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마 9:9~13)

  • 잡초 잡초
  • 309
  • 0

첨부 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마 9:9-13)

성경이 어렵다고 하지만, 읽으려는 마음만 있고 조금만 마음을 써서 읽으면 참 쉬운 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은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권능이 있어 그 성경을 읽는 이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예가 많습니다. 

한국 초대 교회 때, 성경을 판매하러 다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권서(勸書)인’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한 사람에게 한 권씩만 팔았답니다. 돈 많이 벌려면  많이 파는 것이 상책이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말씀을 보급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한 권씩만 팔았고요,  또 성경이 벽지로 쓰기에 너무 좋아 인기가 많아서 한 권씩만 팔았답니다.  그런데 성경을 찢어 벽지로 바른 곳에서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누워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 자연히 벽에 바른 성경말씀이 눈에 들어와 읽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니 믿음이 들어가고,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어렵지 않습니다. 잘라진 성경을 읽기만 해도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도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핵심을 읽기만 해도 쉽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셨는지, 그리고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몇 절에 나옵니까?   

13절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12절도 같은 뜻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우리 주님은 병든 자를 고치며,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 3:16, 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지 오해와 모함을 받는 것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신종플루가 유행이었을 때 예방접종을 가장 먼전 한 이들이 의료인들이었습니다. 병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이들이 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처럼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같은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당시에 세금을 거두는 세리들은 매국노와 같은 존재였고 늑탈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 당국은 아주 현명했습니다.  세금 징수를 위해서 자기들이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현지인을 세웠는데, 이는 자기들의 사정을 자기들이 더 잘 알아 숨은 재원까지 파악할 수 있었고요  식민지배의 원성도 조금은 비켜 갈 수 있었습니다.  로마 당국은 자기들이 거두어야 할 것만 챙기고 그 이외의 것에는 상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정한 세 이상의 것을 마음대로 거두어 들이면서 자기 배만 불렸습니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선포할 때, 세리들을 향하여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눅 3:13)”고 했습니다.  

거지들도 세리가 주는 돈은 받지 않았고요, 일반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말은  “산중에는 무서운 사자가 있고 거리에는 포악한 세리가 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창녀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세리의 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세리들과 한 통속으로 지내는 죄인들이 몰려왔고 예수님은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삭개오도 세리장이었습니다.  세리인데다가 한 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키 작은 루저(loser)인 그는 죄인이요 왕따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삭개오에게 가셨고, 친히 그의 집에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눅 19:7)”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집은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그 좋고 굉장한 소문으로 유명한 예수님이 집에 들어오셨으니 집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의 집도 똑같은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마태의 이름이 ‘레위’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 중에는 레위지파도 있습니다.  마태가 레위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정통 이스라엘 사람, 또한 제사장처럼 많은 사람들의 영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지로는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변절자, 매국노가 되어 상종도 하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에서처럼 이제 예수님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적대자에게 까지 모함과 정죄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간 가신 것이 일이 점점 더 꼬여가고 힘들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모든 것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병을 고치려면 병자를 만나야 합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려 하면 죄인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정죄가 있는 줄 알면서도 사랑하기에 기꺼이 마태의 집에 가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가르쳐 ‘죄인들의 친구’라고 정죄했습니다. 귀신들려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귀신을 쫓아 주셨을 때는  마 9:34에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 낸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온갖 오해와 험담을 다 들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을 찾아 만나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결국 정죄의 극치로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의 사형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어찌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도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을, 때로는 잘못하는 우리들을 채워주시며 고치시며 하나님의 귀한 일에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떻게 부름을 받았는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전 1:12-15, 개정)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바울은 박해자요 폭행 살인 자였지만 하나님 사랑의 은혜로 변화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이 말이 받을 만하다, 곧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지금도 동일하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스로스츠’라는 죄수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40년 동안 교도소 생활을 하고 가죽채찍으로 50번씩 여덟 차례(총 400대)나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나 교도소에서는 그런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암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구세군 숙박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사랑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려고 지금 여주에 짓고 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모범수로 출옥하였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구세군 출옥자 보호소에서 18년간을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400번의 가죽채찍이나 40년간의 교도소 생활로도 변화되지 않은 내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1,2분 만에 변화되었습니다.” 

인육을 먹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지존파를 아실 것입니다.  철저하게 실패한 인생들입니다. 세상을 저주하며 압구정동 야타족을 못 죽인 것이 한이라고 하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1471번 김현양은 변화되어 교도소에서 30명 이상을 전도하고 천국에 갔습니다. 자신에게 넣어준 영치금은 전도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사주었습니다. 그가 사형장에 벗어 놓은 흰 운동화에는 성경 두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니라"(눅23:43)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3888번 김기환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먼저 가는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피해자와 그분들의 가족과 모든 분들게 사죄드립니다.  보살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집은 교회 설립하는데 시신은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기증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은 긍휼입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처럼 심지어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은 그렇게까지 한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사랑으로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기 때문에 받는 온갖 모함과 멸시에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사랑에 감동을 받아 마태는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시고 자상하게 고쳐 주시는 주님을 닮아 갔습니다. 
그의 일터는 고혈을 짜내는 세관이 아니라,  아픈 상처를 싸매주는 병자의 집이 되었습니다.  세금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려고 꼼꼼하게 따지고 기록했던 펜과 손은 예수님의 행적 하나하나를 자세히 기록한 손이 되어 마태복음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순교록에 보면 그는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고 아프리카 에디오피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서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화가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순교]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로마 콘타렐리 성당에 걸려있는데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왕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바닥에 내팽겨져 목 메임을 당했답니다.  그림에는 그 순간 천사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할 때 사람들이 흔들었던 종려나무 가지를 그의 손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귀하고 복된 삶으로 마감하는 순간입니다.  똑같은 사랑을 지금도 받고 있는 우리들도 귀하고 복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