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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엡 5: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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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엡 5:17~21)


국군포로 최초로 탈북 귀환한 조창호(趙昌浩)는 6. 25때 포병장교로 참전했습니다. 인제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어 43년 동안 북한에 억류되었습니다. 13년간 감옥생활을 하였으며 나머지는 탄광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광부 노릇을 하던 중 규폐증에 걸렸으며 이어 왼쪽 눈을 실명했고 왼쪽 다리마저 절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1994년 목선을 타고 탈북하여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조창호, 그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북한에서 찬송을 부르며 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 '돌아온 사자(死者)' 라는 수기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교화소뿐 아니라 북한 어디에도 신앙의 자유란 없습니다. 교회에 가거나 예배를 드릴 수 없기에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물론 찬송도 부를 수 없었기에 속으로 불렀습니다. 혼자 이겨 내지 못할 괴로움을 주께 기도하면 늘 편안함과 의욕을 주셨습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원망해도 종국에는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기도하면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못난 자식을 위해 오랜 시간 기도하시던 어머니였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와 함께 있다고 믿어졌으며 어머니가 부르시던 찬송을 불렀습니다. 43년의 질곡이 신앙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만든 힘은 바로 찬송이었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주 예수 떠나가면 죄 중에 빠지리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찬송은 믿음을 유지하게 하고,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힘입니다.  

찬송은 천국의 언어입니다. 찬송함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편 103편에서 노래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입술만의 찬양의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찬양을 부른 것입니다. 찬양할 때 정확한 음정과 박자, 아름다운 음색과 감정 표현이 필요합니다. 기술적 발성과 호흡의 조절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래 부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은혜 받은 마음이 표현되지 못하면 귀를 즐겁게 하는 노래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혼을 움직이는 노래가 될 수 없습니다. 

한 친구가 찾아와 음악가 하이든(F. Joseph Haydn)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작곡한 음악들이 항상 영감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하이든은 대답했습니다. "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내 펜은 춤을 추며 음악을 만들었다네." 참으로 귀한 신앙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 합니까? 목소리로 노래하십니까? 마음으로 노래하십니까? 목소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신령한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는 어떻게 노래하라는 것입니까?
 
첫째로 주의 뜻을 이해하며

조니 에릭슨 타다(Joni Eareckson Tada)는 미국 여자 수영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다이빙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는데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지만 내 인생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텐데..."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만 여겨졌던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계획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불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와 소망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입에 붓을 물고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입술로 물고 그린 그림들이 팔려 나갑니다. 볼펜 회사에서 그녀에게 제의를 해왔습니다. "볼펜 광고를 만드는데 당신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때 그녀는 조건을 말했습니다. 

"내가 나오는 광고 밑에 P.T.L이라는 글자를 넣어 주십시오" P.T.L은 "Praise The Lord-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의 약자입니다. 그녀가 나오는 광고마다 P.T.L이란 글자가 들어갔습니다. 에릭슨 타다는 비록 불편한 몸이었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하였습니다. 그 후 그녀는 복음전도자로, 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미국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은 찬송 받으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세월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서 그 뜻을 찾는 일입니다. 말하고 싶은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이 아닙니다. 

욕하고 싶은 대로 욕하고, 원망하고 싶은 대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싶은 대로 불평하고, 거역하고 싶은 대로 거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규칙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모르도록 혼미하게 만듭니다. 감사하지 못하도록 불평하게 합니다. 마음과 입술을 강팍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노래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때 마음으로 노래함이 가능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으로 충만하며

어느 생선 장수가 가게를 내고 '이곳에서 신선한 생선을 팝니다' 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게에 들어와 말합니다. "간판에서 '신선한' 이라는 단어를 빼시오. 다 신선한 생선이 아니오?" "그렇군요" 주인은 간판에서 '신선한' 이라는 글자를 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합니다. "간판에서 '이곳에서' 라는 단어는 빼도 되지 않을까요? 이곳에서 생선 판다는 것을 다 알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아 그 글자도 뺐습니다. 

다시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합니다. "간판에서 '팝니다' 라는 말을 빼야 합니다. 거저 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아 그 글자도 뺐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더니 또 말했습니다. "간판에서 '생선' 이라는 글자도 필요 없습니다. 근처에 오기만 해도 생선 냄새가 나니까요." 그래서 그 글자도 뺐습니다. 결국 간판이 없는 생선 가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장사가 되지 않아 그만 가게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살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요구에 조금씩 신앙의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하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주체는 성령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향락의 지배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세상 것에 취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리가 없고, 능력이 나타날 수도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없습니다.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변할 수 없습니다.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 충만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괜찮은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빛과 소금을 역할을 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입술에 하나님께 대한 노래가 폭발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폭발합니다. 찬미를 하되 함께 하자며 서로 화답함으로 노래 부르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영으로 찬미했습니다.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을 찬미하고 서로 화답하기 위하여 부르는 찬송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히 역사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열리고 영으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셋째로 범사에 감사하며

어떤 사업가가 자동차 사고로 뇌를 다쳐 아버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8년된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딸을 위해 기도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서“네 딸이 8년 동안 고생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겠느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저으며 "뭐라고? 내 딸이 8년 간이나 고생하고 있는데 감사하라고?" 그때부터 마음에 번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차만 타면 네 딸을 위해 감사하라는 음성이 계속해서 귓전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때마다 사탄의 음성이라 생각하고 '사탄아 물러가라' 고 외쳤습니다. 내 딸이 고생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데 무슨 감사가 나온단 말인가. 그러던 중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네 딸이 8년 동안 고생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라"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마지막이라는 음성에 결단을 내리고 "내 딸이 8년 동안 고생함에 감사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딸이 있는 방으로 가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딸아이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 울음이 북받쳐 오르는 가운데 딸을 꼭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8년의 고생이 끝나고 딸이 본래 정신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가운데 감사했더니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도, 봉사할 때도, 구제할 때도, 길을 갈 때도,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일이 됐든 나쁜 일이 됐든, 기도가 응답되었든지 안되었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로 믿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로 믿는 사람입니다. 감사함으로 부르는 마음의 노래가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됩니다.  

믿음이 좋은 청각장애인이 있었습니다. 찬송을 하고 싶어도 장애 때문에 소리를 내어 찬송을 부를 수 가 없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그가 기쁜 얼굴로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했습니다. 수화로 의사를 밝혔습니다. 수화를 통역할 줄 아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지금 참 기쁩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도 장애 때문에 소리내어 찬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가면 장애가 풀리겠지요. 이사야 35장 6절에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대로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 나는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너무 기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입술과 목소리로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노래 부르시기 바랍니다. 

혹시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찬양하십시오. 찬양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병들어 고통가운데 있습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승리가 필요하십니까? 찬양을 앞세우십시오. 승패를 좌우하는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찬송이 없는 신앙은 마치 새 소리가 없는 숲과 같습니다. 

찬송이 없는 신앙은 마치 돌이 없는 시내와 같습니다. 찬송이 없는 신앙생활은 적막합니다. 부디 마음으로 찬송하며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성도들은 주께 찬양을 드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도취되는 노래를 불러서는 안됩니다.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는 가운데 언제나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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