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장 큰 계명 (마 22:34~40)

  • 잡초 잡초
  • 282
  • 0

첨부 1


가장 큰 계명 (마 22:34~40)
  

지난주는 눈도 많이 오고 유난히 추웠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이곳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데 매우 추웠습니다. 무릎이 시린 가운데 기도를 하던 중에 문득 ‘시설이 좋은 교회는 이렇게 춥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런 부족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제단에 나와 기도하는 분들, 그리고 교회에 나와 예배하는 여러분들이 사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 교회의 시설이 열악하지만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 교인됨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나눔을 통해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열다섯 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인지 죽어있는 교회인지를 구별하는 글을 썼습니다. 한번 들려 드릴 테니 우리 행복한 교회가 죽어 있는 교회인지, 살아있는 교회인지를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살아있는 교회의 지출은 언제나 수입을 초과하고, 죽어있는 교회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2. 살아있는 교회는 주차 문제를 겪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3.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이 많아 시끄러운데, 죽어있는 교회는 공동묘지처럼 고요하다.
4. 살아있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여 변화를 도모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5. 살아있는 교회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빨리 자라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다 외우고 있다. 
6. 살아있는 교회는 복음 사역을 위해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을 교회 안에 쌓아둔다.
7. 살아있는 교회는 규칙적으로, 자원하여 헌금하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인색한 구두쇠로 가득하다.
8. 살아있는 교회는 기도와 믿음을 바탕으로 전진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에 근거해서만 행동한다. 

9.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 개척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는 돈과 시간과 재능을 허비할까 두려워한다. 
10.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학교의 교실이 늘 부족한데, 죽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교실이 남아돈다. 
11. 살아있는 교회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환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자기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을 환영한다. 
12. 살아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자기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정기적으로 읽고 묵상하는데, 죽어있는 교회의 교인들은 거의 그러지 않는다.

13.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교회의 사역을 열정적으로 지원하는데, 죽어있는 교회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기능만 돌아갈 뿐이다.
14.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도와줄 교인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죽어있는 교회 교인들은 불평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15. 살아있는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적극적인데, 죽어있는 교회 교인들은 나눌만한 충분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분, 위에서 말한 열다섯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평가한다면 우리 행복한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에 속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죽은 교회에 속할 것 같습니까?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교회에 근접하려고 애를 쓰는 교회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행복한 교회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서로의 힘을 합력해 선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교회가 창립 된지 4년 9개월이 지났습니다. 창립 5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성도님들의 눈물의 기도와 땀방울 맺힌 헌신으로 교회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이만큼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행복한 교회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복한 교회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성장하게 하신 이유는 행복한 교회가 목회 철학으로 삼고 있는 나눔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겠다는 마음을 예쁘게 보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직은 우리의 나눔이 미약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과 재정 가운데도 기쁨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품고 사랑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셔서 행복한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자리에 복을 주셨습니다. 2010년도를 맞으면서 행복한 교회 목사로서 다시 한 번 ‘나눔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서 초점을 잃지 말자 더 굳건하게 세우자’고 다짐합니다.

동물 조련사들이 사자를 조련하기 위해 사자들이 있는 울타리에 들어갈 때 회초리와 권총을 가지고 들어가면서도 한 손에는 네 개의 다리가 있는 의자를 들고 들어간답니다. 그들은 울타리에 들어가면서 네 개의 의자 다리가 사자를 향하게 하고 들어간답니다. 그 이유는 사자가 네 개의 다리를 보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를 헷갈려 하면서 초점을 조련사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랍니다. 초점을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 사자가 일종의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조련사의 말에 순수히 따르게 된답니다. 

세상의 삶이 그러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면 무기력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상에는 초점을 맞출 만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 초점을 상실하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다초점은 잘못하면 무초점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사단이 뿌려 놓는 염려와 두려움은 바로 너무나 많은 것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게 하면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고 주께 맡기라고 말씀하심은 믿음의 초점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고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했다는 것은 그들의 공통된 질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생명처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사는 율법을 연구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묻혀 사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율법에 묻혀 있고, 율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만 율법에서 말씀하는 핵심을 찾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의 참된 정신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의 가지 수는 총 613개입니다. ‘~ 하지 마라’는 율법이 365개입니다. ‘~을 해라’ 하는 율법이 248개입니다. 율법사들은 613개의 율법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율법이 무엇이냐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율법 중에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할 때 대충 사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목슴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계명도 마찬가지로 사랑인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는 네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 전체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 행복한 교회는 성경 전체에게 가장 핵심이 진리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의 비전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행복한 교회 영어 이름인 Happy Church의 첫 자인 H자에 행복한 교회의 비전을 담았습니다. 왼쪽의 기둥은 첫 번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오른쪽 기둥은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말과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우리의 가지고 있는 것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눔으로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비전을 세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마지막 심판 날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의 심판 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헐벗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함께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와 예수님 당신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는 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나눔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들은 예배당을 짓기 보다는 그 재정을 가지고 오히려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에게 나누며, 미래의 교회와 사회의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 힘을 기울이자는 다짐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왔습니다. 2010년 새해를 맞아 이러한 아름다운 믿음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고 도리어 나눔의 비전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세워 나가겠다는 다짐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나눔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더 귀하게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복한 교회를 더 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교회로 성장시키시고 세우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화곡 3동의 어려운 이웃 38 가정을 월 10만원씩 지원하는 일, 지역에 있는 두 고등학교에 월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지원하는 일, 설날과 추석에 음식을 한 가지 줄인 사랑과 나눔의 식탁 헌금으로 실로암 병원을 통해서 개안 수술을 해 주는 일, 부활절 헌금을 장학금으로, 추수감사헌금을 선교헌금으로, 성탄헌금으로 지역에 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린 아이들의 수술 비용으로 사용하는 일, 모잠비크 87가정을 지원하는 일, 헌혈과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김장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돕는 일들을 하지만 이 일들이 앞으로 더 알차게 진행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해마다 나눔과 섬김의 규모가 더 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꿈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몽상가가 아닙니다. 몽상가는 생각은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과 실천은 없습니다. 우리가 꿈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몽상가가 아닌 비전의 사람입니다. 비전의 사람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며 실천합니다.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실패를 맛보기도 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행동합니다. 

나눔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의 거룩한 꿈을 향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우리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예수님의 나눔의 정신을 본받아 끊임없이 나눔을 실천할 때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행복한 교회 위에 은혜를 주셔서 더 귀한 나눔의 사역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나눔의 거룩한 꿈이 목회자만의 꿈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교회의 소수 지도자들만의 꿈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들의 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건물과 시설을 뛰어 넘어 ‘나눔의 가치가 이끄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함께 헌신을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눔의 실천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개개인의 헌신과 섬김에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나눔의 정신을 통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행복한 교회와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