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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홀연히 비추어 주옵소서 (행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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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비추어 주옵소서 (행 9:1~9)


세상의 일들은 대개 예측이 가능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배가 고프다고 말하면 엄마는 <1o분만 기다려, 새 밥 해줄게!>라고 말합니다. 그 때 엄마는 10분이면 새 밥을 할 수 있다는 예측을 합니다.

이런 예측에 따라 우리는 계획을 세웁니다. 수학 책 한 권은 한 달 정도면 뗄 수 있습니다. 서너 달이면 어느 정도 운전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예측과 계획에 따라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 때쯤이면 나도 할 수 있어!>

우리 국민이 잊을 수 없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게 한 <경제개발5개년 계획>입니다. 본래 이승만대통령도 경제개발3개년 계획을 추진한 적이 있고, 장면 총리 시절에도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진이 미미했습니다. 그러던 중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강력하게 추진되었습니다. 1962년부터 1991년까지 30년에 걸쳐서 6차례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이 추진될 당시, 1인당 소득이 80불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나, 지금은 수출규모 세계 9위, 총 경제규모로 13위의 나라가 되었고, 아랍에미레이트공화국에 400억 달러의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고, 두바이에는 820여 미터의 162층짜리 세계 최고층 건물을 우리나라 기술로 짓는 데까지 발전했습니다. 유엔의 원조를 받아 살던 가난한 나라 중에서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로 탈바꿈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오직 하나, 대한민국뿐입니다. 이런 나라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멋진 계획은우리 삶에 점진적 발전을 가져옵니다. 조금씩 나아지게 합니다. 2010년에 좋은 계획과 함께 출발하시길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읽을 계획, 전도할 계획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또 가정을 아름답게 가꿀 계획, 가족들을 행복하게 만들 계획, 직장과 학교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계획을 가지고 출발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이런 점진적인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일일수록 갑자기 찾아옵니다. 만남이 그러합니다. 결혼 대상을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헤어짐도 그러합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나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 했던 배우자를 갑자기 잃을 때가 있습니다. 기회도 갑자기 찾아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갑작스런 인생의 전환을 맞이한 인물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바울 사도입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갑자기 전환되었습니다. 그 경위는 이렇습니다. 그는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에게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사울을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주목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예수는 절대로 메시아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생각할 때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근본 질서를 흔드는 적이었습니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유대의 율법으로는 용인할 수 없는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를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일곱 집사님 중의 한 분인 스데반 집사님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을 때 현장에 있었고, 분노한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님을 돌로 쳐서 죽일 때, 증인 노릇을 했습니다.

이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인생이 전환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사람들과 함께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사도행전 22장 6절에 의하면 그 때는 오정쯤, 즉 낮 12시쯤이었습니다. 그 때는 하루 중에서 태양 빛이 가장 밝고 뜨거울 때입니다. 그런데 사울을 비춘 빛은 정오의 태양 빛 보다 더 밝았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 때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그 때부터 그는 눈은 떴지만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인도해서 다메섹에 도착했습니다. 그 후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 그에게 <아나니아>라는 인물이 찾아왔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사울을 위해 안수기도를 했을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사울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왔던 그가 이제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증거하는 전도자로 변했습니다. 그의 이런 변화를 성경은 9장 19절 중간 이하에서부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왔으나, 그 전에 먼저 주님께서 그를 포로로 잡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울에게 일어난 전환이었습니다. 이것이 점진적입니까? 아닙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흠모했다거나, 남몰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아직 씻지도 않은 생쌀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단 한번에 잘 익은 밥처럼 만드셨습니다. 쌀을 씻고, 솥에 앉히고, 끓이고, 뜸을 들이는 모든 과정을 생략하셨습니다. 생쌀이 갑자기 밥이 된 것과 같습니다.

본문은 이렇듯 갑자기 임한 하나님의 손길을 <홀연히>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고 했습니다. <홀연히>란 단어는 <갑자기>란 뜻입니다. 주님의 손길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갑작스러운 주님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중에 비슷한 뜻을 가졌지만, 전혀 분위기가 다른 두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과 <부흥>이란 단어입니다. 성장이란 그 속에 서서히 이루어지는 점진성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게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키와 몸무게가 조금씩, 서서히 성장합니다. 그러나 부흥이란 단어에서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면이 강조됩니다. 교회가 부흥된다, 심령이 부흥된다는 것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이 두 가지 면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천천히 이루십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갑작스럽고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소에 천천히 변화가 일어나길 기다려왔습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도 콩나물은 조금씩 자라는 것처럼 우리 믿음도 그렇게 자라길 기대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진적 성장은 때론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저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홀연히 임하길 기원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급속하게 성령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이 급속하게 부흥하길 원합니다. 예측 못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가 조금씩 부흥하는 단계를 벗어나서 급속하게 부흥하길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홀연히 주님의 빛이 비추어지길 기대합니다. 

이런 기대와 소원을 가지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성령님께서는 홀연히 역사하셨습니다. 급속하고도 갑자기 이루시는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종교개혁이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천주교가 성경을 왜곡하고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채로 무려 천 년의 세월이 내려오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루터와 같은 택한 종들에게 역사하셔서 <오직 은총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선포하게 하셨고,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로마 천주교회의 한 편이 무너지면서, 성경에 입각한 복음 신앙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웨슬레>의 영국의 부흥도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대각성운동도 <조지 휫필드>와 <조나단 에드워드> 등을 통한 갑작스런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907년 대부흥운동도 그러하였습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계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디>란 한 선교사의 마음을 성령께서 찌르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그는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조선의 열악한 환경, 조선 사람들의 비협조,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 등 많은 아픔들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이 상처들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셨을 때,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형제들을 미워하고 깔보았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회개는 계획된 것도, 예측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디 선교사의 회개는 다른 이들의 마음에 진동이 일어나게 했고, 회개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중에는 평양으로 번져갔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당에서 남자들만의 <도사경회>가 열렸는데, 1907년 1월 14일과 15일 밤이 그 절정이었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은 친구가 죽으면서 맡긴 돈을 떼먹은 죄를 고백했고, 다른 교우들도 자신들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그 날 시골에서 모여 든 900여명의 남자들을 비롯한 평양 시대의 남자 교우 등 모두 1,500여명이 모였는데, 선교사들은 그 날 밤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흐느낌 소리와 함께 평양에 오셨다>, <마치 지붕이 날아가 버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눈사태처럼 우리 위에 무겁게 내렸다>, <우리는 각각 갈라져서 강단에서 내려와 가장 애통해 하고 번민하는 사람들을 붙잡아주고, 마룻바닥에 엎딘 사람을 일으켜 앉혀주면서, '걱정 마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후 교회는 급속하게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자신들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홍보하려고 애를 쓰는 법입니다. 나쁜 점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버릴까봐 가능한 감추려고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당시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교인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죄들을 고백했고, 그 때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죄를 짓은 사람들임을 알게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결과 1905년과 비교할 때 1907년의 교회가 어떻게 부흥했는지 그 통계를 보십시오. 교회 숫자는 321개에서 642개로 두 배가 되었고, 전도소의 숫자는 470개에서 1,045개로, 학습교인수는 30,136명에서 99,300명으로 세 배나 늘었습니다. 헌금은 1,352,867원에서 5,319,785원으로 무려 네 배나 증가했습니다. 기독교 학교도 208개에서 344개로, 학생도 3,456명에서 7,504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정말 폭발적 부흥이었습니다.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런 부흥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길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개입하시면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의 놀라운 일들은 모두 갑자기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몇 년을 두고 조금씩 깨어나신 게 아닙니다. 순간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역사도 점진적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몇 사람은 그 날 먹고, 나머지 사람 일부는 다음 날 먹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그 다음 날이 되어야 떡을 먹을 수 있었던 게 아닙니다. 모두가 당장에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사람들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이것은 몇 달을 두고 점진적으로, 서서히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그 순간, 갑자기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오래 전 영국에 <스로스츠>란 죄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영국과 호주에서 40년 간이나 교도소 생활을 했고, 그 동안에 가죽 채찍으로 50번씩 여덟 차례나 맞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이나 교도소에서도 그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석방된 후 구세군 숙박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그 날 후 그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구세군 출옥자 보호소에서 18년 간을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400번의 가죽 채찍질이나 40년 간의 교도소 생활로도 변화되지 않은 내가 그리스도로 인해 불과 1, 2분만에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갑작스런 역사가 그립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고, 기다리기 힘들고.....당장 답답하기 때문입니다. 집회는 이런 부흥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뚫고 들어오시는 기회입니다. 이번에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으시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변화되듯 새롭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집회를 통해 은혜를 주시고자 예고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비춘 빛은 예고가 없이 찾아왔지만, 이번엔 미리 예고되었습니다. 이제 그 은혜의 빛 앞에 우리 인생을, 우리 영혼을 벌거벗은 채로 내맡겨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은혜의 빛 앞에 노출시키십시오. 성령님께서 이번 집회를 통해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시길 기대합니다.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주님,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기왕이면 큰 덩어리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일곱 번 집회 시간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십시오. 쓸데없는 일에 쏟는 시간에 비하면 이 일곱 시간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직장에 사정을 구하고, 가정 살림도 서둘러 끝내시고, 사랑하는 이들을 모시고 함께 오시길 바랍니다. 

금번 집회를 통해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우리에게도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날마다 미지근한 모습으로, 변화됨이 없이, 구태에 사로잡혀 살던 우리가 홀연히 비추시는 은혜의 빛 아래서 변화되길 원합니다.

여러분, 사모하십시오. 가랑비에 옷이 젖기도 하지만, 소나기도 필요합니다. 부흥은 인간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런 개입으로 이루어집니다. <주여, 내게도 홀연히 비추시옵소서.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성령의 은사들을 내려 주옵소서. 그 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자존감을 찾게 하옵소서. 망가진 가정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부부간의 사랑이 하룻만에 회복되어 신혼 때처럼 되게 하옵소서. 자녀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어 아기를 처음 낳아 품에 안았을 때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사업에 대한 열망이 회복되어 사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와 같은 열정을 품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면서 오시길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집회 후에 놀랍게 부흥되길 원합니다. 예배 참석 인원이 늘어 빈자리를 채우고, 예배를 늘려 드리게 되길 원합니다. 올해 천 명 이상 등록하게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홀연히 비추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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