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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적 삶의 동력(動力) (고전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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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적 삶의 동력(動力)  (고전 15:55~58) 


지구촌에는 60억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하는가 하면 자연의 악조건이나 질병과 죽음과의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보통 운동 경기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 승리하지만 인생의 승리는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지식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할 것 같지만 그런 것들이 절대적인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본문 말씀에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게 하는 비결이 승리적 삶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1. 온전한 믿음입니다. 

요한1서 5:4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16에는 믿음을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죽음의 세력이 공격해 와도 믿음으로 이를 방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세상에는 거짓된 믿음도 많이 있지만(마 7:15), 참 믿음은 온전한 신앙고백과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통하여 증거됩니다. 곧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1:12에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重生) 자입니다(요 3:6).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께서 감동해 주심에 따라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하고 고백합니다(롬 8:15). 아들에게는 아버지로부터 기업의 상속권이 있습니다.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요일 5:5).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것을 신앙으로 고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께서 수용하고 믿게 해 주셔야만 가능합니다(고전 12:3). 벳새다 사람 나다나엘은 그의 친구 빌립으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막상 예수님을  보는 순간 성령에 감동되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요 1:49).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하고 고백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6:16). 

3) 거룩한 공회(公會)에 대한 신앙입니다. 

사도적 신앙고백문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고백과 함께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고 한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공회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집단입니다. 구약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중심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기에 해당되지만 신약의 경우 언어나 종족에 구별 없이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지상에 자기 교회의 설립을 선언하시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교회는 성령의 활동공간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체되는 성도들은 집요한 마귀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이겨냅니다. 

2. 확실한 소망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이 사는 세상을 고해(苦海)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휩쓸어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영혼의 닻과 같이 튼튼하고 견고한 소망이 있습니다(히 6:19). 

1)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령한 눈을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실체를 손에 잡은 것처럼 믿고 즐기는 사람입니다(엡 1:17-19). 산상보훈에 소개된 팔복의 내용이 그런 것입니다(마 5:3-12). 사도 바울도 보이지 않는 소망의 가치를 피력하였습니다. 

로마서 8:24-25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의 것이 아니라 장차 오게 될 미래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2)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육체의 수명이 다하는 날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도 다 쇠잔해지고 맙니다. 이사야 40:6-7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영원할 줄 알고 거기에 소망을 두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좌절하고 실패하였습니다. 오직 하늘의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는 사람만이 확실한 승리가 보장됩니다. 그들은 하늘의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죽음의 세력에게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능력을 발휘합니다(빌 3:20). 

3) 예수님께서 보장하신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인생에게 최종적인 절망을 안겨 주는 죽음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56절). 그는 또 그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5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살아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롬 8:1-2).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보장을 믿는 사람은 어떤 절망적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6-10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를 보증해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진실된 사랑입니다. 

진실된 사랑만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로마서 8:37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사랑(αϒαπη)은 조건 없이 주는 것이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지만 이 사랑은 창이나 칼보다도 더 강하고 힘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잡으러 간 무리들이 칼과 몽둥이로 무장하였으나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고 말씀 하시자 그냥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요 18:6). 그 사랑의 힘은 마귀의 사슬에 얽매인 자기 백성을 구하여 냅니다. 그리스도인을 모조리 죽이려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청년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땅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습니다(행 9:3-9). 그는 훗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권한다’는 말은 앞에서 잡아끌고 간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에 이끌리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롬 8:35). 

2) 이웃을 향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대강령이 사랑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마 22:37-40). 그 내용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것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일 4:20). 사랑은 받는 것도 귀하지만 주는 것도 큰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사랑은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적과 아군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장애물이나 막힌 담도 허물게 합니다. 

3) 사랑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신령한 은사를 받아서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고 이적을 행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소리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에 불가합니다. 태산을 옮길 믿음이 있고 또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3:1-3). 고린도전서 13:8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가지는 모든 덕목 위에 사랑을 더하게 되면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골 3:14). 인간이 갖춘 모든 조건 위에 사랑을 실천하면 허리를 든든하게 묶어 주는 띠와 같이 힘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롬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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