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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의 처를 기억하라 (눅 17: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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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처를 기억하라 (눅 17:28~35) 
 
  
오늘 읽은 본문 32절에 보면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때때로 인용하셔서 그것을 교훈으로 주셨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예비요 준비요 예시요 그림자며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우리가 신앙생활의 교훈으로 받아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우리 주님이 거하시는 집이요 침상이요 요람이며 그릇이요 도구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집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길과 진리와 생명인줄로 믿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오늘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보면 더 확실한 깨달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롯의 처가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의 조카이며 구약의 족장이었던 롯의 아내였으나 성경에보면 "뒤를 돌아본 것 때문에, 머뭇거린 것 때문에 멸망당한 자"의 전형적인 샘풀로 범례로 실례로 모델로 기록된 여인입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소돔성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성은 음난과 폭력과 각종 죄악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서 회생불가능한 상태로 타락한 성이었습니다. 홍수가 소용돌이 치며 댐으로 밀어닥칠 때 댐을 무너뜨리든지 범람하든지 하는 위험에 있게 된 형편과도 같습니다. 영어사전을 보면 Sodomite(소도마이트)라는 단어는 소돔사람이란 말인데 그 뜻은 "남색하는 자" "수간하는 자" "음난한 자"란 뜻입니다. 
범죄자의 대명사요 경계해야할 사람, 주의해야할 사람, 마음과 행위를 함께 해서는 않될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같이 해야 할 사람도 있지만 절대로 같이 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같이 해서는 않될 사람들과 같이 하다가 낭패를 당하고 망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소돔, 그곳을 사랑하였고 그곳에 마음을 두었고 그 곳에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소돔에 대단 집착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삽니다.  
돌아볼 가치가 없는 것을 돌아본 롯의 처의 종말은 무엇이었습니까?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으며, 롯의 처와 같이 행하면 저렇게 된다고 하는 교훈을 주는 얘깃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23:12-13절에 보면 " 너희가 퇴보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면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라고 했고 주님은 복음서에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신에 보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 하리라"(10:38)했고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진다"(히 10:39)고 경고했습니다. 

요즈음 어느 도시에 가나 고층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높은 철제탑을 세워놓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꼭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래를 내려다 보지 않고 앞만보고 위만처다보고 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현기증이 나고 공포증이 생겨서 일을 제대로 할 수도없고 또한 아주 위험한 일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달려가는 생활을 해야 안전하지 자꾸 좌우로 겉눈질하고 뒤를 돌아보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생활을 하게 되면 아주 위험한 신앙생활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그런 의미에서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롯의 처의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1. 롯의 처는 피동적인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롯의 처는 아브라함의 조카 며느리였습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였으며 그녀는 바로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가문의 혈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브라함과 같은 롯과 같은 믿음은 없었습니다.
믿음은 개별적인 것입니다. 모태 신앙이라고 해서 결코 좋은 믿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혈육의 신앙은 다시 한 번 거듭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억지로 끌려가는 형식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이름만 교인이지 실체는 비기독교인과 다를 바가 없는 그런 교인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롯의 처는 남편에 의해서 딸들에 의해서 그리고 천사의 강권에 의해서 천근만근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떼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형식직이고 피동적이고 타동적인 신앙생활에는 왜 그리도 유혹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뿌리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경사진 곳을 걸어가거나 서 있는 사람이 항상 넘어지고 미끄러질 위험성이 있는 것과 같은 형편입니다. 
  
거미줄이 굴러 떨어져 가속력이 붙은 바위덩어리를 막아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피동적이고 형식적이고 타율적인 신앙생활은 시험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은혜 받기에는 적절하지 못합니다. 구원 얻는데는 부적합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경기에 직접 참여하여 뛰는 사람보다도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의 사망율이 훨씬 높다고 합니다. 심장전문의에 의하면 우리 자신이 경기에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 관중이 될 때 , 심장에 부담이 더 되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몸의 무게 , 혈압, 맥박, 코레스트롤, 지방질 분해 같은 것들이 올라가게 되고 반대로 활력, 산소흡수량, 적은성, 원기, 힘은 약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관람만하고 방관만하고 구경만 하고 있으면 위험해 집니다. 해롭습니다. 비판, 낙심 환멸, 권태가 발생하고 영적인 모든 것이 희미해 집니다. 그러므로 으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우리가 힘써서 경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고 우리가 직접 헌신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율적이고 자구적이고 자원적이고 자동적인 신앙생활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에는 많은 시험들과 유혹들이 소리없이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물러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신앙의 즐거움에 빠지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롯의 처는 말씀을 경히 여기는 신앙인이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돌아보지 말라면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인진줄 알고 돌아보지 말아야 옳았지만 롯의 처는 그 경고를 깨끗이 무시했고 소홀리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해 절대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지 않으면 기다리는 건 멸망뿐입니다. 찬송가에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노래하였습니다. 롯의 처는 세상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여 소금기둥이 되었고 그녀의 모든 재물은 불타버렸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소식이며 구원의 은총입니다. 이 복음을 무시하고 소홀리 하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복음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무엇을 버리거나 잃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직접 찾아서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막 10장 29절-30"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믿습니까?

창세기 19장에보면 롯의 사위들에 대한 기사가 가록이 되어져 있는데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14) 했을 때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4)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히 여기고 불순종했던 롯의 처,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의 종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롯의 처나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쓸데 없는 걱정거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괜한 걱정거리를 주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면 1점 1획이라도 경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3. 롯의 처는 결단을 하지 못하는 신앙인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몸은 소돔에서 빠져나왔으나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발걸음은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뒤로 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결단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인이 누구입니까? 교회는 "Calling Out"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불러냄을 받은 자가 교인인 것입니다. 소돔, 갈대아우르, 애굽 등, 죄악과 사망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롯의 처는 벗어버릴 것은 벗어버리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하겠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롯의 처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죄악에 물든 마음을 버리는 결단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사람, 소돔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결국은 소돔사람과 운명을 같이 하고 말았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몸은 출애굽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출애굽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거리였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광야길을 가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육신 뿐이었고 마음과 영은 여전히 애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교회당에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고 세상에 있습니다. 

아직도 소돔과 소알 사이에서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결정하지 못해서 갈등 속에 있는 롯의 처와 같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4. 롯의 처는 구원의 은혜를 모르는 신앙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롯의 처는 분명히 소돔의 멸망 가운데서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소돔에서의 구원은 은혜로 얻은 것입니다. 
성경이 증언해주는 것으로봐서는 롯의 처는 의로움이란 것은 별로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단지 믿음의 사람 롯을 남편으로 두었다는 것,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며느리라는 것 때문에 천사에게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창 19장 29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의가 롯의 가정에 전가가 되어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끊임없이 중보적인 기도를 한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죄악된 도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의 가정을 위해서 였습니다. 이 중보의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롯의 가정을 돌아보아 주신 것입니다. 롯의 처는 모든 소돔 사람들과 비교해서 참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그런 큰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롯의 처는 이 구원의 은혜를 귀중히 여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어떻게 하면 보답할꼬 하는 삶을 통하여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롯의 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영적 가치관이 형성되지도 않았고 내면이 변화받지 못한 자였습니다. 자기 생각이 강했고 남의 말은 듣지도 않는 안고하고 강팍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는 교만한 자였습니다. 때문에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소돔의 유황불에서는 건짐을 받았으나 소금기둥은 면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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