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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알면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행 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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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알면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행 21:1~14)


여러분, 새해 들어서 하나님 말씀대로 잘 살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한다는 마음을 굳게 하고 사셔야 합니다. 마음 속에 혹시 아직도   그 점에 대해서 분명치 않은 분이 있다면 마음 중심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반드시 가야 한다!’ 

2010년 새해는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길이 사는 길입니다. 긴장해야 합니다. 낭떠러지에 있는 좁은 길을 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뢰밭을 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뢰밭을 가는데 인도자가 디딘 그 자리만 디디고 가야 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만 내가 살아야 한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삶이 위기이고 심각한 형편에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꼭 명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파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 동의하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겠다.’고 감히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왜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답답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모두의 길을 정확히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는 길을 잘 알지 못하도록 애배하게 만드신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또 너무 바쁘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하나 하나 다 간섭하시고 인도하시지 못하시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이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기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2010년 이후로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때때로 잘 분별하기 어렵고 내 앞 길이 자꾸 혼란스러운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마음에 오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보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주님이 분명하게 보여주셔도 우리가 그것을 혼란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어려움도 없고 환란도 없어서 편안하고 형통하고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한동안 편안하고 대우 잘 받는 목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으면, 편안하고 대우 잘 받는다고 보여지는 목회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가면 고생도 안하고 편안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교우들 중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있겠습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고생을 많이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다 보면 사업을 하든 장사를 하든 직장에 취직을 하든 누구와 결혼을 하든  ‘이제는 진짜 하나님의 뜻대로 할께요.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할께요.’ 기도하는데 그 마음의 동기가 ‘고생하고 싶지 않다. 어려운 길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나도 한번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면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 것은 맞지만, 솔직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참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는 눈이 열려 그 답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서 부지런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막았습니다. 그들은 믿음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4절)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성경은 사도 바울의 길을 막는 이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 거슬러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바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8절-9절에 보면 사도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빌립 집사의 집에 가서 묵었을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과 발을 묶은 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렇게 되어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을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다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보여주신 일입니다.

문제는 그 해석입니다.  
(12절)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란이 기다린다고 했으니 “가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입니다. 그저 막는 정도가 아니고 펑펑 울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일이거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돕는 사명자의 일일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막아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이나 자녀 중에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데 환란이 있다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면 거기에 가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기도하는 목사님이나 선교사님 앞길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성령님이 말씀하신다면 아마 빨리 연락해서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길로 가지 마세요!” 그러실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곧 어려움이 없는 길이라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라고 보여주셨다는 말은 가지 말라는 뜻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사도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3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 바울은 환란당할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란을 당하리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은 결박과 환란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도망가지 말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간다는 것입니다. ‘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너를 결박하고 만약에 네가 어려움을 당할 때 이상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미 내가 너에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너 절대로 피해서 도망하지 마라. 붙잡혀라. 사람들이 너를 결박하면 묶임을 당해라. 어려움을 당하면 그냥 받아들이라.’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나는 죽어도 이미 하나님 앞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내 생명을 바쳐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기로 결심을 이미 했으니 나는 갑니다. 몰라서 내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환란이 있는 것을 알고 가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사도 바울을 더 이상 막지 아니하였습니다.
(14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있어 이 길이 편한 길이냐 어려운 길이야로 기준을 삼으면 하나님의 뜻은 정말 오리무중입니다.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무조건 편안하고 잘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없는 편안한 길만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 중에 예언 기도가 나옵니다. 예언 은사를 받는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일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언 은사를 받아 행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성령님께서 무엇을 알게 하시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성경에도 그런 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에 있을 일을 알게 해주셨을 때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내가 행동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나 믿음의 선배들에게 그 점에 대해서 분별을 잘 받아서 하지 않으면 예언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 쉽게 말하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당시 많은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결박 당하고 환란 당할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이었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마시오! 하고 막으라고 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환란을 당할 사도 바울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실 일이 있어서 지금 그렇게 하신 것인데, 만약에 미리 알았다고 그것을 다 막아버리면 가지 말라고 붙잡고 울고불고 해서 만약에 사도 바울이 마음이 흔들려서 “그럴까요? 가지 말까요?” 이렇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일을 엄청나게 훼방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환란을 당하고 결박 당하는 일을 당하게 될터인데 너희들이 기도하라. 사도 바울이 이런 일 앞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길을 가도록 기도하라고 미리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 기도를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예언 기도를 받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어떠한 일을 미리 알게 하셔도 그것을 말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용히 기도하라는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혼란을 일으키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고 시험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 조심하세요. 하나님이 이것을 내게 보여주셨습니다.” “ 우리 교회에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거래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을 퍼뜨리고 소문내라고 알게 하신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미리 보여주었으니 네가 그 일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중보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미리 보여주신 경우는 대부분 기도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키려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 쉽게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그로 인해서 혼란이 일어나고 시험이 일어나고 무리가 생기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를 받은 자에게 오는 유혹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기가 받은 은사를 과시하려는 유혹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자기에게 묶어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 자기에게 기도 받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벌써 미혹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당신 일이 보여!”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이 자기만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서 떨어지면 너무 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 마음을 묶으려고 점점점 이상하게 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점치는 것 같은 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언 기도를 받으려고 하는 이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상황이 답답하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이들에게 자기 문제를 놓고 기도 받으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어려움 없는 편안한 길을 찾으려는 태도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미혹을 당합니다.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점치는 행위는 마귀의 전공입니다. 한번 예언 기도가 적중하면 그 다음부터는 매사에 예언 기도만 받으려고 다니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도 소용없습니다. 예언의 은사 받은 사람이 중요하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대신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더 의존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목사이기에 교우들을 상담할 일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셔서 그 교우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을 제게 주시지 않으심을 느낍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우에게 직접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사를 통하여 알려주시기 보다는 직접 교제하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목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권해 드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더 바라보세요.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우에게 하실 말씀을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다면 (비록 목사라 할지라도) 기분이 나쁠 일이 많습니다. 만일 당신이 목사로부터“이런 죄가 있군요! 하나님이 당신의 이런 죄 때문에 대단히 분노하십니다. 회개하셔야 되겠어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목사와의 관계가 영 껄끄럽게 될 것입니다.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일은 자존심 상해서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옳은 이야기라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에게 충고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꼭 고쳐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존심 상할 일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시원한 응답을 주시지 않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들으면 누구도 기뻐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으면 자존심 상할 일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주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주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환란을 당하리라 하는 예언을 듣고도 담대하였습니다.
이유는 이미 성령님께서 그러한 일을 사도 바울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리고 다른 교우들을 통해서 분별을 받은 것입니다. ‘아, 그렇겠구나. 내게도 말씀하시더니 저 분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예루살렘에 가면 어려운 일을 당하겠구나.’ 그것을 알면서도 부지런히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환란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미 주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가면 안됩니다! 못갑니다! 가지 마세요!”라고 할 때, 사도 바울은 사람의 말과 해석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로 준비하고 갔습니다. ‘하나님, 이제 어려운 일을 제가 당하겠군요. 주님 알겠습니다. 그 길을 가면 제가 가지요. 피하지 않겠습니다.’그리고 실제 환란을 당했을 때, 피하지 않았습니다. 

베뢰아나 에베소에서는 사도 바울이 결박당할 위기가 왔을 때 피하였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사도 바울이 붙잡힐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것만 생각하고 예루살렘에도 환란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을 알고 ‘피해야지.’ 하고 예루살렘에서 피해서 나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리 사도 바울에게 ‘너 피하지 마. 사람이 붙잡으면 붙들려. 어려움을 당하면 그게 내 뜻이니까 너 잠잠히 가거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는 결박 당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피하지 않고 붙잡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계획은 사도 바울을 로마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복음화의 기가 막힌 전략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그 점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로마도 가야 될 것을.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로마로 간 것입니까? 
요셉도 종으로 팔려가 애굽의 총리가 됐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기가 막힌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장사꾼이나 여행자로 들어가서는 로마 복음화는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와 로마 권력의 핵심 세력자들과 접촉할 수 있게 하는 기가 막힌 방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범으로 황제의 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 시위대, 로마 최정예 부대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 당시 로마의 최고 실력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란을 당하리라고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어떤 길을 가야할지 판단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편한 길이냐 어려운 길이냐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편한 길이냐 어려운 길이냐. 이런 관심은 십자가에 못박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각만 하고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인데 어려운 길 같아요. 그러면 그만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편한 길 같아요. 그러면 또 마음이 흔들립니다.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잘못 된 것까요? 여러분 마음에 ‘나는 편해야지, 쉬운 길만 가. 어려움은 없어야 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분별이 안됩니다.  

또 하나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지만, 성령님의 친히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기도 많이해주시는 분들, 믿음 좋은 분들 말도 잘 들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내게 친히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소명도 자기가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목사하라고 해서 목사가 되면 안됩니다. 결혼하라고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의 의견과 기도도 다 중요하지만 성령님께서 내 안에 직접 확증을 주시는 것은 절대 놓지면 안됩니다.모든 성도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친히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령님은 우리 모두에게 계십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변에 여러분의 믿음을 도와주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있지만, 성령님을 대신하는 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주위에 있는 분들이 그것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분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아직도 성령님께서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으신 분, “나는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유정옥 사모님, 박보영 목사님 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살기도 하고 사역도 할지 모르겠지만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은 아마 그것은 어려울 거예요.” 이런 분들은 오늘 믿음을 먼저 고치셔야 합니다. 
정말 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유정옥 사모님, 박보영 목사님처럼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주눅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지만 나의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성령 하나님은 내 안에도 오셨습니다! 여러분, 그 점에 대해서 분명한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작은 지시라도 순종한다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말씀 묵상을 하면서,‘하나님, 성도들 중에 성령님으로부터 직접 인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없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영적으로 주눅이 들어있습니다. 저분들은 저렇게 훌륭한 분들이니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나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을까?’이런 분들이 많은데, 우리 성도들에게 그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라고만 하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좋은 예가 없겠습니까?’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 교회 게시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경훈권사님의 글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제가 몇 구절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왜 유정옥 사모님, 박보영 목사님처럼 살 수 없는가? 그 분들은 목사님이니까, 사모님이니까 가능 한 것이야’하고 남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종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섬김과 헌신의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나는 왜 그렇게 못 하는가?’하는 안스러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하신 것은 강사님들과 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제가 주님 주시는 마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저는 내가 가진 것을 움켜잡고 있으면서 “주님, 저에게 더 주십시오. 그러면 제게 주신 것에 얼마를 헌금하겠습니다.”“주님께서 더 주시면 헌금하고 이웃을 도와주겠습니다. 주님, 더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주님께 요구하며 달라고만 보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눈물을 적시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성도님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전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공부하는 딸에게 애쓴다 천천히 쉬면서 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따뜻한 차 한 잔과 떡 한 조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고 미안합니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바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님께서 그 마음을 주셔도 나는 계산만 했고 그러고 나면 주님께서 주신 마음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신년에는 결단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바로 하자! 지금 하자! 사랑하는 마음도 지금 전하고, 고맙다는 것도 지금 표현하고 손 내미는 것도 내가 먼저, 지금하자! 이웃을 향해 입을 것 먹을 것 나누는 것도 지금 바로 하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이 인도하는 것에 대해서 순종하겠다고 하는 마음만 분명히 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깨달아지는 것만이라도 순종하기 시작하면 위대한 믿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바로 정말 놀라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좋고 싫다는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환란이 기다린다는 예루살렘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길, 편한 길을 찾아 다니는 마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집사님은 목회자로 부르시는 것을 느끼지만 확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확인을 기대하는가? 신대원에 갈 길이 열리지 않는가? 아니면 고생할 걱정 때문인가? 정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데도 해결안되는 문제가 있는가?
대부분 하나님의 확인을 구하는 이유는 고생하지 않을 길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했으니 실패하면 하나님이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고생도 좋습니다. 죽음도 좋습니다. 하면 이미 확실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지실 것에 대하여 처음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막고 나설 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며 책망하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힘든 일 어려운 일은 주님이 뜻이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7절에서 이렇게 마무리 하셨습니다.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이 뜻을 알고 나면 거룩한 욕심이 생깁니다. “주여 더 어려운 일 주소서!” 주님 앞에 설 때 그것이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유정옥 사모님이 두 아이를 입양한 글은 정말 깊은 감동입니다. 
성남 수정구에 살던 한 결핵환자가 죽었는데, 연고자가 나서지 않아서 장례를 다 치러준 후에 남겨진 두 아이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때 사모님이 빈소를 지키며 그 아이들의 아버지를 생각했답니다. ‘그 아버지는 왜 우리 교회까지 먼 곳으로 와서 예배를 드렸을까? 무엇을 하나님께 기도했을까? 아마도 저 아이들을 맡길 가정을 찾으셨으리라. 그 아이들을 잘 길러 줄 새로운 부모를 ...... 아! 그 후보 중에 내가 뽑힌 게 아닐까?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를 그렇게 착하게 여기셨다니 ...... 우리 부부를 그렇게 믿으셨다니 .....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두 아이를 입양할 때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더 잘 알았지요! 단 하나님이 인도하심에는 어려운 길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복된 길임이 보인 것입니다.

우리는 편한 길만 찾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잘 되는 길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에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다!’ 이것 하나만 내가 분명히 깨닫고 보아도 하나님이 복주시는 길이 확 보입니다. 주님이 역사하는 길이 열립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2010년 살아가는 길에 정확하게 주님의 인도를 받으셔야 됩니다. 이제는 정말 정신 차려야 됩니다. 방황은 여기서 끝나야 됩니다. 인생 혼란도 여기서 끝나야 됩니다. 하나님은 더 오래 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말씀하실 것을 믿고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즉시 순종하겠습니다.” 결단하고 나가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분명히 인도하시고 말씀하십니다. 

2010년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축원합니다.
(유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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