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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의 은혜(15) (수 2: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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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은혜(15) (수 2:15~24)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찌니라.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서 거리로 가면 그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누가 손을 대면 그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로 서약케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여호수아 2:15-24

오늘은 ‘역경의 은혜’ 15번째 시간입니다. 역경이 왜 오는가?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라는 하나님의 음성대로 살지 못할 때 옵니다. 

최근에 180개 국가에 대한 ‘국가부패지수’를 측정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그 나라가 얼마나 깨끗한가, 또 부패한가를 0점부터 10점까지 구분해 놓았습니다. 1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한 것입니다. 180개 나라 중에서 한국은 5.5점으로 39등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제는 세계 12등이지만 청렴도는 39등에 불과하다니! 우리의 잘못이 드러난 것을 보니 부끄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정신적 고통입니다. 최고의 국가들이라고 하는 OECD 30개국의 평균 점수는 7.04점인데, 우리 한국은 그 평균에도 못 드는 5.5점입니다. 점점 올라가야 할 텐데 작년에 비해 오히려 0.4점이 떨어졌습니다. 섭섭한 일이고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이 조사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사기업이나 단체들을 조사하면 훨씬 더 나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않고, 불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 지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는 10점 만점에 9.2점입니다. 100점 만점으로는 92점인 셈입니다. 홍콩은 82점, 일본 77점, 한국은 55점, 중국은… 말 안하겠습니다.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나라는 뉴질랜드입니다. 부럽지요. 9.4점으로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꼭 이민을 가야 될 분이 계시면 뉴질랜드를 추천합니다. 그 밖의 상위권 국가는 전부 유럽 국가들입니다. 2위 덴마크, 3위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국가로 뽑혔습니다.

제가 이 통계를 보면서, 오랫동안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독교 문화를 뿌리내린 유럽의 국가들이 경제적으로도 제일 잘 살고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점입니다. “우리도 정신을 차려서, 39등에 머물지 말고 올라가자!” 이런 새로운 결단으로 우리 한국이 경제적으로만 세계 12위가 아니라 투명성에서도 12위가 되기를 원합니다. 최소한 일본보다 하나 위인 16위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아빠가 아주 예쁜 항아리 하나를 사왔습니다. 가족들은 너무 좋아하면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아빠는 “이 항아리는 아주 귀한 것이니 건드리지 마!”하고 탁자에 올려놓고 항아리에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을 넣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그것을 보니 ‘항아리 안에 있는 500원짜리 하나만 있어도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안 계신 사이에 그것에 손을 댔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을 하면 양심의 가책이 생기고 마음에 어두움이 드리웁니다. 아빠를 볼 때마다 혹시 아빠가 알지는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일종의 고통이지요. 그런데 이 아이가 아빠에게 안 들키고 항아리에 손을 대는 일을 계속 하면 큰일이 납니다. 아빠에게 매를 맞든지 야단을 맞든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면 큰 역경이 아이의 삶에 찾아 올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부정직하고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게 살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른들도 그렇지요. 우리가 매 주일에 2-3부 예배가 되면 지하 주차장이나 옥외 주차장이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찹니다. 운전하면서 조금만 실수해도 다른 차를 긁을 수 있습니다. 차가 많다 보니 어쩌다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남의 차를 긁고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생각하니 귀찮기도 하고, 보험처리도 그렇고 해서 그냥 가버리는 것입니다. 부정직이 차 주인에게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청렴성을 염려하지만, 이런 일은 예배드리고 은혜 받은 것을 그 순간에 몽땅 쏟아버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남의 차를 긁고 그냥 가신 분도 집에 가서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그 차와 비슷한 차만 봐도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그 다음부터 무척 조심하겠죠. 이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남의 차를 긁고 그냥 떠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마침 이 모습을 본 어느 분이 다른 분에게 전화를 합니다. “000집사님(권사님, 장로님)이 남의 차를 긁더니 연락처도 안 남기고 그냥 가더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 이것은 한국 교계의 슬픔입니다. 그런 일은 사랑방에서도 이야기가 돌고 결국 이 사람 저 사람 다 알게 됩니다. 시험이 옵니다. 숨겼던 것이 드러나면 부끄럽습니다. 왜 수치감을 느낍니까? 정직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들통이 나자 집을 떠나 멀리 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거기서 수십 년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는 자기 형에게 죽을까봐 밤을 새워서 벌벌 떨었습니다. 역경이요 고난이요 두려움입니다. 왜? 정직하게,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동생 요셉을 죽이려다가 상인에게 팔아먹었습니다. 그 형들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된 동생을 만났을 때 겁에 질려 떨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했고 성실하지 못했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못해서 부모의 가슴을 찢어 놓았을 뿐 아니라 평생 죄의식 속에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습니다.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간음과 살인을 했습니다. 저는 다윗의 삶을 조사하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그는 정직하지 못했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14번에 걸쳐서 엄청난 재앙을 겪었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쫓겨나 왕위를 잃고 울면서 맨발로 밤 중에 도망가는 역경을 겪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자식들을 훈계하고 책망하고 잘못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왜? 자기 자신에게 죄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의 허점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을 다윗의 삶을 통해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성 있게 살지 못하면 이처럼 역경과 슬픔과 불행이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셔서 영원한 생명, 저 천국의 시민권을 값없이 은혜로 거저 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성취시키고 부활과 생명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 은총도 그냥 주십니다. 우리에게 부모를 통하여 생명을 주시고 하늘의 햇볕과 비와 바람과 풍성한 자연의 은총들을 값없이 주십니다.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영원한 생명도 거저 얻는 축복이요, 자연의 축복도 거저 얻는 축복이지만 이 땅에서 평화롭게 은혜롭게 성공적으로 사는 길은 매일매일, 순간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깊이 의식하고 그분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라합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리고의 라합이 이스라엘 스파이 두 명을 숨겨줬습니다. 라합은 이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어떻게 나타나시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고 계신지, 하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간담이 녹았다고 했습니다. 라합은 스파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성에 쳐들어올 때 우리 가족은 살려주십시오.” 스파이들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라합의 집 창문에 스파이들을 구해 줄 때 썼던 붉은 줄을 매달아 놓고 절대 밖에 나가지 말고 모두 집에 모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파이들과 라합은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한쪽은 살려 달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계약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붉은 줄을 매달아 놓지 않거나,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집 밖으로 나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죽어도 우리는 책임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계약이나 약속, 조약을 그대로 집행하면 생명이 있고 약속을 어기면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평화롭게 지혜롭게 또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열쇠는 우리의 생각, 언행, 태도, 가슴속 동기마저도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삶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살려면 지혜와 명철이 필요한데 잠언 9장 10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평화롭게 지혜롭게 성공적으로 살려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을 아는 명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숲속에 숨는다고 하나님이 못 보시지 않습니다. 불을 껐다고, 지하실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생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시다는 의식을 철저히 갖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결과는 지혜와 명철입니다. 지혜와 명철이 있으면 이 땅에서도 우리가 은혜롭게 성공적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잠언 14장 27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말과 행동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면 거기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풍성한 생명의 샘이 하늘나라 가는 그 시간까지 계속 흘러나와 고달픈 인생의 목을 적셔줄 것입니다.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사망은 파멸이요 역경입니다. 죽음입니다. 죽음의 그물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무엇인가? 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신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면 우리의 언행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됩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것 때문에 수많은 고난, 역경, 문제들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으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 사람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 그 사람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사회에 혼란이 오고 가정이 파괴되고 관계가 깨어지고 수많은 기업들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고난이 오고 슬픔이 오고 역경이 온다면 우리 자신을 검토해 봐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가 정직하지 못해서 성실하지 못해서 책임 있게 행동하지 못해서 이 고난이 오는 것인가?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고난이 나의 정직하지 못함 때문에 오는 고난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 역경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삶으로써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숨겨 놓았던 죄가 드러나면 큰 수치감이 생깁니다. 그것은 깨달으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양심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악을 피할 수 있습니다. ‘진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반드시 나타나고 반드시 이기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정직이 이긴다는 것을 역사와 현실이 말해줍니다. 숨겨서 될 일이 아니고 거짓말로 둘러댈 일도 아닙니다. 실체와 진실과 사실은 언제나 또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도 정직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12위지만 도덕적으로는 39위입니다. 앞으로 세 배 더 뛰어 올라야 합니다. 잘 살고 잘 먹는다고 해서 세계에서 존경 받는 민족이 됩니까? 아무리 잘 먹어도 존경받지 못하는 나라는 온 국민이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국가부패지수가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 우리 온 국민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왜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나라가 되었는가? 슬픈 일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을 고루하다고,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직하면 손해라는 말을 우리는 이 땅에서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정직한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받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착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말에 따라 살 수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거짓말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비겁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에서 여론조사를 해서 옳다고 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고 하나님께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악을 부끄러워하며 순간마다 내 옆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거닐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존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사는 우리가 드리는 하나님에 대한 최상의 존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직은 우리 영혼의 거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경제 대국으로 세계에서 12번째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요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경을 믿고 사는 우리가 먼저 이 나라를 도덕지수 12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함께 노력하십시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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