하지 말고, 나에게 있는 것들을 찾아내서 감사해야 합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 백악관 정책 차관보를 지냈던 강영우 박사의 간증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1957~61년에는 많은 것을 잃었던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채 못 되어 중학교 3학년 때 축구공에 눈을 맞아 차츰차츰 시력이 떨어지고 결국에는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장님이 된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 충격으로 8시간 만에 뇌졸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학업을 그만두고 평화시장에 봉제공장에 다녔지만 2년이 못되어 누나도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낮고 낮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저는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서울 맹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학비를 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국의 크리스챤 가족을 후견인으로 주셨습니다. 또한 유학 가는 꿈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유학갈 수 없도록 법이 제정되어 있었는데 한미재단 총재의 추천을 받아 한국 장애인 최초로 미국에 정규유학생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 학비를 도와주셨던 숙명여대 영문과생이었던 누나와 결혼을 했고 함께 유학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비전을 이뤄주실 뿐 아니라 몇 배 더 축복해 주셨습니다. 미국에 간 3년 후 교육학, 심리학 석사, 교육전공 철학박사 등 3개의 학위를 따냈습니다. 그 후에 한국에 돌아와 대학 교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지만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기념 파티에서 저는 “부모가 있고 가문이 좋아서 빽이 있었다면 한국에 가서 취직이 되었을텐데--”하고 신세타령을 했습니다. 그 때 그 말을 들은 피츠버그 대학 부총장의 “지금 당신이 그런 가문을 만들면 되지 않소, 왜 이제 와서 조상 탓을 하고 있소?”라는 말을 듣고 저는 그때부터 명문가를 건설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모델이 될 명문가를 찾기 시작했고 10년 동안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거듭하고도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사람. 링컨 가정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명문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링컨의 아들이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에 두 아들을 보냈고 후에 필립스 아카데미 교장과 연결되어 부시 대통령과 그 두 아들과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봉사를 지원하는 자문위원이 되었고 또한 정책차관보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역사를 하십니다. 참된 비전과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추구해가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꿈과 비전을 놀랍게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역할 모델로 삼아 삶속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강영우 박사는 자기가 잃어버린 것에 연연해하거나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아직 자기에게 남아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나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어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용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자신이 불평하는 것을 방치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매사에 감사를 모르고 불평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기어코 트집을 잡아냅니다. 그렇게 불평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맛이 더 나는 것일까요? 그러나 감사생활에 힘쓰다 보면 어느덧 감사가 습관이 됩니다. 식사로 마른 빵 한 조각 밖에 없어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15절에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모든 은사는 너무 크고 풍성해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은사를 구할 때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하나님께 구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당면한 문제를 너끈히 감당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세 주일에 걸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나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곧 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나의 뜻과 생각과 취향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언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기뻐하시고, 쉬지 말고 기도하시며,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언제나 심령에 기쁨이 넘치고, 기도마다 응답 받으며, 감사의 조건이 날로 더해지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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