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사 58:13~14)

  • 잡초 잡초
  • 1530
  • 0

첨부 1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사 58:13~14)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6년 개근상'을 받았습니다만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역지를 옮기실 때마다 전학을 하는 바람에 결국 세 군데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었는데, 저는 이사하는 날까지도 일단 원래 다니던 학교에 등교한 후에 나중에 집으로 올 때에 새 집으로 돌아와서 그 다음날부터 새 학교에 나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서 6년 동안 지각이나 조퇴조차 한 번도 없는 개근을 했는데 정작 제가 졸업하게 된 학교에서는 제게 '6년 개근상'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학을 하게 될 때면 이전에 있던 학교에서 학적부를 넘겨주면서 그때까지의 출석 기록을 무조건 개근이라고 선심 쓰듯이 조작(?)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가 이전에 다녔던 두 군데 초등학교에서의 개근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제가 6년 개근을 한 것은 '자신이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시고 또 학적부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순전히 선생님들 사이의 불신 때문에 이 어린 학생의 근면성실함이 짓밟혀(?) 버리게 되었으니 그 억울함에 정말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제 아버지께서 분연히 나서 주셨습니다.
당장 학교로 찾아가셔서 선생님을 만나서 제가 그렇게 전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를 설파하시면서 이런 학생에게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개근상을 안 준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느냐고 따지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원래 당연히 받아야 할 '6년 개근상'을 그 '이상한 관례'를 깨고 결국은 받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6년 개근상'을 받는 학생이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저처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기침을 콜록거리거나 열이 펄펄 나거나' 그저 '그래도 학교에는 가야지.'라는 일편단심으로 등교하는 것을 아주 당연히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학생이라면 일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출석하는 것이 가장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신자라면 일단 매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학교 출석부터 게으르면 결코 훌륭한 학생이 될 수 없듯이 주일성수조차 할 줄 모르면 신앙생활의 성장은커녕 현상유지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시는 사실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종반부는 이 말씀이 기록되고 약 백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게 될 때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오실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58장은 그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이 누리게 되는 복된 삶에 대한 내용인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안식일 성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 성수'는 곧 '구원받은 성민'의 표식인 동시에 축복 그 자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현대교인들이 바로 이 '신앙생활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우리 모든 기독신자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기역 자'에 해당되는 '주일성수'를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주신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철저히 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주일은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성일'을 더욱 존귀하게 여기는 자세로 지켜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기록하기를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반절에 있는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라는 말씀과 하반절의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같은 의미를 반복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불필요한 여행 금지'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실제적인 의미는 '생업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자면, 출애굽기 16장 29절에도 "제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은 광야행군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아침마다 밖으로 나와서 밤새 내린 만나를 광주리에 모아 담던 '일'을 안식일에는 금하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 제4계명을 주실 때부터 누누이 강조하신 사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시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8-10)고 아주 자세히 엄명하셨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두고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는 쉬었음이라"(출 20:11)고, 엿새 동안 일하고 안식일에 쉬는 생활 패턴을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라고까지 강조하셨으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 있겠습니까? 

이처럼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생업 활동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다른 '사사로운 일' 역시 포함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안식일에 먹을 음식은 그 전날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으며(출 16:23), 땔감에 쓸 나무를 모으는 것도 할 수 없었고(민 15:32-35), 짐을 지고 다니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렘 17:21).
이런 모든 안식일 규례들의 요지는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성일'에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유대인들은 이와 같은 율법에 내포된 본래의 정신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그 '금지명령' 자체만을 끝도 없이 늘려 나갔습니다.
'미쉬나'(Mishna)라는 것은 '구두로 전승된 율법' 즉 성경에 소위 "장로들의 유전"(마 15:2)이라고 나오고 있는 것을 랍비들이 성문화시킨 것인데, 거기에 보면 '안식일의 금기 사항'으로서 정말 별의별 것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봉사는 안식일을 맞이하게 되는 저녁에는 바늘을 가지고 출타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하루는 오늘날처럼 밤 0시가 아니라 저녁을 기준으로 구분되었는데, 그렇게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 안식일이 시작되어 버리면 결국 안식일에 '바늘을 운반하는' 일을 한 셈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도였으니 안식일에는 서기관도 '펜'을 가지고 다니지 못하게 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으며, '옷에 먼지를 터는 것'조차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도 그런 식으로 '주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율법적인 조항으로 만들어 나간다면 '미쉬나' 정도의 책으로도 오히려 모자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그처럼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두고 본문은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존귀히 여기다'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것보다 더욱 존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안식일을 하나님의 성일인 줄로 알고 그날을 구별하여 특별히 거룩히 지키는 것을 가장 귀중히 여기느냐, 아니면 그날에 자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더 급선무라고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안식일 성수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마음자세만 똑바로 갖추면 그런 잡다한 규정을 만들고 지키려 했던 구약 시대의 랍비나 신약 시대의 바리새인들보다도 훨씬 더 정확하게 주일성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 경향교회 성도들이 이처럼 '주일을 하나님의 존귀한 날로 여기면서' '자기의 일보다 당연히 훨씬 더 우선에 두는' 자세에 대하여 몇 가지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중고등부 SFC 학생들의 주일밤예배 참석 문제입니다.
주일 낮예배 출석 인원을 보면 중고등부가 대학부보다 몇 배 더 많지만 주일밤에는 중등부와 고등부를 다 합쳐도 대학부 학생들의 출석 숫자와 비슷하든지 오히려 모자랄 정도입니다.
  
중고등부 학생 여러분들은 주일밤예배 시간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들의 학부모인 여러분들은 주일밤에 그 아들딸들을 도대체 어디에 보내고 있습니까?
평신도라도 그래서는 안 될 일인데 명색이 직분자라고 하면서도 자기 자녀는 학원에 보내어 놓고 자기만 주일밤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조금도 신앙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습니까?
  
학습 효과만을 따져 보아도 '엿새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주일 하루 정도는 푹 쉬는 것'이 실제적으로 훨씬 더 능률이 오를 것입니다.
'주일에 공부하면 죄가 됩니까?'라고 질문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성일을 존귀히 여기는지 학원에 한 시간 더 가는 것을 귀중히 여기는지'를 스스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난주에 처음으로 들었는데,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들 중에서 학생들에게 줄 선물을 주일 오후에 이 근처에 있는 마트에서 사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자기 돈을 들여서 자기 반 학생들에게 선물을 사 주시는 마음이야 물론 갸륵하고 훌륭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물을 받게 되는 학생들은 절로 '아, 주일에 쇼핑을 해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런 학생들이 '주일에 쇼핑을 다니게 되는 것'은 곧바로 '주일에 마음대로 놀러 다니는 것'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해 보셨습니까?
  
기왕이면 그런 선물까지 미리 토요일에 사서 준비해 두었다가 주면 학생들은 자기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의 사랑에 감복하는 동시에 '주일성수 교육'까지 자동적으로 익히게 되는 일거양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학교에 다닐 때에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도 주일에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토요일까지 준비를 다 해 두었다가 주일밤예배 끝나고 집에 가서 자기 전에, 혹은 월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총정리를 하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제 부모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저는 그저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학생의 일은 바로 공부이고 주일에는 일을 하면 안 된다.'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그것이 제게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러웠던 것입니다. 

또한 주일에 일반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는 문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강서성전을 건축하고 입당할 무렵에 교회 식당을 주일에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원로목사님께서는 심사숙고하신 후에 요식업체에 맡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의 그 결단이 너무나도 훌륭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적으로만 따지자면 주일의 교회 식당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주일마다 수천 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제공하고 또한 치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겠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여전도회 회원들은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당에만 매달려 있느라고 다른 일은 엄두도 못 내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현재의 식당 운영 방식은 우리 경향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주일은 하루 종일 오로지 예배와 기도와 선한 봉사와 성도의 교제에만 더욱 집중하면서 그야말로 '거룩하고도 온전히'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최선의 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교회 식당에서 먹어도 어차피 요식업체에 돈을 주고 사 먹는 것이니 외부 식당에 나가서 사 먹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 절대로 마찬가지가 아닙니다.
전자는 우리가 주일에는 식사까지도 '교회 중심'으로 성수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지만, 후자는 주일성수보다는 '내 입맛'을 더 존중하는 태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이것을 해도 됩니까? 안 됩니까?'라고 묻는 것은 그야말로 '바리새인'들이나 대답해 주기를 즐겨할 질문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일이라고 선포하신 날'과 그 '이것저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중에서 어느 쪽을 더 귀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자신의 신앙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은 아주 간단히 나오는 것입니다.
'금하여야 할 일'을 율법적인 조항들로 만들어서 억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성일을 그 무엇보다도 존귀히 여기는 자세'부터 분명히 확립함으로써 이 귀중한 주일을 실로 거룩하고도 온전히 지킬 줄 아는 성도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일은 '세상의 유흥'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즐거워할 줄 아는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14절 말씀에 "14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앞서 13절에서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 시간을 자기 개인의 유흥을 위하여 사용하면 역시 안식일을 범하는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13절 끝에 보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냥 친구들끼리 모여 잡담이나 하면서 소일하는 것조차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그런 세속적인 즐거움보다도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두고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에 친구들하고 어디 영화 보러 가는 것보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라고, '주일에 무슨 가족끼리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것보다도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모두 다 교회에 나와서 내 품안에서 지내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알차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아예 장담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일은 성도가 그 생명주, 구원주를 뵙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양자 된 자녀들이 그 하늘 아버지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왜 데이트가 행복하고 가족 외출이 즐겁습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일에 '여호와의 집'에 찾아와서 '그 하늘 아버지의 품 안'에 거하는 것은 당연히 훨씬 더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그처럼 '즐거운 날'일 뿐 아니라 '축복의 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그렇게 '여호와의 안에서' 지키는 성도에게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 본문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황을 배경에 둔 예언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낮은 평지였지만 유다 백성이 살던 본토 팔레스틴은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라는 말씀은 바로 유다인의 본토 귀환의 약속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야곱의 업" 즉 축복의 대명사와 같았던 야곱이 받았던 그 복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구원의 감격'과 '축복의 유산'을 누리게 해 주는 것이었던 까닭에 실로 '즐거운 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바로 이 '주의 날'을 통하여 그런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죄 가운데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던 우리를 이 '높은 곳' 구원의 반석 위에 서게 하신 축복과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내내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심에 대한 감사로써 충만해야 마땅한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엿새 동안에 베풀어 주신 물질의 축복을 단으로 묶어서 십일조와 감사의 제물을 바치고 또 시작되는 한 주간을 통하여 더 큰 '야곱의 업'을 확신하면서 힘차게 새 출발을 하는 스타트를 끊어야 할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애당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안식일을 그렇게 '복 주어' 거룩하게 제정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일은 '즐겁게 지킬 수 있는 복된 날'입니다.
두어 달 전에 우리 교회의 박 모 집사님께서 주일밤예배 시간에 간증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비록 인생 중반을 넘어선 늦은 시기이기는 했지만 일단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니 매주일이 그렇게도 기다려지더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불신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이 될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아마 주일 낮예배 한 시간만 참석하고 겨우 '의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의 귀에도 그처럼 '주일이 기다려진다.'는 말은 꽤 '생소하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은 예배당 안에 억지로 앉아 있지만 실제로 '기쁨'과 '복'은 예배가 끝나는 즉시 밖에 나가서 오락실이나 학원이나 가게에서 찾으려 하는 교인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소개팅으로 만난 상대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저 빨리 그 어색한 시간이 지나가 버리기만을 기다리는 청춘남녀나,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유원지에 놀러 와서도 마음은 회사일에 눌려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가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우성배 쟁탈 교구친선 농구리그'를 합니다.
이것은 '성도 간의 교제'와 '이웃 전도'에도 유용한 것이지만 실제로 '주일 성수'에도 큰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스포츠라고 해도 주일에 교회에 모여서 교인들끼리 친선경기를 하는 것과 경기장에 가서 프로들의 시합을 관람하는 것은 절대로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주일을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이 함께 즐거이 지키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신의 오락을 구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인과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해 놓으면 그 날을 기다릴 때부터 이미 마음이 설레게 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놀러가기로 스케줄을 잡아 놓으면 부모나 어린 자녀들이나 할 것 없이 벌써 그 날이 온 것처럼 흥분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만약 그렇게 약속했던 날을 어기거나 취소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상대방 연인에게나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맺었던 약속을 그처럼 어기는 일을 아주 태연하게, 그것도 정기적으로 연휴만 오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연휴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에 고향친지들을 방문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특히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그 여행에 가능하면 주일이 끼지 않도록 사전에 일정을 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또한 정 피치 못할 경우에는 그 현지에 있는 교회에서라도 꼭 주일예배에 참석하면서 불신 부모나 가족을 전도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노력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출석체크 확인시키려고 마지못해서 주일예배에 한 번 참석하는 것은 결코 주일성수가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바리새인식의 형식적 안식일 성수'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그처럼 '부담스럽고 힘든 날'로 결코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오직 '복 되고 즐거운 날'로 제정해 주신 이 주일을 성수하시면서 '세상의 유흥'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여호와 안에서의 즐거움'을 자신의 영육과 전인격을 통하여 마음껏 누릴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성수'는 기독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인 까닭에 이것이 무너지면 나머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뻔한 일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던 유다인들이 '구원의 은혜'와 '야곱의 축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안식일 성수'부터 철저히 지켜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역시 주일성수는 현대 교인들이 신앙을 끝까지 지키느냐 아니면 점점 더 타락 일로에 빠지느냐를 결정짓는 기로가 될 것입니다.
  
주일조차 '존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즐거이' 지키지 못한다면 거기에 어떻게 '구원의 확신'이 유지되겠으며 '신행일치의 축복'이 나타날 수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주일성수'는 우리 기독신자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뚫려서는 아니 될,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마지노선'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본문 제일 끝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선포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은 이 안식일 성수가 절대로 거역해서는 아니 될 '계명'임을 일깨워 주시는 동시에 순종했을 때에 반드시 받게 될 '축복'을 보증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일 성수란 자신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선택 종목'이 아니라 모든 '자신의 일'을 제쳐 놓고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일입니다.
주일 성수는 세상의 오락이나 가족끼리의 여가활동 가지고는 상대도 될 수 없는 '가장 즐거운 일'이며, 학교 성적 향상이나 장사 수입 증가와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복'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신앙의 기본 교리를 요약한 '소요리문답'의 제60문답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문: 어떻게 해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겠습니까? 답: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냥 종일을 거룩하게 쉼으로 할 것이니 다른 날에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세상일과 오락까지 그치고 그 시간을 공적 또는 사적 예배로 사용할 것이며 그 외에는 부득이한 일과 자선에 관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성일'을 이처럼 '존귀히 여김'으로써 온전히 구별하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와 봉사와 성도 교제를 통한 '안식일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림으로써 일 년 52주일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거룩하고도 복된 날'로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