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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삶의 순례(7) : 나사렛 회당 (눅 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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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삶의 순례(7) : 나사렛 회당 (눅 4:16~21) 


여러분, 제가 우리 시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몇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할 때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피터 드러커, 스티븐 코비, 존 맥스웰, 지그 지글러, 켄 블랜챠드. 예, 이들은 우리 시대의 경영 이론가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리더십 이론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소위 motivational writer이면서 motivational speaker의 명예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은 이들은 대부분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 근거한 세계관을 소유하게 된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pro-christian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통해 지나간 2-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소위 경제 마당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트렌드가“ 경영 리더십 발견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전에는 경제하면 단순히 이익 창출만이 가장 중요한 관심이었습니다만 이제는 이익 이상으로 고객을 움직이고 고객을 움직이기 위한 주체들을 결속시키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시대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최근 전 세계 모든 기업이나 관공서 그리고 대부분의 교육 기관, NGO기관 그리고 종교 기관등에서 소위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작성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혹은 새로운 조직 개편을 하면서 우리는 자기가 속한 단체들의 존재 이유를 규명하고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진술하고 선언하는 일을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 주님의 고향과도 같았던 나사렛으로 돌아와 소위 회당 예배에 참여하시면서 주님의 최초의 설교를 하시게 된 자리를 보여 줍니다. 장소는 ‘나사렛 회당’입니다.(지금도 나사렛 시장 근처에 이 회당을 보존함) 여기서 주님은 그의 첫 설교를 통해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명과 그리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 가를 선언하시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예수님의 사명 선언문 선포식의 현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회당 설교에 계시된 메시아의 사명, 그를 따르는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 낭독하신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날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침례 요한처럼 오실 메시아를 증거하는 또 한분의 선지자로서 그의 설교 말씀을 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날 그의 설교의 결론은 이렇게 끝납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유진 피터슨은 그의 <메시지>에서 이 대목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방금 너희가 들은 말씀이 역사가 되었다. 이 성경 말씀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예수님이 메시아가 되어 이 땅에 오셨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일을 이루실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실 일 첫째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는 문자 그대로 경제적인 가난, 혹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해방 신학자들이 선호하는 해석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보다도 영적인 마음의 가난을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61:1에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다음에 첨가된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로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산상수훈 8복에서 다시 이 말씀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심령의 가난은 무엇보다도 메시아를 받아드릴 만한 겸손한 마음을 뜻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절박한 심정의 환자처럼 ‘의사되신 예수님’(23절) 앞에 나아와 자신의 병든 처지를 인정하고 그 분의 치유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의사요 구주이신 예수님과의 만남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때 나사렛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절하고 그분을 마을에서 내어 쫓아 버립니다. 자신들의 죄인 됨을 인정할만한 겸손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 마을 사람들처럼 복음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쁘게 복음을 수용합니다. 그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고 오늘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2. 포로된 자를 자유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기 언급된 인간 실존의 양상들은 모두 죄의 결과들입니다. 왜 우리의 마음이 상하고 병들었을까요?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여 우리를 포로 된 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죄의 포로 됨의 상태를 롬7:19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 도다.” 이것이 영적인 자유를 상실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현대의학은 이런 상태를 중독이라고 묘사합니다. 내가 무엇인가에 중독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중독된 일을 떠나면 내가 죽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금단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중독과 은혜>라는 책을 쓴 정신과 의사요 영성 지도자였던 제랄드 메이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98는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나머지 2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무엇인가에 중독된 채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중독에는 아름다워 보이는 중독도 있고 혐오적인 중독도 있습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중독들은 커피중독, 슈거중독, 알콜, 마약, 성, 도박, 쇼핑, 드라마, 음식(식탐, 거식증), 일 중독, 요즈음 심각해지는 인터넷 중독 등이고, 혐오적인 중독에는 도둑질, 거짓말, 화내기, 질투, 자살환상, 이웃비방(가십), 코딱지후비기.그러나 이 모든 중독은 우리에게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과연 이렇게 포로 된 인생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십니다. 

요8:36을 기억하십니까?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즉시 자유로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 안에 들어와도 진정한 자유를 얻기 까지 좀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그가 진지하게 예수님과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그는 마침내 자유를 얻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이 아닙니까? 포로 된 자들의 자유.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고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3.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는 일입니다.

죄는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우리의 눈을 멀게 합니다. 우리는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약속하십니다. 복음이지요. 물론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문자 그대로 눈먼 자들에게 안수하시어 고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맹인 된 자를 치유하면서도 인간의 영적 맹인 된 상태에 더 큰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요한 복음 9장이 어떻게 끝나고 있는지 기억하십니까? 

요9:40-41입니다. “바리새인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아직 예수 믿지 못하고 죄 사함 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이야 말로 영적 맹인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심중고의 인생을 살았던 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눈을 가지고 있으되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미래도 보지 못하고 사랑도 보지 못하고 생의 목적도 보지 못하고 사는 인생들에게 오신 예수님은 보지 못하는 이들의 눈을 만지십니다. 

마가복음 8장에 나타난 맹인에게처럼 예수님은 그의 눈을 두 번이나 만지시며 묻습니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영적 맹인들이 눈이 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래전 우리 나라 코미디언 계의 원조이신 구봉서 장로님과 미국 여행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비행기내에서 제가 자꾸 졸고 있으니까 “목사님 제가 성경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하셔서 “예, 말씀하시지요”했습니다. 그랬더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닙니까? “하니까 “아니라”고 하면서 <너 나 보이니?>하셨을 것이라고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그러나 일리가 있는 말씀이 아닙니까? 영적 맹인의 눈이 열리면 주님이 보입니다. 그리고 사랑해야 할 이웃이 보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인생의 비전이 보입니다. 이것을 바로 ‘영적 개안의 체험’(eye opening experience)이라고 합니다. 이 사명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4.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to release(free) the oppressed"입니다. 우리네 삶의 마당에는 온갖 눌린 인생을 사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포로 된 자들이 중독 인생이라면 이들은 학대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학대(abuse)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릴 적부터 타인들에 의해 정신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말로 혹은 심리적 강압으로 아니면 문자 그대로 폭력적 행동으로 억압되거나 상처받는 경험을 뜻하는 것입니다. 

학대의 결과는 우리 마음에 깊은 쓴 뿌리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학대하고 이웃을 믿지 못하고 자기 연민과 무력증의 삶, 그리고 자학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는 이유가 눌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름의 배후에는 누르는 자, 원수 마귀가 있다고 말합니다. 때로 마귀는 불의한 권력자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의한 제도를 사용해서 연약한 인생들을 착취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와 맞서서 혹은 마귀가 부리고 있는 권력들과 맞서서 자유를 선포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어둠의 세력들은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오시고 그가 말씀하시는 곳에서 눌린 사람들은 치유를 경험하고 자유를 얻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위탁하시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누가9:1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며” 예수님이 그렇게 인생들을 도우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갖고 나아간다면 우리도 오늘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니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고 지금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본문 19절에 보면 이것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일하시는 은혜의 시대, 은혜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말입니다. 이 <은혜의 해>라는 말은 본래 구약시대에 제50년(안식년을 7번 보낸 다음해)이 되는 해를 희년(the year of Jubilee)이라고 해서 노예도 자유를 얻고, 빚도 탕감 받고, 땅도 안식하는 해를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바로 그 때가 왔다는 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사야가 이 말씀을 할 때 사61:2에 보면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한다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보복의 날은 일부러 생략하신 것입니다. 그때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때는 바울의 말처럼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고후6:2)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은혜를 맘껏 받으십시다. 은혜를 누리십시다. 그리고 그 은혜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나누고 전하십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입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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