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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천적 성화생활③ : 더욱 힘써야 할 노동생활 (살전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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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성화생활③ : 더욱 힘써야 할 노동생활 (살전 4:9~10)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살전 1:3)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사도의 감사내용이고, 기억하고 있는 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영적인 연약도 있었다. 그것은 저들에게 있는 예수재림신앙의 열정에서 오는 현실생활의 부조화였다. 저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새로운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에 눈을 뜨게 되었다. 더욱이 예수님 재림과 그 재림으로 말미암는 새 하늘 새 땅의 도래, 이른바 신천신지, 무죄세계, 영원세계의 도래라고 하는 기상천외하고 황홀한 생명의 지식을 받게 되었다. 
  
저들은 예수 그리스도 재림사건과 새 세계의 도래, 그리고 현실 사이에서 사고의 혼란과 생활의 무질서 속에 빠지게 되었다. 저들 중에는 '규모 없이 행하는 자가 되어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살후 3:11)이 생겼다고 하였다. 사도는 이 일에 크게 걱정하고, 규모 있고 질서 있는 현세에서의 생활을 권면하고 있다. 

  1) 첫째, 종용한 생활을 하라고 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라고 하였다. 
  
여기 '종용'(?συχ?ξειν)이란 말은 '하던 일을 그치고 침묵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신 문제로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어왔을 때, 예수님은 저들에게 대답하시기를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라고 역문하셨다. 그때 「저희가 잠잠하거늘…」(눅 14:3)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시비를 걸면서 문제제기를 하던 저들이 '종용해졌다'는 의미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앞에서 구걸하며 고생하던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쳤을 때 이것이 참이냐, 아니냐 하고 시비가 벌어졌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설교하던 현장에 그 병 나은 사람이 함께 있었다. 그때 그 병 나은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행 4:14)고 하였다. 시비가 조용해져 버렸음을 뜻한다. 
  
여기 본문의 경우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일부는 아직 신앙의 단계가 깊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도 재림소망에 대해 몰지각함으로 현재생활을 무시하고 방종과 무절제로 일상생활 양식에서 평정을 잃고 살았다. 그래서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에 빠져서 돌아다니면서 남의 말을 누설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고, 일만 만들어 놓으며 분주하고 시끄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종용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으면 거짓과 훼방하는 일을 일으킨다. 그리고 쓸데없이 남의 일에 열심히 참견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경우의 신자들에게 '종용'하라고 하였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면서 모든 일에 절제하라고 말한 것이다. 교회 안에 일종의 광신자 부류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광신자들은 언제나 성경보다 앞서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이다. 주의 뜻보다 자기 뜻과 주장을 앞세우는 자들이다. 

  2) 둘째, 자기 일을 하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 중에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라고 하였다. 
 
이 말은 일만 만들지 말고 자기의 일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부류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곧잘 참견하고 그 결과 타인의 일에 방해를 주는 자들이다. 말하자면 내용없이 분주하기만 한 사람들이다. 자기의 신분과 위치와 행동을 망각하고 무질서한 궤도를 달리고 있는 자들이다. 자기 자신이 특별계시나 은혜를 받은 것처럼 과장하고 흥분하면서 교회생활의 규칙을 어기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은 교역자를 항상 괴롭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 종용하게 자기 일을 하라고 권면하였다. 자기 신분, 자기 직책, 자기 임무에 충실하라고 하였다. 그래야 자신도 영적 평정을 유지하게 되고, 교회에도 덕을 세우게 된다. 예수님의 재림이 박두할수록 '자기 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라'고 하였다(계 16:15). 신분 망각이나 직무이탈은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니다. 

  3) 셋째로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절 하반절에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이 말은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한 것이다. 이 본문의 중심은 예수 재림 앞에 사는 신자들의 충실하고 근면한 노동생활을 지목하고 있다. 
  
당시 헬라 사회 사람들에게 있어서 손으로 일하는 것은 노예들의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바울 자신은 손으로 장막 만드는 일을 한 사람이었다(행 18:3). 사도행전 20장 34-35절에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라고 하였다.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힘쓰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는 '대망을 가짐'을 뜻했다. '너희 손으로 힘껏 일하도록 힘쓰라'는 뜻이다. 

정말 기독교 노동관의 일면을 보여 준다. 결코 노동은 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섬기는 사실상 예배의 일부이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10)고 하였다. 
  
엿새와 이레의 법칙이다. 이레 되는 날에 하나님 섬기는 예배를 위하여 엿새 동안에 힘써 일하라고 한 것이다. 
이마에 땀이 흐르게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축복스러운 과업이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까지 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이라고 하였다(살후 3:11). 

독일 격언에 '노동은 기도이다.'라고 하였다. 영국 격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벵겔(Bengel)은 '노동은 천국 맛을 본 사람에게 필요한 교훈이다.'라고 하였다. 
  
천국 맛을 본 사람에게 재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 6:17-18)고 하시며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였다.
  
좋은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알게 된다. 참종교는 그 신앙인들의 삶의 열매로 빛을 발하게 된다. 근면하고 아름다운 노동생활로 복을 누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야말로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멋진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중에 한 사람은 '나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 순간까지 의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종용히 생활하라, 자기 일을 하라,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는 이 세 가지 권면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노동생활을 힘쓸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2절에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신성한 노동생활의 힘씀은 외인(外人), 곧 불신자들에게 '단정히 행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여기 '단정'이란 말은 '좋은 모양'을 의미한다. 이치에 합하게, 사리에 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신자나 불신자나 같은 노동으로 재물을 취하는데, 그 목적과 사용하는 내용은 불신자들과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로 그 물질을 선용함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예수 재림 앞에 사는 성도들의 경제적 자립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남을 의지하고 무위도식함으로 비난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한 내용이다. 
  
그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의 영적 자립, 곧 주 안에 굳게 서는 것과 아무에게도 궁핍함을 보이지 아니하는 것, 곧 경제적 자립이야말로 재림 소망의 삶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표식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이다. 웅변이 아니라 생활이다. 그것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사실상의 복음 소망의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종용히 자기 일을, 자기 손으로 일하면서 영육으로 자립하는 크리스천의 삶이야말로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설교(전도)가 되는 것이다. 
  
더욱 힘써야 할 성화생활은 개인적으로 거룩한 삶, 곧 부부도덕에 있어 정결에 힘쓰는 것이다. 이웃에 대하여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적으로 종용히, 자기 일을, 자기 손으로 감당하여 자족하는 경제생활 곧 노동생활에 힘쓰는 것이다. (석원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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