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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리를 놓는 사람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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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놓는 사람 (히 4:14~16)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과 부(富)의 상징가운데 하나가 도로건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국 곳곳에 길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건설되고 있습니다. 국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계곡이나 강이나 바다가 앞을 가로막으면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영종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낙후된 외딴 섬이었던 영종도가 세계적인 공항으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인천공항은 4년 연속 세계최우수공항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 규모도 세계적이어서 개발이 완성되면 미국에서 제일 크다는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의 두 배가 된다고 합니다. 작은 섬 영종도가 세계적인 공항이 되는 데에는 영종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영종대교와 지난 10월에 개통된 세계 6위의 규모의 총길이 18.248km의 인천대교가 건설되므로 가능했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본문 14절에“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가리켜 대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차례씩 하나님 앞에 나가서 민족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를 회복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역할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은 양의 피로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렸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그 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희생의 모형입니다. 구약에 있었던 속죄의 제사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이라 부르는 헬라어의 의미는“다리를 놓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84편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여 눈물골짜기가 샘의 곳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一.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신분은? 

본문 14절에“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대제사장이십니까? 

1. 승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승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속죄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후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은 인간 최대의 난제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증거 곧 전능자라는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본문 14절 하반 절에는“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二. 큰 대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제사장은 사람이 범한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직임을 맡은 사람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하게 합니다. 이사야 59장 1절~2절에“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하셨습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가 대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로 인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5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겐 하나님으로부터 영육간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으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넘치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축복의 다리를 놓으신 분이십니다. 길이 없는 땅은 냉지라고 해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길이 있는 곳에는 변화와 발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三. 큰 대제사장의 성품은 무엇입니까?

1. 연약한 자를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15절에 기록하기를“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동정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동정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체험을 통한 깊은 동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제사장은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 놓여있는 불쌍한 인간을 동정하여 대신 속죄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동정은 생명입니다. 지옥의 멸망이 확정된 우리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는 정신적인 위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동정하셔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병든 자를 동정하셔서 강건케 하셨습니다. 슬프고 괴로운 자를 동정하셔서 기쁨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낙심한 자를 동정하셔서 소망으로 가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2.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되 죄 없는 분이십니다. 
본문 15절에“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받는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굶주림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명예로 인한 사탄의 유혹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권세로 인한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믿었던 제자들로부터 배신의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죄 없는 죄인이 되시므로 억울함의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침 뱉고 뺨을 맞으시며, 벌거벗기는 수치의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육신의 고통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잘 아시고 동정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십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를 깨끗케 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많은 길 가운데 한 길이 아닙니다. 여러 길 가운데 가장 좋은 길도 아닙니다. 오직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몇 년 전 타계한 성철스님은 불교에서 고행을 가장 많이 한 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10년간 자리에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잤습니다. 죄를 이기기 위한 극기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년간 생식을 했습니다. 옷 한 벌로 50년을 입었습니다. 욕심의 죄를 없이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쑤시개 한 개로 30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가 죽자 그의 몸에는 사리 13개가 나왔습니다. 그토록 고행을 하며 죄를 이겨보려고 몸부림친 성철스님이 마지막 죽으면서 남긴 말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내가 죄를 이겨 보려고 이렇게 극기하고 수행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죄가 저 수미산보다 높아서 내가 죽으면 아비규환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수미산이란 불교에서 전설적인 산인데 높이가 112만 km라고 합니다. 아비규환 지옥이란 불교에서 가장 무서운 지옥을 가리킵니다. 
죄를 이기기 위해 그토록 고행한 성철스님이 그렇다면 일년에 한두 번 사찰을 찾아 불공드리는 일반 중생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원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 앞에서 이미 지은 죄를 회개하고 또한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16절에“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하셨습니다.“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시기적절하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도움과 자비를 필요로 하는 그 때를 아시고 적절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시기적절하게 나의 사정을 아시고 도우시려면 내 곁에 항상 계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3장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는“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식인종들에게 선교하셨던 분들 중에 아셀트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 활동을 하는 중에 식인종들이 여러 번 아셀트 선교사를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고 아셀트 선교사 집을 밤에 침입했었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갈 때마다 대문 앞에서 창칼을 들고 지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데, 밤에 와서 끌고 가 잡아먹으려 하면 그 사람이 창칼을 들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서워서 떨다가 그냥 가고 또 그 다음 번에도 왔다가 그냥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식인종들이 아셀트 선교사를 낮에 찾아갔습니다.“낮에 가보면 없는데. 이상하게 밤에 가보면 누군가가 칼과 창을 들고 너를 지키고 있다. 그 사람이 누구냐?”식인종들의 물음에 아셀트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우리 집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그러자 식인종들은 “거짓말 마라. 한두 번이 아니고 우리가 너를 끌어다 잡아먹으려고 여러 차례 왔는데도 밤만 되면 창칼을 들고 지키는 자가 있어서 무서워서 너한테 갈 수가 없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아셀트 선교사에게는 퍼뜩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쓸모없는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지켜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했던 불신앙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아셀트 선교사는 순간적으로 이러한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四. 큰 대제사장에 대한 성도들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1.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본문 14절에“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동정하시는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 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하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붙어있지 못하도록 온갖 유혹과 방해를 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경험담입니다. 그분이 천막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어린아이가 동생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 왔었습니다. 그 아이는 축구공에 눈을 맞아서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그 여파로 왼쪽 눈의 시력까지도 잃어가고 있는 아이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기를 소원했기에 몇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아이의 눈은 점점 더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아이도 목사님도 심하게 실망하고 낙담하였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그 아이에게“그래도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소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온 세상을 위하여 큰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던 아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절대절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시각장애인 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를 거쳐 미국의 피츠버그대학으로 유학하여,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가 현재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로 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유명한“강영우 박사”입니다. 그는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낙심하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담대히 하나님을 믿고 나아간 결과입니다.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는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축복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에“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존귀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 하셨는데“담대히”란“뻔뻔스럽게”라는 의미입니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두 뻔뻔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버릇없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아 가지고 집을 나갔습니다. 허랑 방탕하게 살아가던 아들은 재산을 다 탕진한 후 거지신세가 되자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로 뻔뻔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반가이 맞아 기뻐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 곧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처럼 뻔뻔스러운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 앞에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가 고침 받은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왔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이 계시는 방안까지 갈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환자를 메고 온 사람들은 참으로 담대한 일을 행했습니다. 주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환자를 달아 내린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실례입니까? 

지붕을 뜯으려면 얼마나 시끄러웠겠습니까? 또 흙먼지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 소란스러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의 핀잔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뻔뻔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하셨습니다. 그 즉시 이 중풍병자는 자신이 들려온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는 장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관습으로는 유출병이 있는 사람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공공장소에는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 또한 당시의 엄한 관습을 무시하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 담대한 용기였습니다. 엄한 관습을 무시한 것은 실로 뻔뻔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혈루병 앓는 여인의 병을 깨끗케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말하기를“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에게 채포되어 모진 고문과 심문을 받으시는 장면을 보자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일입니까? 그러면서“오늘밤 닭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과 눈을 마주 치자 베드로는 밖에 나와 통곡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가증스럽고 뻔뻔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수제자의 사명을 감당토록 하셨습니다. 

T.A 헤그레라는 선교사의 수기에 이런 내용의 간증을 적고 있습니다. 그가 급하게 선교지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황급히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비행기를 탑승할 시간이 지났으므로 표를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사는 이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의자에 앉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조금 후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항 대합실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음성이“지금 갑자기 몰려온 안개로 인하여 비행기 이륙이 늦어지고 있사오니 이점 널리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안개가 걷히는 즉시 이륙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송을 들은 헤그레 선교사는 창구로 달려가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고, 그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선교사가 비행기에 오르자 안개는 걷히고 그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다 본문 16절에 말씀처럼“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간(갈)”결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되 열심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3:15~16에 말씀하시기를“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하셨습니다.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히브리서 10:25에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24:33~34에는“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하셨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창세기 3:19에“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가정일이나 직장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담대하게 즉 뻔뻔스러워야 하지만, 그렇다하여 사람 앞에서까지 뻔뻔스러우면 안 됩니다. 사람 앞에 뻔뻔스러운 것은 예의가 없고, 교양이 없는 것으로 이웃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5:14,15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십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은 범죄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에 복원의 다리를 놓으시고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피로 대제사장의 직임을 감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피로 속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입기 위해 예수를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를 놓으면 파멸입니다. 불행입니다.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굳게 기키며, 험한 세상 이기기 위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간구하여 능력을 힘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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