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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자 (행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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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자 (행 8:14~17)


시작하는 말

성도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일부터 폭설에 매서운 추위가 계속 되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감기 환자들이 몹시 많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저도 지난주일 오후부터 몇 일간 몹시 고생하여 수요일 예배도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이런 저런 환자들이 많이 생겨 병원에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성탄절을 지나고 지난 6일부터 주현절에 접어들었습니다. 주현절이란 주인 주(主)에 나타날 현(顯)을 씁니다.‘주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현절을‘빛의 축제절’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빛 되신 주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절기는 1월 6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 수요일까지 계속되는데 금년에는 주일로는 2월 둘째주일까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으로 오심이 느껴지고, 믿어지고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절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해와 달과 바람의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날 해가 말했습니다.‘나뭇잎은 초록색이다’그런데 달이 말하기를‘나뭇잎은 은빛이다’고 우겼습니다. 다시 달이 말했습니다.‘사람들은 언제나 잠만 잔다’그러자 해가 말하기를 ‘아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움직인다.’고 우겼습니다. 달이 말하기를‘그러면 왜 땅이 그렇게 조용하냐?’고 물었습니다. 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누가 그래! 땅은 언제나 시끄러운데’이렇게 해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것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바람이 나타났습니다.‘내가 들으니 너희들은 쓸데없는 논쟁을 하고 있구나’하며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웃었습니다.‘나는 하늘에 해가 떠있는 때에도 불고, 또 달이 떠 있을때에도 분다. 해가 빛을 비추는 낮에는 해가 말한대로 땅이 시끄럽고 사람들이 모두 움직이고 나뭇잎은 초록색이다. 그러나 달 빛이 빛을 비추는 밤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온 땅이 고요해지며 나뭇잎은 은빛으로 보인다. 또 구름이 달빛을 가리우면 나뭇잎은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너희들은 진실을 모두 알고 있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은 해와 달처럼 부분적으로만 알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실체를 알 수 없습니다. 이런 편견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고 판단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뿐더러 편견과 장벽을 무너뜨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처음 교회에 나타났던 편견과 장벽을 무너뜨리는 복음의 역사를 보면서 이러한 복음의 역사가 오순절 다락방 같은 우리 교회에서도 재연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땅, 이 백성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임을 절감하고 우리에게 이 복음의 능력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은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경멸하는 태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백성들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무너지면서 적지 않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앗수르 민족을 사마리아에 이주시켰기 때문에 이로 인해 사마리아 사람들이 혼혈이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적 정체성이 강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증오하고 그들과의 지리적인 구분까지 엄격하게 하면서 서로에 대한 장벽을 쌓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편견과 장벽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념적인 편견과 지리적인 동서의 편견과 남북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인한 편견으로 인해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혼혈에 대한 편견을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때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의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지도 않고 서로 만나기를 꺼려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빌립이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하여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마리아에서 귀신이 떠나가고 중풍 병자가 낫고 기적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지금까지의 생각을 버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파송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더니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편견과 장벽을 무너뜨리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이 나를 살리고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히려 편견과 장벽에 갇혀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갇혀있는 편견과 장벽이 무너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몸 말

복음은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시므온이 예수님을 안고 찬송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눅 2:35).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면 우리의 생각이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평의 생각이 감사의 생각으로, 미움의 생각이 사랑의 생각으로, 편견의 생각이 온전한 생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습관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면 운명이 변한다.”이 말은 카네기가 쓴 『인생은 행동이다』라는 책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을 변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4절에서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면 이런 말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사마리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아닌데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그들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을 엿보게 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불신의 장벽을 가지고 살았지만 복음으로 인해 그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인간이 쌓아 놓은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부부 간에, 가족 간에 쌓아 놓은 장벽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부부 간에, 가족 간에 쌓아 놓은 장벽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함께 교회를 섬기면서 한 공동체 안에서 쌓아 놓은 장벽들 성령의 능력으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의 장벽이 무너짐으로 주님 안에서 하나 됨을 누리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차별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차원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근히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은 그들은 차별의 마음을 버리고 사마리아로 가게 됩니다. 

다음으로 15절에 보면‘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요한 사람 모두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를 믿고, 그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관습과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지은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앞으로 문명 간의 갈등으로 인해 더 많은 전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차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지식수준, 입은 옷, 타고 다니는 자동차 등 보이는 것에 따라 차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2절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은 자들로서 빈부귀천을 떠나서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복음은 관계를 회복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음으로 인하여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였고, 사마리아의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4-5절 말씀에서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하나가 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편견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처음 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우리교회는 2010년의 표어를‘오순절 다락방 같은 교회되게 하소서’라 정하고 
① 다같이 한 곳에 모이자. 
② 성령을 충만하게 받자. 
③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자. 는 생활 목표도 발표하였습니다. 지난 주일에 이 말씀을 풀어 설명하며 설교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필요하시면 교회 홈피를 이용하여 반복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튼 처음교회 사람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음으로 방언을 하게 되었고, 그 방언은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알아듣게 되는 소통의 역사를 이루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문화의 차이, 인종의 다름이 모두 무너지는 소통이었습니다. 이 소통의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말할 것 없거니와 이 땅의 사람들 속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면 심각한 재앙이 생기게 될 것이라 느껴집니다. 모든 장벽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복음의 능력이 교회를 중심하여 이 땅에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엇그제 금요일 점심에는 참 반가운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20여년전 배재대학교에 재직시 학생이었던 한 부부가 아들이 한국종합예술 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에 온 김에 저를 만났습니다. 둘 다 음악을 한 사람들인데 그 부인은 지금 대전에 있는 청세 재활학교의 음악 선생님으로 10년쯤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녀와 대화하면서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중증 장애인도 많아서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학생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선생님과 의사가 불통인 학생들과 의사가 통할 수 있다는 경험과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기도와 그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 곧 복음의 능력임을 전제하고 말합니다. 어느날 자기 몸도 스스로 가눌 수 없고 휠체어도 일반적인 휠체어에는 앉을 수 없는 세린이란 아이가 있었습니다. 

음악시간에 음악을 들은 후 소감을 써내는데 평소에 전혀 의사 소통이 불가능한 그가 가까이 가서 그의 손을 만지며 말하는 선생님의 손에‘참 아름다운 음악이예요’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학기말에 수행 평가서에 이 사실을 기록했으나 선생님들 중 아무도 믿지 않고 오히려 자기만 이상한 선생이 되었다는 이야기. 

너무 비참하고 어려운 환경에 혼자 있는 어머니 마저 자살한 반항적이고 거부하고 고함치는 어느 아이가 이 선생님의 손바닥에‘선생님 같으면 고함치지 않겠어요. 그래도 선생님한테는 소리 지르지 않아요’라고 그리듯 글씨를 쓴 이 아이를 안고 한 없이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하여도, 아무에게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도 통하는 길은 있습니다. 그것은 통하게 하는 사랑의 길이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최고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15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별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우리의 마음과 삶을 내어 놓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 공동체와 우리의 민족 가운데 있는 모든 편견과 소외와 불신의 장벽이 무너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 되는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스데반의 죽음 이후 일어난 기독교 박해에 대해 간략히 기록하는 것으로 8장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이 박해는 믿음이 아직 연약한 신자들, 특히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포의 사건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서의 실패와 두려운 현실이 오히려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를 체험하는 현장이자 예수님의 지상 과제를 시작해 나가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고 귀로 들을 수 있었으며 입으로 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 하나로 일치되게 하시는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복음 전파는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고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빌립과 같이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시련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속에서 생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으나 그곳에서 성령이 충만히 임하시고 또 다른 복음의 역사를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가 되는 소통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었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그 복음의 능력은 전 지구촌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감사합니다. 이제 복음의 다른 모습이 아닌 이 편견과 장벽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 역할을 잘 감당해내는 오순절 다락방 같은 우리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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