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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 덩어리로 부르심 (창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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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복 덩어리로 부르심 (창 12:1~4)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201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혹시 새해가 되어 돼지꿈 꾸시고 ‘로또’ 복권을 사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로또’가 성경에 그것도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다는데 들어보셨습니까?

4절 말씀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했는데 정말로 로또(=? 롯도)가 나오지요? 하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만 ‘롯도’가 ‘로또’는 아닙니다. 로또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또가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새해를 시작하면서 인생대박 또는 인생역전을 희망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을 사람이 산 사람으로 인생역전이 되었고, 지옥 갈 사람이 천국 갈 사람으로 인생대박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을 확신하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바라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브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새롭게 2010년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I. 떠남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브람의 새로운 시작은 그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1)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떠나다’는 말은 ‘누가 네 뒤에 남든지 상관  말고 너를 위하여 떠나라’는 의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뒤가리지 말고 무조건 떠나라는 말입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숨기고 싶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사람입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하란이라는 곳에서 이르러 그곳에서 머뭇거리다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데라의 아들 아브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떠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명령받았습니다. 이것은 그 동안 얽기고 설긴 모든 인간관계를 청산하고, 의지하던 것을 버리고, 주저앉아 머물러 있는 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데라에게서 물러 받은 모든 실패와 좌절과 한을 버리고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이끄심이었습니다.
   
1. 새로운 시작은 현재의 자리에서 떠남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향하여 ‘떠나’야 합니다. 늘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서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도 끈질기게 우리를 얽어매는 좋지 않은 생각과 길들여진 나쁜 버릇들에서 떠나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은 죄악 된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함을 좇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도전하십시오. 이 새로운 도전은 우리들에게 기존의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잘못된 관행과 잘못된 방법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일을 마음에 쌓아두지 말고 버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름값도 제대로 못했던 일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저앉고 멈추어버린 걸음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새롭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떠나서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직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보여 줄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력하게 떠날 것을 요구하셨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할 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 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 주실 것을 믿고 그것을 보기 위하여 출발해야 했습니다. 아브람 그 자신이 보기 원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줄 땅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2. 새로운 시작은 보여주시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여야 합니다. “오, 주님!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 주기 원하시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시는 일만 제게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것이 아직 구체적으로 분명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실 것이 라는 것을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2010년 한 해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기 원하시는 것을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루어 주시기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II. 소원

2절 첫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2a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를 큰 민족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큰 민족’이란 단순히 숫자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일 뿐 아니라 위대한 민족을 가리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의 고향은 달의 신을 섬기는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이미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를 떠나 하란에 와서 머물러 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라면 그는 “저는 벌써 떠났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르를 백 번을 떠나고, 하란을 천 번을 떠나고, 어려서부터 살던 고향을 만 번을 떠난다고 해도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있다면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달을 섬기고 있는 동안에는 달을 만드신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해를 섬기고 있는 동안에는 해를 만드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위대한 민족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아직 민족이라고 하기는커녕 일정한 정착지도 없이 떠돌이가 된 아브람에게 존귀한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우리에게 위대한 일을 이루어 주기 원하십니다.
   
아직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을 메뚜기라고 여기는 동안에는 세상은 우리가 넘어트릴 수 없는 거인으로 우리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존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위대한 일을 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이루시기 원하는 위대한 일을 바라보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절 두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2b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일시적으로 한 번만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짚으로 새끼를 꼬는 일을 자주 보았습니다. 한 해의 농사가 끝나면 벼농사를 짓고 남은 짚으로 새끼를 꼽니다. 짚이라는 것이 기꺼하여야 70∼80cm 정도 되는 가냘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서너 개씩 또는 대여섯 개씩 꼬아 가면 얼마든지 길고 튼튼한 줄이 됩니다. 가늘게 꼰 새끼줄 세 가닥을 다시 꼬면 밧줄이 됩니다. 밧줄 몇 가닥을 다시 꼬면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동아줄이 됩니다. 
   
본문에서 창대하게 된다는 말은 바로 꼬아서 길고 튼튼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미약한 아브람을 강하고 크게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17:4,5), ‘선지자’(20:7), ‘하나님의 방백’(23:6), ‘여호와의 종’(시105:5), ‘하나님의 벗’(약2:23)이라고 불렸습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아브람의 이름은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 이삭의 아버지로, 아랍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그들의 조상 이스마엘의 아버지로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아랍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릅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공동 조상입니다. 그러니 그 이름이 얼마나 창대하게 되었습니까!
   
2.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여주기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은 믿음에 속한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롬 4:16). 우리가 여전히 죄인으로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셨습니다(롬 5:8). 이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롬 8:14).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들이 마침내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010년 이 한 해에 여러분의 이름이 이 땅에서도 창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존경받는 귀한 이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주기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절 세 번째 구절과 3절 말씀입니다.
   : 2c너는 복이 될지라. :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전 성경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의역 번역되었던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복덩어리 그 자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그를 저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저주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향을 가까이 하면 향내가 나는 것처럼 복덩이를 가까이 하면 복을 받고, 복덩이를 걷어차면 화를 받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 받는 통로로 아브람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받게 될 복은 단순히 아브람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통하는 사람은 모두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3. 우리를 복덩이가 되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 덩어리로 부르셨습니다. 똥 덩어리는 만기만 해도 더러운 냄새가 나지만 복 덩어리는 가까이하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만나고 부르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 한 해를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III. 믿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줄 땅’은 아직 보지 못한 땅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보기 위하여 출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4절 첫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4a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어떤 의심이나 거리낌이 없이 단순하게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근거로 삼았습니다.
   
1. 우리는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아직 보지도 못한 것을 보기 위하여 나아가는 사람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히11:1[공동]) 우리는 아브람이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갔던 것처럼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듣는 말씀, 읽는 말씀, 받는 말씀을 귀중히 여기십시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2010년을 마칠 때, 이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간증할 일이 넘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주의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4절 두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4b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람에게 친척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떠나자 롯도 함께 아브람을 따라왔습니다. 롯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믿음의 사람 아브람을 따라가는 것이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차마 떨쳐버리고 갈 수 없는 조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브람은 롯과 갈등을 겪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롯이 그와 함께 가는 떠남은 아브람에 부족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떠났습니다.
   
2. 우리는 부족해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순종을 원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전혀 부족함이 없이 순종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의 삶에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순종하기 원한다면 부족해도 순종하면 됩니다. 
   
존 웨슬리가 미국 조지아에 선교사로 나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와서 “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회개시키려 했었지만, 누가 나를 회개시킬 것인가?” 하며 자책하며 낙심하고 설교도 못하고 전도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라비안 선교사로 미국에 가는 뵐러 목사로부터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얻기 위해서 전도하고, 믿음이 있으면 있는 믿음으로 전도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존 웨슬리는 이 말에 큰 감동을 받고서 다시 전도에 열중하였고, 1738년 5월 24일 놀라운 회심을 겪었습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힘이 부족하다고요? 부족한 데로 사랑하십시오. 계속하여 사랑하다보면 완전한 사랑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봉사하고 싶은데 너무 서툴다고요? 서툰 데로 봉사하십시오. 계속하다보면 봉사의 달인이 될 것입니다. 전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고요? 모르는 데로 전도하십시오. 계속하다보면 전도 왕이 될 것입니다. 부족하기에 순간마다 주시는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순종하여야 합니까?
   
4절 세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4c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순종하여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칠십오 세였습니다. 아브람이 죽을 때 나이가 일백칠십오 세(창 25:7)였으니 이후에도 일백년을 더 살았습니다. 하지만 칠십오 세는 당시로써도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에게서 인간의 진액이 마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3. 우리는 늦었어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결코 늦은 때란 있을 수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 아주 늦은 때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늙고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순종하는 바로 그 때가 우리에게 주신 최선을 때입니다. 아무리 힘이 넘치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때는 늦은 때요, 희망이 없는 때입니다. 죽음이 우리 코앞에 이르러 숨이 끊어지지 전까지는 말씀에 순종하는 데 결코 늦은 때란 없습니다.
   
거북이도 앞으로 갈 때는 머리를 내민다고 합니다. 아브람처럼 순종하여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망설이기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일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떤 소원을 빌까 들떠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도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이 좋을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가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 출출한데 소시지 하나만 먹었으면 좋겠다.”
   
그 순간 커다란 소시지 하나가 탁자 위에 펑하고 나타났습니다. 이런, 그 소중한 기회를 고작 소시지 하나 얻는데 사용하여 버렸습니다. 화가 난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에이 멍청한 영감! 그 소시지 할아범 코에나 붙어라!”
   
아뿔싸, 두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할아버지의 코에 소시지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은 코에서 소시지가 떨어지게 하는데 사용하였답니다. 
   
분명히 좋은 기회가 주어졌어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엇을 구하여야 할지 모르면, 가야할 방향을 모르면 기회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한 해에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원하는 소원이 여러분의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소원이 여러분의 삶에 이루어지는 2010년이 되시기를 부활하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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