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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류의 첫번째 가정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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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첫번째 가정 (창 2:18~25)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더라. 창세기2:18-25

사람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혼자 있는 겁니다, 고독. 미국의 교도소에는 독방이 2만 5천개가 있는데 다 찼대요. 사회에서 극심한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 독방에 가둬 놓습니다. 고독같이 힘든 것은 세상에 없고 인간에게도 없습니다. 나무들을 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자리에 혼자 유유히 서 있잖아요. 아프리카 들판에 가보면 동물들도 혼자 마냥 돌아다녀요. 개미도 어떤 때는 혼자 돌아다녀요. 아무렇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못 살아요. 사람은 관계 속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 사람이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같이 살게 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독방에는 말할 사람이 있나, 볼 얼굴이 있나, 좀 찡그린 얼굴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손을 잡을 사람, 끌어안을 사람, 사랑할 사람, 심지어 미워할 사람이라도, 다툴 사람이라도 한 명 있었으면 좋겠는데 독방에는 없습니다. 

어느 신문에 한 여자가 글을 썼습니다. “남편이 밤마다 코를 심하게 골아서 잠을 못자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댓글을 썼습니다. “아, 코 고는 남편이라도 한 명 있었으면 좋겠네요. 내 남편이 그렇게 심하게 코를 골았었는데 막상 세상을 떠나니 그 코 고는 소리는 음악이었습니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 성결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금요철야예배에 설교를 했습니다. 그분이 지금 82세이신데 76세에 사모님을 잃으셨답니다. 저는 그 소식은 들었고 그 후에 그 목사님을 여기저기서 만났는데 아주 많이 수척해지고 병든 분 같았습니다. 얼굴색도 나빠지고 해서 혼자 ‘연세가 드시더니 중병에 걸리셨나 보구나!’ 했었는데 금요일에 들어 보니까, 중병에 걸리신 것이 아니라 아내를 잃어서 그러셨다는 겁니다. 아내를 잃고 보니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더래요.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아무도 없는 겁니다. 좋은 선물을 하나 받으면 예전 같으면 기쁨으로 가져와서 아내에게 줬는데 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아, 그래서 회복하는데 6년이 걸렸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코 고는 남편이더라도 사랑하십시오.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서 배필은 돕는 자(helper)라는 뜻입니다. 우리 부부가 다 어떤 사람들인가? 혼자로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아내를, 아내에게는 남편을 주어서 서로서로 보완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불완전하잖아요. 

어째서 내가 이 남자(여자)에게 끌렸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하고 좀 다른 곳이 있습니다. 늘 내가 모자라서 그러는데 내 눈에 띄는 그 장점이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아, 그래서 우리가 그 상대방을 좋아한 것이거든요. 만약에 우리가 똑같은 사람이라 치면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매력이 없어요. 나 하나로도 충분한데 나하고 똑 같은 사람이 둘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다른 사람을, 역시 인간인 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도우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앞으로 짐승들을 지나가게 하시고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말, 돼지, 소, 개, 염소 등등 이름을 다 지었습니다. 이름을 다 짓고 나니까 아담이 갑자기 외로워졌습니다. ‘아, 내 앞에 지나가는 짐승들은 모두 암컷 수컷 짝이 있었는데 내 암컷은 어디 있나?’ 자기가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외로워졌습니다. ‘내 짝은 어디 있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아내를 원하는 마음, 찾는 마음을 일으켜 주셔서 미리 심리적 준비를 시켜주신 겁니다.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아담의 가슴속에 일으켜놓으시고는 아담을 잠재우시고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시고 직접 중매하셔서 데려다주시고 첫 주례를 해주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담이 깨어나 하와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던지 "아,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라고 감탄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게 되어있지 않아요. 인간은 같이 살게 되어있고 하나의 가정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서로 관계 속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 터치하고 안아주고 사랑을 주고받고 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 사는 방법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인도해주신 것처럼 아내나 남편을 우리에게 인도해주셨습니다. 미처 몰랐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세계의 절반이 남자고 절반이 여자인데 내 짝이 아닌 사람은 봐도 감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인도하신 사람을 딱 만나면 아, 몸과 마음에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그 다음엔 그 사람에게 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사람입니다. 젊은이들은 지금 그 사람을 찾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제가 종종 보니 젊은 사람들이 자기 아내와 남편감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부끄러워하더라고요. 절대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감기만 걸려도 회복을 위해 기도하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자기 배우자를 놓고 일찌감치 주문을 해놓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 꼭 맞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예정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데려다주십니다. 

저도 딸을 셋 키웠는데 청소년 때부터 그렇게 집으로 남자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저는 00입니다. 그레이스 바꿔 주세요.” “유니스 바꿔 주세요.” “크리스틴 바꿔 주세요.” 번갈아가면서 전화가 오니까 제 아내는 싫어했어요. 그러나 저는 “전화 바꿔줘요”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 중에 누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제 사위가 있다고요. 그 아이가 누군지 지금 테스트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전화가 오면, ‘아, 이 아이인가?’ 또 오면 ‘이 아이인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짝이 있기 때문에 그 확실한 짝이 나타날 때까지는 많은 남자와 여자와 서로 만나보고 대화도 하고 알아보는 것들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그렇게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더 큰일 났어요. 저와 같이 하숙을 하던 친구가 너무 괜찮아서 제가 우리 교회 여자를 소개해 줬습니다. 이 친구가 그 여자 친구를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둘이 좋아서 결혼하겠다고 이 남자가 신사처럼 행동해 보겠다고 교회 계단을 올라갈 때 손도 아닌 팔꿈치를 잡아 줬습니다. 아, 그러다가 그 모습을 우리 장로님한테 들켰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이 젊은이들을 야단을 치는 겁니다. 그때 제가 그들 뒤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둘은 결혼 할 사이에 한 제스처인데 장로님이 야단을 치기에 ‘아, 어떻게 장로님이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까지도 간섭을 하나? 그게 장로님이 할일인가?’ 젊었을 때 속으로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요새 우리 교회 청년이 둘만 함께 걸어가도 환희의 찬송을 합니다. 그 중에 누군지 모르거든요.

하나님께서 정해서 인도해 주시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정확하게 판단될 때까지 함께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놀기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자유롭게 사귀는 것을 저는 적극적으로 환영합니다. 제가 절대로 야단 안칩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입니다. 

며칠 전에 태국에 있는 큰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즘은 영상통화를 할 수 있지요. 옆에 이제 5학년 정도 된 손녀딸이 앉아 있는데 제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예뻐졌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와, 너 아주 예뻐졌구나!”했더니 새침하게 “고마워요.” 하더라고요. 그때 큰 딸이 “얘한테 조 에버모어가 생겼어요” 라고 하더라고요. 조 에버모어는 큰 딸이 초등학교 시절에 따라다니면서 못살게 굴던 백인 남자아이입니다. 큰 딸이 자기 어린 시절이 생각나니까 조 에버모어가 생겼다고 말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껄껄 웃었어요. 그래서 제가 “너, 그 아이 어떠니?” 물었더니 싫대요. 그래서 “그런데 너 왜 예뻐지니?”라고 물었어요. 

전에는 손녀딸이 예쁜 이마를 가리고 단발머리 스타일을 하고 다녔거든요. 할머니가 그 예쁜 이마 좀 내 놓고 다니라고 했는데도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마도 내 놓고 웨이브가 있는 아주 멋진 머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 남자 아이가 자기를 쫓아다니면서 그렇게 속을 썩인대요. 그냥 꾹꾹 찌르고 잔소리를 한 대요. 그 남자 아이가 여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찾느라고 찾은 게 꾹꾹 찌르고 못살게 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건 그 아이가 너를 좋아한다는 표시다. 그게 너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하는 행동이야. 이제 겨우 5학년 아니니! 그건 좋아한다는 표시니까 그런 줄 알아.” 했더니 손녀딸이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하더라고요.

남자 아이들이 5~6학년이 되면 여자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당연하고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면서 처음에는 남자는 남자 친구, 여자는 여자 친구가 생깁니다. 혼자는 안 됩니다. 친구가 최고예요. 벌써 중학교 들어가면 엄마는 밥해 주는 여자입니다. 아, 초등학교까지는 말도 잘 듣고 엄마, 엄마 하고 따라다니더니 벌써 중학교 들어가면 엄마는 두 번째요, 아빠는 다섯 번째예요. 그리고 말을 안 듣습니다. 말대꾸를 해요. 그리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엄마 아빠가 속상해요. 말 잘 듣던 아이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아주 속상해요. 그런데 여러분, 속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아이가 뭐라고 하는 것인가? “엄마, 아빠, 이제 제가 독립적인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내 머리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동하고 나는 앞으로 엄마, 아빠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그러나 집을 나가 혼자 살 때까지는 엄마 아빠가 계속 잔소리를 하고 고쳐주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미리 미리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이 듣기 싫어해도 말해줘야 합니다. 그것들이 다 입력되어 있다가 어느 날 어디선가 혼자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다 옛날 부모님이 해 준 그 말씀들이 생각나서 그것을 기준으로 인생을 결정하면서 혼자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생겨서 드디어 우리가 자기 사람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준 것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인도해 주신 것처럼 자기 사람을 인도해 줄 때 눈이 번쩍하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보다 잘나고 예쁜 사람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런데 다 아닙니다. 아무리 예뻐도 소용없습니다. 내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인도해 준 바로 그 사람, 여러분과 제가 바로 “Yes!”했던 바로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인도해 준 사람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요. 마치 아담이 하와에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했듯이 여러분, 우리는 늘 이런 표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늘 애정을 표현하면서 작은 사랑의 표현들을 종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관계 속에 사는 우리들인데 남녀는 하나님의 디자인인데 우리는 그저 간단한 말이지만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고마움을 표현하는 작은 단어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좋은 단어들은 아주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마워요” 네 글자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너무 중요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좋아요” “용서해요.” 문장이 길지 않습니다. 이런 작은 단어들을 통해서 여러분이 서로서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말해주고, 또 “고마워” “용서해” 짧은 말이지만 이런 것들을 통해서 당신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표시들을 늘 하면서 좋은 대화가 여러분 사이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작은 메시지들이 많이 필요하고 미리 미리 서로 대화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실상 돌이켜 보면 어떻게 해서 결혼을 했나? 결혼 전까지 많은 대화가 있었습니다. 전화, 편지, 이메일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표현했기 때문에 거기서 감동이 일어나서 결국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식 딱 마치면 그 간단한 말들을 안 써요. 어느 분이 친구들과 함께 어디를 갔는데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왔답니다. 아내들이 걱정이 돼서 전화들을 했대요. 

그런데 유독 한 명에게만 전화가 안 왔대요. 그래서 “아니, 네 와이프는 왜 전화를 안 하니?” 하니까 “우리는 전화 안 해!” 그러더래요. “전화가 안 오면 너라도 전화해라. 집에서 걱정할 거 아니니?” “걱정 안 해!” 버티다가 하도 성화를 하니까 전화를 걸었답니다. “여보세요? 왜 전화 했어?” “아, 친구들이 하도 하라고 해서 했어.” “알았어. 끊어.” 아, 만약에 여러분이 그렇게 반응했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서로 소중함을 알고 그저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왜 전화했어?” “그저 한 번 해 보고 싶었어.”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전화 해보고 싶어서 했을 때 찡~ 하는 그 마음,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로다”라는 표현까지는 안 가도 짤막한 단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리 사용해서 서로서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노력을 하십시다. 

그런데 이것도 젊었을 때는 했는데 10년, 20년 안 하고 나서 하려고 하면 멋쩍어요. 그래서 말을 해 놓고도 ‘아휴,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합니다. 서로 간에 멋쩍습니다. 이것이 멋쩍으면 큰일입니다. 더욱이나 결혼생활 속에서 대화가 없으면, 함께 함이 없으면, 같이 취미를 나누고, 같이 동행하는 일이 없으면 이제 여러분이 은퇴하고 나면 큰일 입니다. 서로 말하는 훈련을 안 해놨기 때문에 이제는 한 방에 하루 종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제가 들어보니 남편이 은퇴하니까 아내들이 죽겠다고 해요.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늘 대화를 해서 둘이 있어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서로 힘든 겁니다. 

여러분, 서로 미리 연습을 하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혹시나 은퇴를 하면 “야, 잘 됐다. 아이들 다 나갔으니까 우리 둘이 신혼처럼 살자!”이렇게 오히려 여러분 두 분만 계실 때가 더 재미있을 수 있는 이런 훈련과 연습과 표현과 행동들을 여러분의 삶 속에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까 하십시오. 왜 아멘을 두 분만 해요? 

그렇습니다. 안 그러면 은퇴하고 나서 이것은 지옥이요, 독방이요. 한 집에 살면서 독방에 사는 사람처럼 서로 말을 할 줄 몰라요. 말을 대꾸할 줄도 모르고, 반응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할지 이런 것을 모르니까 우리가 젊었을 때 우리가 미리 연습을 해서 아이들이 커서 다 나갈 때 그때야 말로 우리 세상이에요. 우리가 처음에 둘이 결혼을 해서 둘이 재미있게 살았던 것처럼 그동안에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다음에도 여러분 두 사람이 즐겁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축복들이 꼭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다.” 이런 느낌을 서로 가지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남자 혼자는, 여자 혼자는 불안전합니다. 우리의 모자란 부분들을 보충하면서, 영어 성경을 보면 ‘helper’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돕는 사람입니다. 어떤 종류인가? 남자에게 적합한 도움이요, 여자에게 적합한 도움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을 창조해 놓고 고릴라와 살라고 하면 어쩔 뻔 했어요? 우리와 똑같은 인간, 서로 대화가 통할 수 있고, 서로 배울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남편과 아내를 주신 것을 여러분, 감사하면서 꾸준히 일생을 거쳐서 잘 개발함으로 여러분이 노후가 되어도 더욱더 즐거운 인생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본문에 보면 결혼의 세 가지 원리가 있는데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떠남의 원리가 있습니다. “아내와 연합하여” 연합의 원리가 있습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어다.” 일치의 원리가 있습니다. 결혼은 무엇인가? 첫째는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요새는 부모님이 하도 신경을 써서 부모님 떠나기가 힘들어요. 부모님들은 안 놓아주려고 해요. 제가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 나이가 40이 됐는데 부모를 못 떠나요. 사사건건 부모와 상의해요. 부모를 의지해요. 이런 남녀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부로 만드신 것은 우리 둘이 독립적인 존재로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옛날 우리 시대 사람들은 결혼할 때 뭐가 있었습니까? 집, 차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작은 집 단칸방에서 연탄을 때면서 둘이서 빈손으로 출발했습니다. 두 사람이 많은 노력을 거쳐서 오늘에 온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공부를 시켜주는 것, 부모의 책임입니다. 결혼할 때까지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부모에게 집을 해 달라고, 차를 사 달라고 합니다. 물론 부모도 해 주고 싶죠. 그러나 두 사람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젊은 남편과 아내가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사람이라고 믿고 나가면 그들도 부모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젊은 부부들이 부모님의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해요. 부모님이 그렇게 된 것은 30-40년 걸려서 그렇게 된 것이지 결혼했을 때부터가 아닙니다. 결혼할 때는 무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결혼해도 두려워할 것 없어요. 그 둘이 부모를 떠나서 한 몸, 하나가 되어서 두 사람이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평생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도 부모를 떠나야 되고 부모는 특별히 자식을 놔 줘야 합니다. 제가 가정 문제를 보면 부모가 아들을 놓지 않습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의 인생을 계속 만지고 간섭하니까 깨집니다. 더욱이나 시어머니와 아들이 한 패가 돼서 며느리를 대적합니다. 이런 게임해서 며느리가 살아남을 도리가 없습니다. 또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도 손을 떼야 합니다. 아찔아찔하고 힘들어보여도, 빨리 가서 손잡아 주고 밀어주고 당겨주고 싶지만 기도해 주세요.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부모가 도와주려다 더 깨뜨려버립니다. 제가 보니까 젊은 가정들을 깨는 그런 부모가 있더라고요. 

여러분, 다 키워서 결혼시키면 그때부터는 매일같이 옛날에 했던 것처럼 기도하되 이제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서, 딸과 사위를 위해서 꾸준히 아찔아찔해도 쫓아가서 붙잡지 말고 저희들이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배워서 강한 좋은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은 꾸준히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이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연합의 원리가 있습니다. 연합의 원리는 짜는 겁니다. 마치 대나무 조각들을 가지고 한 홀씩 한 홀씩 짜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듭니다. 서로 서로 장점을 가지고 짜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단점이 없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장점이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혼하니까 단점이 자꾸 보입니다. 단점은 여러분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습니다. 단점을 들춰내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단점을 들춰내기 시작하면 그동안 참았던 것을 다 토해내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비판을 받고 싶지 않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면 너희가 한 그 비판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습니다. 단점은 다 있습니다. 단점을 모르는 척 하세요. 지적해 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단점은 지금 생긴 것이 아닙니다. 5살 때부터 있던 겁니다. 엄마가 말했고, 학교 선생님들이 말했고, 친구들이 지적했고, 윗사람들이 평생 나에게 지적했던 그 단점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가 또 지적을 하면 아, 힘듭니다. 그래서 단점들은 그저 못 본 척 하세요. 내가 본 척을 하면 상대가 또 본 척을 합니다. 여러분, 장점과 장점이 합해져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결혼한 것은 장점과 장점이 합해서 결혼한 것입니다. 결혼 후에 단점과 단점에 초점을 두면 망합니다. 망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오늘부터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단점을 또 보더라도 못 본 척 하십시오. 들어도 못 들은 척 하십시오. 그리고 장점들을 모아서 작년보다 금년에 더 아름다운 가정들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서로 엮어 가야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엮어가야 합니다. 

또 한 몸을 이뤄야 합니다. 이 말은 종이 두 장을 풀로 붙인다는 말입니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가치관도, 생각도 서로 달랐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 갑니다. 결혼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성숙한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고 성숙을 향해 함께 전진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자고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지는 축복을 체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엮어가면서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제 아내를 아는 사람들이 종종 “목사님하고 사모님하고 너무 닮았어요.” 나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와 제 아내가 닮았다는데 저는 그 말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고 저와 제 아내는 너무도 달라요. 그런데 그렇게 닮았대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지만 오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좋아하는 것, 안 좋아하는 것 눈치만 딱 봐도 알잖아요. 말 안 해도 오랜 세월 같이 살면서 서로서로 보충을 해나가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가니까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그런 거예요. 

우리가 보완됨으로 둘이 다 성숙해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아내를 주셨고, 남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정이 계속 함께 성장하면서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서로를 섬겨서 금년에 더 좋은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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