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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 (빌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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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 (빌 2:1~11)


바울은 오늘 아침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천윤리에 대하여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와 실천 덕목들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완전한 모델로 제시하며 그 마음을 품으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6절-8절에 요약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를 낮추심 혹은 겸손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성숙함의 기준은 겸손하신 그리스도, 자기를 낮추신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닮아 살아가고 있느냐로 정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어느만큼 품고 있느냐에 따라 성숙한 신앙의 정도가 드러납니다.    

낮아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본래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는 분이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사양하시고 자기를 비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종의 모양으로 낮아지셨으며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본래 영광과 능력과 위엄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 우리들처럼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 되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사람으로 오시되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어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자기를 비우신 하나님 아들의 마음, 하나님과 동등한 그 영광스런 자리를 비우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그 마음, 아버지와 하나가 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이 따라야 할 자세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낮아지심은 세상의 죄인들을 위함이었습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201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새해를 시작하였으리라 믿습니다. 지난 해보다는 좀더 성장하고 달라진 삶을 살아보겠노라 결심한 줄로 압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지만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목표는 ‘그리스도를 본 받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본 받는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2010년도에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을 표어로 삼아 겸손하신 그리스도를 닮아 일년 내내 자신을 낮추는 훈련을 실천해봅시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자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높여줌으로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헐고 깎아내림으로 내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맙니다.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로 낮추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를 본 받아 다른 사람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입니다. 너무 당연하고 은혜로운 이 말씀이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은 가르침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남을 눌러 이기고 올라서야 내가 돋보이고 생존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나를 낮추고 남을 높여주면서 살 수 있을까 그건 바보스럽고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많은 말로 헐뜯어 나를 드러내고픈 고약한 마음이 내 안에 생기거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 나쁜 마음을 이겨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수께서 그 마음 속에 계시지 않다는 증거를 스스로 드러냄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하나님 나라 윤리를 어떻게 제시하는가 주의깊게 살펴봅시다. 내가 하나님 나라 시민이라면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이 윤리강령이 나의 것이 되고 그대로 살기를 힘쓸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말씀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1절부터 4절에 나오는 몇 가지 실천 행동지침을 봅시다. 그전에 먼저 1장28절, 29절을 보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고난이 많은 시기에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살아가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고난 가운데 사랑으로 서로 한 마음이 되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1절에,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하였습니다. 고난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도 풍성하였던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믿음을 지키던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격려와 사랑과 교제와 긍휼 그리고 자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한층 성장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은 바로 이런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 소중히 여기던 것 하나를 잃으면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제일로 여겼던 것들을 포기하면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하였던 기쁨과 만족감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로부터 오는 격려와 사랑의 위로이며, 성령의 감동에서 나오는 진실된 교제와 서로를 불쌍히 여김과 자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들은 바로 이것이 있기에 고난 많은 세상에서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일 성도의 삶에 이런 소중한 은혜가 있다면  그 은혜에 걸맞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바울의 간절한 당부가 이어집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절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이 정말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형제와 자매를 한마음 되게 합니다.  2절에 같은 말을 몇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당부를 하고 있을까요?  소위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이 실수하기 쉬운 점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홀로 하나님 사랑을 받았고 나만 자비와 긍휼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여 내 체험과 내 느낌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주장하고 남의 것을 인정하려들지 않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런 태도가 과장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바울의 말을 빌리면, 무슨 일을 할 때 다투며 하고 허영으로 합니다.  조용히 일하는 법이 없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다른 사람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귀담아 듣지 않고 내 생각에 옳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내가 한 일에 대하여 자랑하기 좋아하고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기 일만 생각하여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다툼이나 허영으로 일하는 스타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는 이 교회 안에 이미 그런 모습이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많은 칭찬을 받는 교회였지만 동시에 염려를 끼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서로 한마음 되지 못하여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고 있었으니(2:14) 그 가운데 특히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 같은 여인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불명예스러운 지적입니다. 제발 두 여인들이 같은 마음을 품으라 하였으며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서로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4:2,3).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제대로 받아누리는 사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2절부터 4절의 말씀을 쉽게 풀어 다시 읽어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나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 여깁니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심사와 의견도 살펴 그들을 돌보는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똑같이 은혜 체험하고 하나님 사랑을 느끼며 사는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하는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서로 한마음 되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형편을 살펴 돌봄으로 나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내가 전에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보여준 믿음과 성도의 사랑으로 나의 기쁨이 충만했는데 지금은 내가 멀리 있을지라도 더욱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가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그리스도를 본 받는 행동지침을 알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를 본받아 살아야겠는가 생각해봅니다.    

먼저, 섬김으로 본 받읍시다.  섬김은 나를 낮춤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신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우리에게 분부하신 제자의 자세입니다. 낮아진 마음을 품어 형제자매의 허물을 씻어주고 용서하기를 힘쓰는 2010년이 되길 바랍니다.    

주께서 몸소 행동으로 본을 보이심 같이 말보다 행동으로 섬김을 보이는 그리스도인들로 삽시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과 생각은 허공을 치다 사라지는 메아리일 뿐 거기에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보다 앞서 가시며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 제자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막대기 들고 몰고가신 리더가 아니셨습니다. 명령하고 지시하며 아랫 사람을 부리는 일은 돈과 지위가 걸린 사회 조직이나 군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교회 공동체에서는 어른들과 지도자들이 먼저 손발 걷어부치고 앞서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한 사랑을 외칠지라도 소리나는 구리와 시끄러운 꽹과리 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젊은이들은 연세드신 어른들을 부모님처럼 존경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의 은혜받은 자녀들답게 행동하기 바랍니다.    젊은 세대가 예의범절을 모르고 자란다는 걱정을 듣습니다.  ‘요즘 젊은애들은 버릇이 없어’ 이런 말은 오늘날만 있는 말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있었던 말이고,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걱정대로라면  소크라테스 시대보다 지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 되고  이 다음 세대는 절대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버릇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되면 또 다음 세대를 향해 ‘요즘 젊은애들은 버릇이 없어’를 반복하고 있으니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그만큼 기대하는 바가 크고 동시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젊은이들은 특별히 어른들께 대한 공경심과 섬김을 즐거움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래야 가정과 교회의 미래가 소망이 있고 이 사회와 국가 전반에 소망이 있습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 이상 어른들은 여섯 일곱 자녀를 기르실 때 막내 아이 들쳐업고 작은 아이 옆구리에 끼고 온갖 힘든 일 다 해내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심한 입덧과 산후통을 무릅쓰고 부엌으로 나가 식구들 먹여살리느라 편안히 쉴틈이 없었고 산후조리하고 몸매 가꾸는 여유부릴 겨를이 없이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아기 키우기에 훨씬 편리한 세상에 사는 요즘 젊은 세대는 아이 하나 붙들고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고 신기합니다. 아기 엄마 혼자 끙끙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빠 엄마가 아기 하나에 동시에 달라붙어 안절부절 못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기 핑게로 귀찮은 일 힘든 일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두고 당당하게 휴식하는 동안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은 젊은 세대 받드느라 허리가 휩니다. 그렇지만 지금 아기 키우는 젊은 세대들도 언젠가 힘쓸 날이 오겠지요?  하나 키우기에도 벅찬데 그 많은 형제를 낳고 기르고 가르치신 어른들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이 불끈 솟아올라야 정상입니다.    

반대로, 어른들은 어른다운 본을 보이는 그리스도인들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젊은이들 앞에 무작정 어른 노릇을 하려들기 보다는 어른의 책임과 어른다움을 보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바랍니다.    나이 먹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맙시다. 아직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합니다. 나이보다 조숙해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들리다가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 들을 때 기분 좋은 날이 어느 순간 찾아옵니다. 나이만 먹고 나이 값을 제대로 못하면 어린 세대에게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어른 노릇하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젊은이들과 후배들이 나도 저분처럼 예수 믿고 싶다 할 수 있도록 좋은 본을 보이는 선배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실 요즘 애 하나 낳아 키우기가 옛날 서넛을 기르는 것만큼 손이 많이 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 자식 세대는 가난이 없는 세상 더 편하고 여유있는 좋은 세상에 살도록 해주겠다고 어른 세대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고생하여 만든 세상이 지금입니다. 그래서 그 혜택을 받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아이 하나 둘이라도 잘 길러보겠다고 나름 애쓰는 중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젊은이들도 나름 수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른들 보기에 언제나 미흡할 뿐입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돌아보아 서로의 형편을 이해하고 고려하며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마음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실천의 한 방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윤리, 기독교 윤리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인권운동과 정의실현 운동을 펼쳐야만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내 마음을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으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 높아지고 유명해지고 힘을 가지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높아지고 많아지고 힘이 있어야 큰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낮아지고 남을 높여주며 불쌍히 여기고 서로를 이해하고 돌볼 때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2010년 새해를 큰 꿈과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려는 분들 그 꿈을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낮은 마음 나를 비우는 마음, 남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아가는 그리하여 기쁨이 충만한 1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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