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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는 강물처럼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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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강물처럼 (겔 47:1~12)


한국과 관련해서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릴 만큼 기적적인 대규모의 공사현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리비
아의 대수로공사입니다.  이것을 GMR(great man-made river project)라고 부릅니다.  대수로공사는 지름 4미터와 총길이 1872km의 송수관을 묻어 하루 400만톤의 물을 공급하여 사막을 옥토로 바꾸기 위한 
리비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습니다.  리비아는 국토의 90%가 사막지역입니다.  일 년에 비가 한두 번 
올까말까 합니다.  

이런 지역에 물을 댄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할 일입니다.  그런 꿈을 이룬 것입니다.  그들은 리비아의 북서부 사막과 북동쪽 사막아래에 풍부한 양의 지하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리비아인의 생활수로 이용되려면 도시까지 운반되어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 건설회사가 해낸 것입니다.  광활한 리비아의 사막에 송수관을 묻는 고도의 기술력과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시켜 성공한 것입니다.  1983년 착공하여 연인원 1100만명이 동원되고, 550만대의 건설 중장비가 투입된 대역사 끝에 1991년 8월 28일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1차 통수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리비아는 사막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도심 곳곳에 물이 공급됩니다.

은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은혜는 물줄기를 타고 사막과 같은 곳에 임합니다.  은혜는 강물처럼 임
합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알려줍니다.  은혜가 강물처럼 임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3가지 중
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촉촉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에스겔의 말씀을 함께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며, 선지자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때는 유다왕국의 가장 비참했던 시기입니다.  그는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있던 포로의 땅에서 비탄에 빠
진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바벨론의 왕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첫 번
째는 기원전 605년입니다.  이때 유다 왕 여호야김을 항복시키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비롯한 유다
의 주요 인물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두 번째는 597년 유다왕 여호야긴의 반역에 대한 징계로서 예
루살렘을 침공합니다.  

이때 왕을 포함한 1만 명의 포로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586년 오랫동안 포위공격을 감행하여 예루살렘을 완전히 함락시키고 성전과 유다전역을 파괴했습니다.  에스겔은 두 번째 공격 때 포로로 끌려가 아직 완전히 함락되지 않은 때에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뜻을 전합니다.  
아직 희망이 있고,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고, 결국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에스겔은 비탄해 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회복을 알려줍니다.  지금 고통 속에 보내지만 때가 되면 다시 이스라엘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회복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회복을 비유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파괴되고, 무너진 성전이 다시 회복되
는 과정을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
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
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전 문지방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로 비유합니
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무엇보다도 성전의 회복, 성전이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삶의 터전이고, 신앙의 중심이고, 은혜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괴되고 무너진 성전에서부터 회복은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전에서 회복되는 것일까요?  그것을 성전에서 흐르는 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샘물이 퍼져간다는 것입니다.  그 물이 이스라엘 땅에, 그 물이 온 세계와 민족위에, 그 물이 피폐한 사람들의 심령에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는 강물처럼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물이 삭막하고, 건조하고, 메마르고, 파괴되고, 무너지고, 부서진 모든 곳에 스며
들어 촉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삭막하고, 건조하고 메마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각박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지난주에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로 매우 어려웠던 한주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어서 그
랬는지 기상청에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이번에도 또 오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정확히 측정합니까?  눈이 내린다는 것만 알아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뉴스를 보니까 집 앞에 싸인 눈을 치우는 문제로 이웃끼리 싸우다가 살
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각박한 세상입니다.  아울러 교통대란이 벌어지고, 도시가 마비가 되었습
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많이 느끼는데, 사람이 차를 무서워하지 않고, 차도 사람을 잘 배려하지 않습니
다.  차를 몰고 나가면 사람들이 웬만해서 비키지 않습니다.  칠 테면 치라는 배짱입니다.  그러다가 조
그만 사고라도 생기면 난리가 납니다.  차끼리 접촉사고를 내면 우리는 목소리 큰사람이 이깁니다.  그
래서 무조건 소리부터 지르고 봅니다.  

정말 삭막한 세상입니다.  차가 막혀서 짜증나고, 운전 못해서 짜증내고, 길이 막혀 짜증냅니다.  혹여 초보인 여자가 운전하면 ‘집에서 밥이나 하지 왜 차를 끌고 왔느냐’고 핀잔을 주고 인격을 모독합니다.  말하지만 말을 하는 게 아니고, 웃지만 웃는 것도 아니고, 살지만 사는 게 아닌 정말 각박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살이 필요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은혜입니다.  이런 메마른 세상에 은혜로 촉촉하게 적
셔야 합니다.  우리부터 은혜를 받아야 하고, 우리부터 잘해야 합니다.  은혜는 촉촉한 것입니다.  촉촉
한 은혜, 축축한 은혜가 우리 모두의 삶에 임하여 메마른 세상을 흠뻑 적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풍족하다는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는 1cm 정도의 적은 물만 부어도 촉촉해져 훨씬 부드럽게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은혜
가 강물처럼 부어질 때 그 정도의 촉촉함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넘치도록 풍성함을 강조합니
다.  그것을 3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서 설명합니다.  선지자는 성전에서 흐르는 물을 손에 줄을 잡고 
측량합니다.  처음에는 그 물이 발목에 오릅니다.  그 다음에는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척량하니까 이
젠 물에 푹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무엇을 의미하는 말이겠습니까?  은혜가 임하는데, 그 은혜는 촉촉함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
니라 아예 푹 잠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는 풍성하고, 풍족하고, 넉넉함을 알려주는 것입니
다.  은혜는 풍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늘 넉넉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것에는 결코 부
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는 하
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이런 넉넉함과 풍성함을 주기 위해 오
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
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주님은 양과 같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주님안에는 늘 넉넉함과 여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지 않습니다.  늘 남게 일하십니다.  주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기적을 행하실 때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았습니다.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가 넘었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주님이 하시는 일에 넉넉함을 알려줍니다.  광야생활에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공급하신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루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실때 찔끔찔끔 나온 것이 아니라 콸콸 쏟아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살던 바울도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모든 것은 늘 풍성한 것입니다.  특히 은혜가 풍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The grace of our Lord was poured out on me abundantly) (딤전1:14)  주의 은혜는 넘치도록 풍성한 것입니다.  부족하지 않고, 모자라지 않고, 풍족하고 넉넉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은혜가 풍족하기에, 그래서 감사도 풍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족한데 우리의 감사는 부족할 
때가 있고, 인색할 때가 있습니다.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 앞에 우리의 믿음은 넘치는 감사가 되어야 합
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고, 성숙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마게도니야 교회들의 
풍성한 연보에 대해 칭찬한 말씀이 나옵니다.  특히 그들은 환난과 많은 시련가운데에서, 특히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과 풍성한 연보로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권면하
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8:7)

여러분,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은혜가 풍성하고, 축복도 풍성하고 사랑도 넉넉합니
다.  그래서 은혜 앞에 믿음의 삶도 풍성해야 합니다.  감사가 풍성하고, 사랑도 풍성하고, 격려와 칭찬
도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섬김과 봉사가 풍성하고, 결단과 헌신이 풍성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앞에 넘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성전에서 흐르는 샘물로 시작하여 그것이 강물로 이어지고 이제 그 물로 모든 것이 
소생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9)... 강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12)”  여기에서 계속 반복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살고, 되살아나겠고, 또 살 것이며’ 라는 말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넘치고 흘러서 바닷물이 살아나고, 강이 흐르는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고기가 살고, 강가에 각종 과실나무가 자랍니다.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은혜는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 물에 비유하여 물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보통 물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합니다.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고, 바다는 생명을 낳고, 생명은 땅 위로 
올라와서 천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원한 아침 공기가 안개가 되어 아침 이슬을 만들고 생명을 깨웁니
다.  물의 운동을 통해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눈이 되고, 때론 안개로, 서리로 변하기도 합니다.  물
이 결국 동물에는 피가 되고 나무에는 수액이 되어서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물의 움직임에서 아름다
운 노을이 되고 눈과 서리 거대한 빙하 시원한 폭포와 넘실대는 바다로 변합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이고, 지구의 70%도 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음식물 없이는 90일을 살지만 산소 없이는 단 몇 분밖에 살지 못하고, 물은 2% 부족하면 심한 갈증과 통증을 느끼고, 5% 부족하면 혼수상태, 12% 부족 시에는 생명을 잃습니다.  세계 보건기구는 인간에게 발생하는 질병의 80%는 물과 관련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만큼 물은 인체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물만 잘 마시면 보약이 따로 없고, 가장 오래된 약이 물이라는 말도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물
은 생명입니다.  

에스겔은 37장에 보면 하나님은 은혜로 살리는 환상을 에스겔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를 뼈가 
가득한 죽음의 골짜기로 이끌었습니다.  골짜기 지면에 널려 있는 무수한 뼈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여러분,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살리는 것입니다.  은혜가 우리 속에 임하면 영혼이 삽니다.  은혜
가 몸에 임하면 약한 육신이 힘을 얻고 일어섭니다.  은혜가 가정에 임하면 깨진 가정, 상처 나고, 구멍
난 가정이 다시 회복됩니다.  은혜가 민족위에 임하면 모든 불의와 온갖 더러운 악이 죽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은혜가 교회위에 임하면 교회는 평온하고 생기가 돌고 활기가 넘칩니다.  은혜가 삶에 
임하면 나는 달라집니다.  

약한 나를 강하게 하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부족한 나를 온전하게 합니다.  은혜가 인생길에 임하면 난관도 뚫고, 장벽도 부수고, 문제도 해결됩니다.  은혜가 삶에 임하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고, 기쁨과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모든 것을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주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이제 은혜로 살
아나야 합니다.  영혼도, 육신도, 몸도 마음도 살아나고, 가정도, 민족도, 교회도, 인생도, 신앙도 살아나
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임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은혜는 강물처럼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래서 삭막한 곳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은혜는 풍성하
게 임하고, 은혜는 모든 것을 살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의 삶에 은혜가 강물처럼 임하여, 이번 한주간도 
각박한 세상에서 날마다 촉촉하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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