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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계 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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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계 5:6~14)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리며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이라는 말로 마칩니다. 여기서 “나라”라 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송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에 보면 이 부분이 괄호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여러 사본 중에 어떤 사본에는 이 끝부분이 있고 어떤 사본에는 이 부분이 없어서 원문에 있었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부분이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덧붙인 것이라고 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기도문을 예배의식에서 사용하면서 앞의 청원부분은 회중들이 암송하고 이 송영부분은 인도자가 부르고 맨 끝의 “아멘”은 다시 온 회중이 화답하다 보니 회중들이 청원부분만을 암기하게 되었고 그래서 인도자가 부르던 송영부분은 많은 사본에서 탈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끝의 송영부분이 실제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든 아니든, 기도에 그러한 송영이 있는 것은 성경 속에서 아주 낯익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0-12) 사도 바울도 딤전1:17에서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송영이 거듭 반복되고 있습니다. 계4:9-11에서는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고, 계7:9-12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하며, 계19:1에서는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했다 합니다. 

이렇게 기도에서든 찬송에서든 하나님께 권능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은 예수님 이전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나 예수님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나 오랜 신앙적 관행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예수님께서 송영까지 가르치셨는지 아닌지는 단정할 수 없다 하드라도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이 송영으로 끝을 맺게 하시는 것이 부자연스럽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송영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정신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 송영으로 기도를 마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송영에 앞서는 여섯 가지 청원은 바른 기도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 송영은 바른 기도를 하는 근거와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것인 나라와 권능과 영광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수 있으며 또 우리의 기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그 궁극적이고 유일한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기를” 비는 청원이 주기도문 전체의 중심 청원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고 또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근거는 바로 그 나라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며 마귀의 유혹을 이길 힘을 주시기를 청원할 수 있고 또 그대로 되리라 믿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모든 권능이 하나님 아버지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기도문의 모든 청원을 감히 하는 것도 그 모든 청원이 이루어질 때 그 모든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청원을 하는 것이 물론 우리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고 그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우리도 영화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라는 송영부분이 단순한 송영이 아니라 바른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임을 봅니다. 

즉 우리가 기도하며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아버지의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능하신 만유의 창조주시요 섭리주시며 영원히 홀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으로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만유의 창조주시요 섭리주시며 영원히 홀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간구가 응답되고 실현되리라는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야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이러한 예언이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7:13-14) “인자” 곧 메시야로 오실 이에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즉 하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영원히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12절에서도 요한은 자기가 목도한 환상을 통해 받은 계시를 증언하며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합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어린 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이라 기도하게 하심으로써 아버지로부터 받으셨고 영원히 당신의 것인 그 영원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을 다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라고 되돌리시며 우리도 그렇게 알고 그렇게 행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와 권력과 명예와 행복과 건강 등 온갖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그것을 자랑하며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온전히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닫는 마지막 단어는 “아멘”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형용사적으로는 “확고하다”, “한결같다”, “참되다”는 뜻이며 명사형으로는 “신실함”,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아멘” 하는 것은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그것이 제 기도입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거나 그에게 순종과 충성을 다짐하는 방식이었고 제사장들의 기도에 화답하는 양식이었으며 자신의 기도의 진정성을 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옮겨다 놓고 감사의 찬양을 올린 후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자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대상16:36). 

바벨론의 포로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온 백성 앞에서 학사이며 제사장인 에스라가 율법책을 펴들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송축하자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느8:6). 사도 바울도 갈1:5에서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고, 엡3:21에서도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며,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1:17) 합니다. 

이 주기도문에서의 “아멘”은 바로 앞의 문장인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는 송영에만 붙는 것이 아니고 주기도문 전체에 다 관계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비는 모든 청원을 “아멘”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 외에 다른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이도 오직 하나님, 우리가 의지하는 이도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오직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일에 빠져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며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라 하며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부모 없는 아이나 하는 쓸 데 없는 근심걱정을 하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하고는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기도하고는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더러운 일을 행하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신 말씀대로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기도하고는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하나님만큼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나 다름없고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인데(레18:21, 19:12, 겔36:20-23)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는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내 나라를 세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왕이고 내 맘대로 하며 내게 기쁨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교회 안에서든 세상에 나가서든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제거하고 내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이유를 만들어서든 벌을 주고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어떤 중상모략으로든 매장시켜버리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그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하며 즐길까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했으며 우리는 그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깨뜨리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만을 생각하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망가뜨리는 것이며 그렇게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불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게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아멘”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가장 큰 뜻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인데 그 믿음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아멘”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인데 자기만 빳빳이 내세우고 십자가는 눈곱만큼도 지지 않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인데 넓고 쉬운 문으로만 들어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고 모두가 자기 말을 따라주기만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아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돌아볼 줄 모르며 사람들에게 행한 자기 잘못을 반성도 하지 않고 뉘우침도 없으며 사과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의 잘못을 깨우쳐준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며 온갖 나쁜 말 하고 다니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진심으로 회개하고 사과하며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할 줄 몰라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며 “아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세상 만들고 자기 힘을 자랑하며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것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아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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