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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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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 1:1~6)󰓍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축복의 인사를 나누면서 한 해를 출발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우리들은 대체 어떤 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까? 내가 바라는 기준에서 제일 좋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일 텐데, 그럼 어떤 복이 제일로 중요한 것일까요? 
  
동양에서는 오복을 말했습니다. ‘서경’의 홍범편에 의하면 오복은 장수를 원하는 수(壽), 부유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富), 일생동안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강녕(康寧),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자는 유호덕(攸好德), 일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바라는 고종명(考終命)입니다. 이런 것들의 바람은 지도계층이 소망하는 복입니다. ‘통속편(通俗編)’에 기록되어 있는 민간인들이 바라는 복은 수·부·귀(貴)·강녕·자손중다(子孫衆多)입니다. 유호덕이 귀로, 고종명이 자손중다로 바뀐 것은, 귀하게 되는 것이 남에게 봉사하는 것이고 자손이 많은 것이 고종명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서민적 성향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모든 복은 인간중심적이고 현세적이며 물질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은 여덟 가지 복된 삶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적이고 영적이고 질적이며 가치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적으로 표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복입니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은퇴하여 말년을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월간지의 편집장이 된 한 젊은이가 옛 스승인 그 학자를 찾아갔습니다. 제자는 스승님의 살아온 업적을 싣고 싶다면서 자서전을 간략하게 씨 줄 것을 요청하며 원고를 청탁했습니다. 그 분은 학자로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이고 사회의 저명한 분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두둑한 원고를 기대하며 찾아간 제자에게 그 분은 종이 한 장을 내어 주었습니다. 펴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한줄 만이 쓰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받아가며 살아가는 인생은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바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또한 인생의 목적을 바로 실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삶의 과정이 아름답고 가치 있고, 그 끝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시편 저자의 노래와 같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줄 알고,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며, 그 은혜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소망하는 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며 하나님 나라를 실현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하며 공의로운 선행의 삶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삶의 질이 바로 만들어 짐으로 감사하며 기뻐하며 모든 사람과 이 세상 속에 복이 되는 인생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믿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편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기에 장애가 되는 것이 무엇임을 말씀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악’과 ‘죄’와 ‘오만’입니다. 인간이 이런 것들과 관계하는 데서 심각한 문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과 관계할 때에 악인이 되고 그것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꾀입니다. 이 꾀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서 오는 술수입니다. 바로 악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과 관계하는 인생은 이 술수를 따라가며 그 술수를 부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와 관계할 때에 죄인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결국 그 끝은 파멸이고 멸망입니다. 오만함에 빠질 때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을 조롱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에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시편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게 하는 것이 무엇임을 두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란 용어는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가르침’, 혹은 ‘하나님의 교훈’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으로 사람의 삶을 바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입니다. 묵상한다는 히브리어는 ‘중얼거리다’ 또는 ‘읊조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토라 곧 말씀을 밤낮으로 읊조리는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게 합니다. 악인이 흥왕하고 죄인이 번성하는 세상에서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고난 중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를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은혜의 복을 넘치게 하십니다.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형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게 하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할 뿐 아니라, 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감으로 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있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고, 악인의 꾀를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이루는 것 같지만 그들의 인생은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겨)와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죄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의 종국은 망함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의 복을 베푸십니다. 은혜의 축복하심 속에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을 의인으로 여기시며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편저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시37:39)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시118:15-16)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놀라우십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속량의 제물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섬세하며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의 복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복을 받는 복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는 인생을 살아가지 못함으로 바람에 날아가는 쭉정이 같은 인생을 경험했습니다. 망하는 인생의 목전에 거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충성스런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사바’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은 죄입니다. 이 죄는 탐욕의 악에서 만들어진 꾀, 곧 술수였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삼하12:10) 조롱하는 행위로서의 오만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주시는 문을 닫는 사람이 됨으로 복의 사람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사단의 크게 비방할 거리가 되었습니다.(삼하12:14) 결국 불륜으로 낳은 아이는 죽고, 자녀들 사이에 칼부림이 떠나지 않았고, 아들중의 하나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의 후궁을 욕보이는 망할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죄의 길에서 돌아서고 악인의 꾀를 버렸습니다. 결코 오만한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119:10-16)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읊조리며 살아가는 다윗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풍요를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칭하셨습니다.
   
여로보암을 책망하실 때에 다윗의 이름을 이렇게 거론하셨습니다.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왕상14:8)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왕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왕하20:6)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을 받고 살아가십시오. 그 은혜의 복을 누리십시오.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쭉정이로 서지 마시고 망하는 심판의 대상으로 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복 안에 있는 사람으로 사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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