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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 (학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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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과 영광 (학 1:1~11)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영광 돌려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부모님에게 효도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 아버지께와 육신의 부모님에 대하여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기쁨이 되어드리고 영광 돌려드리는 요령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BC 587년,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원인은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이었다.
BC 538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파사제국의 고레스왕에 의해 유다 민족의 귀환이 선포되었다. 당시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의 인도로 약 5만여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첫 번째 시행한 사업은 성전 건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왕의 맘을 움직이셔서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돕게 하였다.

스1: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그들이 돌아와서 의욕적으로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이듬해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성전 터를 닦고 기초석을 놓을 때 성대한 성전 기공식이 치러졌다. 이전에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노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귀환한 유다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변의 대적들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사마리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대적들이 바벨론의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공사 진행을 방해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공사가 중단된지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분노하고 낙심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사람들은 성전 건축에 대한 관심이 식어졌다. 그들에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짓기 싫어서가 아니라 대적들의 방해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고 꾸미는 일에 열중하였다. 

4절에 보면, ‘판벽한 집’에 거하였고, 9절에서 보면,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이라 기록하고 있다. 판벽한 집이란? 장식이 화려한 집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전 건축에는 무관심했고 자신의 집을 짓고 꾸리는 일에 열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 가운데 이상한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소출이 많이 나질 않았다. 배불리 먹어도 이상스레 몸이 허약해졌다. 그리고 벌어놓은 돈이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자꾸 새어나갔다. 
학 1: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성전 건축이 중단된지 15년 되는 해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를 보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학 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날마다 무너진 성전의 폐허를 보면서도 그들은 마음의 감동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학 1:2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성전 폐허를 바라보면서 ‘아직 때가 아니야!’하면서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대신 자기 집은 페인트 칠하고, 리모델링하면서 살기 좋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성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하길 기다리고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15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앞장서서 그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재앙을 보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일어나는 불길한 징조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사업과 자기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지 애쓰고 수고해도 안되고 새나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를 세우셔서 백성들의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보내셨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셨다. 

학 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지도자나 백성들이나 한결같이 마음이 둔해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파사제국의 고레스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유다민족으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신 이유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에스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이스라엘 백성이 의욕을 가지고 바벨론을 떠나온 목적은 딱 하나, 하나님의 집, 성전 건축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귀환의 목적이었고, 사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적들의 반대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때때로 환경의 제약을 받게 된다.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들이 발생하게 된다. 직장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 때문에, 몸이 아파서.., 그런데 그 이유는 다 타당하다.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간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로 인해 구원 받은 신자로서 마땅히 먼저 구해야 할 것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한다.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의 뜻이나 명령을 소홀하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학개는 두 차례에 걸쳐서 백성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학 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학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일이 꼬이고 잘 안될 때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행동이 과연 옳은가? 나의 판단이 과연 옳은가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일 신경 안쓰고 자신 만을 위해 사는데 잘 되어야지 왜 안되는가? 귀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판벽한 집에 거하며 자기 가족들만 돌보고 있는데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잘 안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학 1: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너희로 말미아아...’ 그렇다면 그들 가정에 임한 재앙을 끊고 회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셨다.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어떤 피아니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연습을 하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얼마가지 않아 그 사람은 청중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될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무능력과 나태함이다. 그 원인은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면서 자신 만을 위해 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스라엘의 생사화복은 그들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의 통로를 닫고 계시는데 사람의 힘으로 열려고 해서 되는가? 힘이 들 뿐 열려지지 않는다. 

시 146:3-5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금부터 2500년 전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이 오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지금 교회당 건축을 계획하거나 하는 중도 아닌데.. 이미 건축이 끝난지 3년이 지나 4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교회는 안정되어 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 편안히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봉투를 두 장씩이나 주보 사이이 넣어 드렸다. 그것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이 되는 방편이다. 

1998년, 12년 전에 우리 교회는 주공 1단지 신한은행이 있는 교육센타 지하 1층 200여평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출석 교인은 장년 100여명 정도였다. 전세 3억원에 사용하고 있었는데 건물주가 6억원에 매입하지 않으면 만기가 되는대로 비워달라고 했다. 

교회는 비상대책위를 구성한 후에 결론을 내리길 지하 건물을 사기보다는 차라리 작게나마 땅을 사고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토지를 예비해 주셨다. 주공 1단지 후문 토지공사 땅 520평을 저렴하게 교회 부지로 매입하였다. 건축설계가 끝나고 허가만 나면 당장 건축을 시작하려고 터를 닦아 놓는 중에 부천시의 소사동 택지조성사업이 고시되면서 중단되었다. 교회는 황급히 예배처소를 얻기 위해 어려움을 겪었다.

7년을 기다린 후 주택공사로부터 4단지 모퉁이 약 400평 종교부지를 배정받고 설계에 들어갔다. 그러나 입주자들의 민원으로 지금 이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기도하면서 건축위원들과 숙의 끝에 앞으로 5년 10년을 바라본다면 적어도 800평 이상의 면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건축비가 많이 소요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은행에서 빌려다 쓰기로 했다. 20억원을 빌리는데 이자가 매월 1004만원이었다. 그래서 대출금 이자 감당을 위해 1004운동을 전개했다.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2년 동안 무리 없이 감당해 왔다. 

2006년도 5월에 공사가 시작되어 2007년 4월에 감격적인 입당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이제 입당후 3년이 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1004운동에 참여도가 떨어져 지금은 약 50% 정도 참여하고 있고 나머지는 일반 재정에서 충당하여 이자를 감당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교회 재정 상황은 이자를 감당하고 교회를 운영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교회 재산도 늘어서 평가액이 5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제 마음에 늘 근심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자만 감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이제는 이자를 감당할 뿐 아니라 원금도 상환해서 교회당 봉헌을 준비해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헌당이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작년 한 해 당회에서 그리고 재정부와 의논을 해왔다. 그리고 결론 내리길 교회당 봉헌헌금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신년 예산에 매월 이자 지불금 외에 원금 상환을 위해 매월 500만원씩 적립하기로 했다. 교회가 계속 성장하면서 적어도 10년 안에는 헌당식을 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교우들 중에 이와 같은 형편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의 상황을 숨기고 싶지 않다. 우리 교회가 건축을 위해 은행 돈을 빌려다 쓴 것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부채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온 교우들이 이 사실을 알고 헌당을 위해 부채의 한 부분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알고 참여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담임목사로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담부해온 성도들과 쪼들리는 가정들을 생각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참여할 수 있기 바란다. 개척 초기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들의 도움을 받을 때도 선교사님들에게 선교비를 1만원씩을 보냈다. 도움 받는 주제에 돕는다는 것이 모순이지만 그래도 아껴쓰며 섬겼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가 건축으로 인한 부채를 안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자기 집과 자기 몸을 가꾸는 일에 쓴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좀 더 허리 띠 졸라매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믿음으로 동참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우실 줄로 믿는다. 

한 구좌에 만원이다.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작정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번 1월부터 참여해 주기 바란다. 가능하면 어린이들도 참여토록 하기 바란다. 한 가족이 외식 한 번 해도 10만원 정도 쓰게 된다. 교회를 사랑하는 맘으로 가족의 이름을 다 적고 헌당할 때까지 참여해 주기 바란다. 예)개척 후 3년 후 자립.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또 하나의 봉투, 선교헌금은 한 구좌에 천원이다. 커피 한 잔이면 보통 3천원이다.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참여 할 수 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이니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예)토론토의 피플스 처치. 오스왈드 스미스. 1달러 운동.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일조 헌금, 교회당 봉헌헌금, 선교헌금은 오늘 현재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축복의 조건이다. 헌금으로 인해 시험들지 말고 그것을 뛰어 넘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실 것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여러분의 재물을 하나님 나라의 창고에 쌓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필요와 쓸 것을 풍성히 채우실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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