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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새해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롬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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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롬 14:7~8)


어린 아기가 한 살, 두 살이 되어 가면서 키가 쑥쑥 자라고, 말을 잘 못하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인사도 어찌나 귀엽게 잘하는지, 잘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1년, 2년이 지나면서 믿음이 쑥쑥 자라날 때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도 한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성품에 변화가 옵니다. 우리의 성품이 점점 주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완악하고, 교만하고, 악하던 마음이 점점 착해지고, 온유해지고, 겸손해집니다. 불의하던 성품이 의로워지고, 거짓말 잘하고 거짓으로 가득 찬 성품이 점점 진실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기 때문에 삶의 자세와 목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을 보실 때 아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년 새해를 맞이해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게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 먹고 살 걱정은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는 마음을 가지길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어떤 책에서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사해 통계를 냈습니다. 걱정하는 것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또, 걱정의 30%는 과거의 일과 관련된 걱정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2%는 건강에 관련해서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또, 10%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8%만이 실제로 자기 일과 관련된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34절에서 우리가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 ?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이 곡식을 모아서 곳간에 쌓아놓습니까? 하나님이 기르시는 것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된 너희를 하나님이 어찌 돌보지 않겠느냐고 하십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길을 갈 때, 아무리 보아도 농사지을 곳도, 양을 칠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40년을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로 먹이셔서 한 사람도 굶어 죽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고, 옷이 해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먹고사는 문제를 책임져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어려움을 당해서 광야에 들어선 것처럼 살 길이 막막한 경우를 당했다면,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로 먹이시는 그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지, 정말 약속을 지키시는지, 어떻게 나를 먹이시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기회이니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광야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먹고 사는 것이 자꾸만 걱정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병들어 약해진 증거입니다. 자꾸 걱정하게 되면 믿음이 약해지고, 낙심이 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13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걱정 근심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흰머리가 생긴다고 걱정하면 흰 머리가 검은 머리가 됩니까? 키가 작다고 걱정하면 키가 한자나 더 자랍니까? 걱정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걱정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얼마나 몸이 상하는지 모릅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자기 나이보다 빨리 늙습니다. 제가 82년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시카고에서 부흥회를 했는데, 그곳에서 고등학교 동창 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이는 40세가 겨우 넘었는데, 꼭 80세 노인과 같았습니다. 사업하고 고생하며, 먹고 사는 것에 근심하다보니까 그렇게 늙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 爛求?.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세상 걱정을 자꾸 하면 믿음이 죽고, 마음도 상하고, 몸도 상합니다. 여러분, 세상 걱정을 너무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6~7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평안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항상 감사만 하면서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감사만 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감사만 하면서 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롬8:28).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감사만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 뿐 아니라,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게 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성품이 신실하시고, 말씀이 신실하셔서 행하심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만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심한 근시였습니다. 그는 항상 두 개의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나는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돋보기였고, 하나는 멀리 있는 물체를 바라볼 때 사용하는 안경이었습니다. 루즈벨트는 무거운 안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을 매우 귀찮게 여겼습니다. 한번은 루즈벨트가 밀워키에서 정치연설을 하고 있을 때, 괴한이 그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총알은 루즈벨트의 가슴을 정확하게 명중시켰습니다. 그런데 루즈벨트는 약간의 부상만 입었습니다. 총알이 루즈벨트의 양복 안주머니에 있던 강철 안경집을 맞고 튕겨간 것입니다. 평소 귀찮게 여겼던 안경집이 그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왜 나는 이렇게 눈이 나쁠까, 왜 나는 이렇게 무거운 안경을 가지고 다녀야 될까?’라고 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 고생을 했지만, 성경을 보면 한 번도 형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한 적이 없습니다. 참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욥은 고난과 시험당할 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마는 그럼에도 계속 감사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욥과 같은 고난과 시험이 올 때 무조건 감사만 하셔서 욥보다 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만 한다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뿐 아니라, 그 고난을 이길 힘이 생길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항상 감사만 했더라면 40년 동안 광야에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마 한 달 안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반복하다보면 습관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된 존재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의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명 된다는 것입니다. 주차장에서 주차하다 보면 예배시간에 늦을 수 있습니다. 한두 번 지각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일 년 내내 지각한다면 그 사람은 게으른 사람, 늘 지각하는 사람으로 판명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만 하는 습관을 갖기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감사만 하는 습관을 가지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도 기쁘고, 행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지만, 원망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원망 불평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가 실패를 했을지라도 원망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징검다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항상 기뻐하며 찬송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축복이 됩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움이 넘치면 엔돌핀이 나와서 우리 얼굴에서 빛이 나고, 건강해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얼마나 몸이 좋아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항상 기뻐하고 찬양하면서 살면 이런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잠언 15장 15절에는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온 가족이 기뻐하고, 시끌벅적 웃음소리가 나고 즐거워하면 그들의 마음은 항상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자신이 언제 순교할지 모르는데도 그렇게 기뻐했고,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2절에 보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편 22편 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을 할 때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찬양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 때에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사람들이 연합군을 이루어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 왕은 찬양대를 맨 앞에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리로다.’라고 찬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일으키셨습니다. 세 나라 연합군들이 혼란을 일으켜 서로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찬양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이 원수를 모두 멸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무너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간수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는데, 사도 바울에 의! 해서 그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고, 빌립보 교회를 세우는 멤버가 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처럼 찬양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령이 외롭고, 답답하고, 걱정이 생기고,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울 때, 여러분이 좋아하는 찬양을 계속해서 불러보십시오. 부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나고, 성령이 임재하시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찬양하면 성령이 임하십니다. 찬양을 세게 하면 귀신도 쫓겨납니다. 찬양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금년 한해는 항상 기뻐하며, 찬양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일을 꿈꾸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피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 7~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얼마나 큰일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며, 그보다 더 큰 일을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말씀을 가르치시는 여러 가지 사역을 하셨는데, 팔레스타인 땅, 우리 경상남도만한 작은 땅에서 활동 하다가 가셨습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땅 끝까지 주의 일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은 가장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사람에게 현세에서도 백배나 복을 더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면 잘 되어 봤자 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의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살 곳은 저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 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자꾸만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주의 일을 할까, 복음을 위해서 살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살면 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실 뿐 아니라 백배의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이 가장 기뻐하실 사람이 누구일까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다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꼭 실천하셔서 금년 한해는 꼭 이 말씀대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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