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2~33)

  • 잡초 잡초
  • 291
  • 0

첨부 1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2~33)
  

제가 군대에 입대할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군대에 대해 어설프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제 나는 죽을 고생을 하겠구나.’ 싶으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군대생활을 해 보면,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일단 적응이 되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미래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주변을 보면서
혹시나 내가 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남들은 다 앞서 가는데 나만 뒤처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혹시나 불치의 병에 걸려서 갑자기 고생하다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잘못된 길에 빠지지는 않을까? 
별의별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의 과거를 아실뿐만 아니라, 현재를 아시며, 심지어 미래를 아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선하고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주님이 우릴 위해 준비하신 미래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를 통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기에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지금 제자들은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 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있습니다.
거기서 바람과 물결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울릉도를 간 적이 있습니다. 
포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2시간쯤 바다로 나갔더니 그때부터 
바람이 불면서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배가 요동을 했습니다. 
속이 울렁거리면서 배멀리를 하는데 거의 3시간 동안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우리의 삶에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는 물리적인 것만 아닙니다. 
보다 여러 종류의 바람과 풍랑이 있습니다. 

육신적인 질병이라는 풍랑이 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파오기 시작하면
혹시 중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 이제 얼마 못 살고 죽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지고 두려워집니다. 

경제적인 풍랑이 있습니다.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대출금의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 갚기도 어렵고
이자에 이자까지 불어나면서, 피를 말리는 것 같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것을 넘기지 못하고 허덕일 때
정말 현실이 야속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실직이라는 풍랑도 있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라는 풍랑도 있고,
여러 종류의 실패라는 풍랑을 만나게도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런 풍랑들이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온 풍랑은 아닙니까? 
지금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때는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단히 큰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 자체가 위험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풍랑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풍랑을 다스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에서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사울 왕이 죽이려는 고난을 넘긴 후에 시편18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2절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방패가 되며, 누가 우리의 산성이 되어 주실 것입니까? 

혹시 주님과 멀어짐으로 말미암아 풍랑을 만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나오신 것은 참 잘하신 것입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그 풍랑에서 건져주실 줄 믿습니다. 

25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보세요. 풍랑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오십니다. 
우리 주님은 고난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 고난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성도들을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밤 사경은 새벽3시에서 6시 사이를 가리킵니다. 
얼마나 깊은 밤입니까? 
제자들은 이 깊은 밤에 예수님도 없이 
밤새도록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돕기 위하여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다만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지릅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을 곤경에서 건지기 위한 도움의 손길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주님이 찾아오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신 줄을 모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도 다시 새로운 눈으로 보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공격하기 위한 유령이 아니라, 돕기 위한 주님이십니다.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에게 메스를 들고 서 있는 의사는 
그 환자를 죽이려는 살인자가 아니라, 암세포를 제거하려는 헬퍼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해 있는 어려운 현실은 
여러분을 망하게 하려는 유령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입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처한 현실을 다시 믿음의 눈으로 보기 바랍니다. 
그 고난의 현실에 찾아 온 분은 유령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바다 위를 걸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기꺼이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예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7절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수도 없이 많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너무 쉽게 많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마. 내가 너를 도와주마.”
바다 위를 걸으시는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유령이라니요? 아닙니다. 주님이십니다. 

이 때 베드로가 용기를 가지고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28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이거야말로 참으로 모험적입니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믿음을 봅니다. 
진정 주님이시라면 뭐든지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생활했던 베드로의 경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과감하게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이 병을 낫게 합니다. 
행3:16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나았을 때 믿음이 낫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씀은 복음서에 7번이나 나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 같은 일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물론 믿음의 길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곧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도 믿음으로 나아가다가 의심할 수 있습니다.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다가도 다시 물속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믿음의 시도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비록 베드로가 물속에 빠지게 되었을지라도 
그는 놀랍게도 물위를 걸어본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도가 위대한 것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실패할까봐 아무런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위대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고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릭 워렌은 새들백교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실패하고도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은 시도를 했고, 또 많은 것들이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것들 중 성공한 것들이 새들백교회를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았다면 새들백교회는 없습니다. 

릭 워렌은 많은 실패를 했지만, 그를 실패자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가지 실패했다고 책임지라고 하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우리는 그 어떤 성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현상유지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퇴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실패의 위험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시도를 감행할 때 
우리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은 
많은 실패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선거에서 낙선을 경험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가 노예해방운동을 할 때에도 모두가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반대하여 남북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옳다고 믿는 바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실패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때때로 실패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절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베드로는 주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실패했을 때 주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아니,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실패는 우리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시 엎드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에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31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주님의 도움은 더디지 않습니다.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십니다. 할렐루야! 
무서워 소리 지르는 제자들을 도울 때에도 27절에 즉시 말씀하십니다. 
물에 빠져 구원해 달라는 외침에 대해서도 31절에도 즉시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은 더디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났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곤경 중에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고자 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어떠한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하고 이루십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더 큰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못하실 일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우리의 모든 고통을 바꾸실 수 있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도, 모든 소망도 다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불가능한 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행하실 수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는 없습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십시오. 
지금까지 실패했더라도 다시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1부) 그 전능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나오는 자에게 주님은 모든 죄를 사하여주십니다.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 시간 믿음으로 나와 주님의 살과 피를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