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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가진 자는.. (행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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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가진 자는.. (행 8:14~17)

    
설교내용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해 할 수 없는 편견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편견에서부터 지역의 편견, 학벌의 편견, 인물의 편견, 빈부의 편견, 인종의 편견, 문화의 편견, 옷에 대한 편견, 화장에 대한 편견, 자동차의 대한 편견,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가치가 가진 것으로 어디서 사느냐 하는 것으로,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는 것으로 옷을 명품을 입었느냐는 것으로 심지어 머리를 어는 미장원에서 했느냐는 것으로 판단이 되어 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판단으로 보면 우리 예수님은 가장 형편 없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분은 가진 것이 없어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그분은 학교를 다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분은 권세를 잡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분은 머리 둘 곳이 없어 떠돌아 다니셨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숙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보잘 것 없는 나사렛 출신입니다. 그의 부모의 직업은 목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수의아들이 아니냐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편견 속에서 살았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를 복음으로 잘 극복하고 주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복음은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편견의 장벽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편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주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부도 제자가 될 수 있고 세리도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편견으로 보신다면 우리가 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목사 될 자격은 있고 장로 될 자격은 있습니까? 우리가 권사로 집사로 쓰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편견을 넘어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가 편견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하나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405장)를 지은 죤 뉴톤 목사가 큰 비를 만나 길가에 있는 집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죄수를 호송하는 마차가 그 집 앞에 서더니 보안관이 나와서 쇠사슬에 결박된 죄수를 무자비하게 끌어내어 진창이 되어 있는 길로 짐승 같이 끌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본 죤 뉴톤 목사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오 나의 하나님, 제가 저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지옥에서 마귀들에게 저렇게 결박당해 끌려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나 같은 저주의 사람에게 찾아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고 기도 드렸습니다. 이것은 죤 뉴톤만이 받은 은혜입니까? 우리는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처럼 영광스러운 주님께서 이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을 찾아 오셨습니다.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더럽고 냄새나는 죄인들인데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채워 주시고, 하늘나라의 복을 받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찬양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누구를 편견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에는 편견을 넘어서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BC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무너지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 갔고 동화정책으로 앗수르 민족은 사마리아에 이주시켜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희브리 민족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사람취급을 했고 그들을 증오하며 지리적인 구분까지 엄격히 하면서 장벽을 쌓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마리아에 찾아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우물가에 물 길러 온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소식이 전하여집니다. 유대인으로는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그 일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빌립 집사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이 떠나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 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깜작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 했더니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편견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우리가 부족하여도 오늘우리가 모자라드라도, 오늘 우리가 허물이 많다 하여도 오늘우리가 지식이 없어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축복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여기서 우리도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1, 복음을 가진 자는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편견을 가지게 되면 복음을 제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용서 하시고 구원하시기를 원하는데 내 편견으로 인하여서 금을 그어 놓고 장벽을 쌓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편협한 사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자기들만이 선민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은 자기들만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인줄로 알고 그래서 교만하고 이방인을 경멸하다가 결국 다 망했습니다. 

복음은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땅 끝까지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편견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도 가시고 이방인백부장도 만나시고 죄인들과 같이 자리를 함께 하시고 세리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이 복음의 정신이 오늘 여러분과 저를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하신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2, 복음을 가진 자는 찾아 가야 합니다. 복음을 들고 찾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하셨습니다. 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찾아 가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모든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아오게 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물을 들고 찾아 갑니다. 오늘도 그들은 신을 찾아 이 산골짝 저 산골짝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택할 자를 찾아 가십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복음은 고여 있으면 안 됩니다.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흘러 넘치는 길이 무엇입니까? 찾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찾아 갔습니다. 빌립도 사마리아를 찾아 갔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사마리아를 찾았습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종교가 아니라 찾아 가야 합니다. 구제하는 일도 봉사하는 일도 복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은 찾아 가는 것입니다. 선교의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찾아 가야 합니다. 불신 가족을 찾아 가야 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찾아 갔습니다. 온 아시아를 찾아 갔고 유럽을 찾아 갔습니다. 이 정신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월이 되면 우리의료 선교회와 미용선교회가 자비량으로 캄보디아에 의료선교봉사를 하기위해 떠납니다. 누가 돈을 대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들이 어렵지만 선교를 위하여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위해서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오지의 사람들에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한번도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찾아 갑니다. 이 일을 위하여 살림살이를 절약해야 합니다. 사고 싶은 것도 다 취소하고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선교비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니다. 찾아가는 것이 주님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수많은 환자가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복음이 있습니까? 복음이 필요 한곳에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귀신이 쫏겨 가고 병든 자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3, 복음을 가진 자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부르는 외침입니다.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르는 자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위급할 때 부르라 하셨어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하셨어요. 필요할 때 부르라 하셨어요. 그래서 복음을 가진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 충만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14,15절) 했습니다. 그 후 17절에 보면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 받기위해 기도하고 안수하니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하나요?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9). 교인은 되 되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합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면 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내 구주로 믿어야 됩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또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쓰신 모든 인물들의 공통점은 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쓸모없고 버림받고 천대받고 가난하고 못생긴 그런 사람도 성령 받으니까 다 하나님이 크게 쓰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받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믿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믿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미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종교처럼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믿는 것이고, 믿어지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 나오는 마술사 시몬을 보세요. 그는 빌립의 전도를 받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것이 아니라, 믿으려고 노력한 것뿐입니다.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믿는 것은 맡기는 것입니다. 내 운명을 맡기고 내 생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좋은 예화가 있습니다.

줄타기 곡예사인 블론딘은 나이가라 폭포(Naigara Falls)에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외줄을 걸어 놓고 신기한 줄타기 곡예에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가라 위를 가로질러 외줄을 타고 캐나다 쪽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우렁찬 환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도착한 그는 박수를 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막대기를 들고 또 다시 미국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예 믿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앞에 있는 소년들 중 한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사람들의 대답 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꼬마들도 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누가 내 등에 업힐사람은 앞으로 나오시오 했습니다. 한사람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맨 앞줄에서 소리치던 꼬마에게 “얘야, 네 등에 업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꼬마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아무도 없습니까? 했더니 아주 어린 꼬마 하나가 “아저씨, 저를 업고 가세요, 제가 업힐게요”하며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천진난만한 꼬마를 등에 업고 안전벨트로 잘 묶은 다음 다시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줄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강을 건넜습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생각도 아닙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성령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 받으시기 바랍니다. 충만 하시기 바랍니다. 

평양에 다녀오면서 잊지 못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산당원은 얼어 죽을 각오, 맞아 죽을 각오, 굶어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는 구호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기들의 사상을 위해서도 이런 각오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여러분은 어떤 각오가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믿음이 있습니까? 죽더라도 믿자, 망하더라도 믿자, 거지가 되더라도 믿자.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복음을 가진 자에게 이 믿음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 하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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