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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명을 감당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렘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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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을 감당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꾼들을 세워 그의 사역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에도 일꾼들을 따로 세우셔서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의 역사를 얼마든지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을 일꾼으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거나 혹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소명 장면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사를 이루어 가심에 있어서 항상 하나님 단독으로 모든 일을 행하시지 않고, 사람들과 동역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소명으로 부르시는 유명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부르심의 장면(사 6:1-8)과 에스겔의 부르심(겔 1:1-3:3)의 장면등이 유명하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공통적인 어떤 패턴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장면에는  각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개인들로부터 자신의 죄와 연약함 등으로 인하여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계속해서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그들에게 죄 씻음과 능력을 주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셨고, 그들의 입에 말씀을 붙여 주심으로(9절,사 6:6-7, 겔 3:1-3) 그들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레미야의 부르심에도 이와 똑같은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임하셔서 그에게 선지자의 사명이 모태에서 지어지기 전부터 이미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하도록 섭리되었음을 통보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구변의 부족함을 변명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레미야에게 강권적인 명령으로 다시 한번 그에게 소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구원의 약속을 통하여 그가 선지자의 소명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을 예레미야의 입술에 대시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에게 위임하셨음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사역이 죄악된 열방에 대한 심판이며, 그 심판 후에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사역이 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 전부터 한 사람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어,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기를 계획하시고 소명을 주시니 소명을 감당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예레미야를 그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이미 성별하여 그를 세우셨다고 하십니다
(렘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기서“성별하였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태초부터 이미 구별하셨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위하여 택하신 일꾼들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우리들도 우리 시대에 합당한 구속사적인 사명으로 부르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구속사적인 사명이 무엇인지를 바로 인식하고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알렉산더 캠프벨이 스물한 살 때, 미국 펜실베니아 주 워싱턴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한나 애치슨이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캠프벨과 애치슨은 그곳 사람들과 함께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농사일도 하고 게임도 했습니다. 이렇게 친해지는 과정에서 애치슨은 캠프벨에게 변호사가 되도록 권면했습니다. 에치슨과 그녀의 부모는 피츠버그에 있는 변호사에게 부탁해서 캠프벨이 변호사 공부를 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캠프벨은 애치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나는 설교자가 될 것입니다. 나는 평생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권면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때만 해도 성경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애치슨 자신도 신앙이 별로 없었습니다. 실망한 애치슨은 캠프벨에게 '알렉산더, 당신은 바보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하나님께 속한 바보예요'라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캠프벨은 아름다운 아가씨와 좋은 조건이 자신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상황에서도 달콤한 제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에 전력하겠다는 각오를 밀고 나간 것입니다. 캠프벨이 자신의 소명감을 굳게 지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은 다 일시적입니다. 캠프벨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위하여 기꺼이 '하나님께 속한 바보'가 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소명의식입니다.
  
선택하여 소명주심에 감사하며 감당하며 영광 돌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이라고 말씀하시니 순종하며 소명 감당하며 영광돌립시다.
하나님께서는 변명하는 예레미야에게 명하신다

(렘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소명자들에게 오직 한 가지 요청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소명에 대한 순종이라는 말씀입니다.
변명해서도 안 됩니다. 조건을 따져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어떤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의 모습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발견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 때, 비가 올 것 같지 않아도 오직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께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무리한 명령을 하시는가를 묻지 않았고 오직 그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모세 역시 그가 가진 여러가지 부정적인 요소에도 불구하고,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출애굽의 사역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속사의 도구로 쓰임 받은 믿음의 조상들의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들은 수많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베드로의 대답과 행동입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남부 캐롤라이나의 벤 립펜에서 열린 수양회에서 어떤 젊은 여인이 자신의 소명에 관한 간증을 하면서 하얀 일꾼이 한 장을 들어 보였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종이에 써 있는 것이라고는 맨 아래 그녀의 서명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세부 사항은 그분께서 채우시도록 남겨 두겠습니다.” 그녀는 참된 제자였고 안전한 땅에 서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충동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너무나 자주 일시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감격의 파도에서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게 원대한 의미를 가진 결정을 하기 전에 대가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그런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입니다. 충동적인 결정은 종종 지적인 헌신의 요소를 결여시킵니다. 그 결과 좀더 그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질 때, 대가가 너무 커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계속 거하지’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아까지 여행을 가서 돌아보고 시도하려고 합니다. 할 만하면 선교사로 돌아올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그분의 지상명령에서 주님은 메신저의 즐거움을 결정적인 요소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27세의 쉐릴 올링거는 농구에 관해선 전문가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던 쉐릴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뛰어난 선수로 활약했고, 이어 유럽 농구 리그전에서 뛰기도 했습니다. 한편 크리스천 체육인 협회(FCA)에 가입하여 다른 크리스천 체육인들과 교제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선교사가 쉐릴에게 크리스천 체육인들이 국제적으로 스포츠 전도를 할 수 있도록 협회를 체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을 때, 쉐릴은 속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 참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전 아닙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하지만 쉐릴은 그때까지의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그 사역을 위해 자신을 인도하시고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만 믿고 국제 경기 연맹(ISF)을 창설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해 마다가스카르로 간 첫 번째 스포츠 선교 여행에서, 그분의 계획과 그녀의 순종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 후, 나는 상대편 여자 선수 중 한 명에게 그 나라 말로 된 성경을 주면서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 전했다. 그것은 내가 설교나 찬양을 해서가 아니라 농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도하는 것이 불법인 나라는 있지만 농구로 관계 맺는 것이 불법인 나라는 없다.”   

그 후 4,000명이 넘는 연맹 자원 봉사자들이 70개국에서 500개 이상의 선교 프로젝트를 마쳤습니다. 한 농구 선수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네”라고 순종하고 응답했기에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니 소명 감당하며 영광 돌립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말씀 사역을 위하여 부르실 때, 그에게 전할 메시지는 물론이요, 그에 대한 보호의 약속을 주십니다

(렘 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은 말을 잘못하는 아이라고 하였을 때(6절)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9절) 말씀하셨습니다.

(렘 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겔 3:1)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여 주심으로 예레미야가 선지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실 때에도 그 손에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 보내셨습니다(출4:17) 그리고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었고 모세는 그 지팡이로 수없이 많은 이적들을 행하며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실 때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으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 등을 주셔서 보내셨습니다(눅9:1,10:17).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현장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

1840년 1월 3일 벨기에의 한 촌락에서 다미앙은 출생했습니다. 신앙심이 깊던 모친의 슬하에서 자라났는데, 모친은 자녀 6명에의 역대 순교자의 삶과 행적을 들려주며 구도의 삶을 살도록 격려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자매 3명 중 두 사람이 수녀가 되었고 형제 3명 중 두 사람도 역시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다미앙도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었고, 동물을 사랑하고 온화한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특히 두뇌가 명석한 그를 부모는 실업에 종사케 하여 가정을 돌보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형제들 둘이 성직에 나가기로 한 이후였으므로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그는 학문에 열중할 심산으로 17, 18세까지는 혼신을 다해 면학에 열중했습니다. 애초에는 평신도로서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기로 했던 다미앙은 마침내 자신의 소명이 성직자로서의 헌신에 있음을 자각하고 수도생활로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그의 형제 전부가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다미앙은 나병환자들을 위한 헌신의 일생을 바쳤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능력 힙입어 사명 감당하게 된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바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아 쓰임을 받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모든 성도들은 다 섬김의 사역(디아코니아)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역자(minister)들입니다. 그리고 요구되는 것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오직 순종과 충성입니다. 

19세기의 위대한 그리스도인 군인이었던 찰스 고든(Charles Gordon) 장군은 성품과 삶에서 뛰어난 모본을 보여 줍니다. 그는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난파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극성에 의거해서만 방향을 조정하는 것, 한마디로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결코 사람의 호의나 미소에 주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이 미소 짓고 계시다면 사람의 미소나 찡그림에는 상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번은 잔인한 왕이었던 아비시니아의 존이 고든에게 “고든 장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너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라고 고함쳤습니다. 고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폐하”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폐하가 기뻐하신다면 당장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고

든이 죽은 후 그의 친구였던 존 보나르(John Bonar)는 고든의 형제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항상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하나 됨이 고든의 모든 행동과 안목을 지배했다는 사실일세. 나는 지금까지 고든만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그토록 인내한 인물은 보지 못했네.” 그리고 그는, '고든이, 하나님과 함께, 또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정 가운데 선택하여 소명 주심에 감사하며 소명 감당 하고 순종하며 소명 감당 하고 주시는 능력을 힙입어 소명 감당하며 영광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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