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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사 65: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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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사 65:17~25)


2009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들이 항상 사용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슬프고 힘든 일도 있었고,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새해 벽두에 용산 철거민 진압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연쇄적으로 부녀자를 살해한 강호순 사건과 어린 초등생을 성폭행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조두순 사건 등 기억하기 조차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는 유난히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종교계에서는 바보처럼 산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청년으로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자’고 외치셨던 김준곤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신종 플루(Flue)로 인한 위기의식이 온 나라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정치권은 여전히 이해관계에 의해 얽혀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와 세종시 이전 문제로 내년도 예산안조차 심의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금융위기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던 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따라잡을 수 없는 나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일본 7대 전자산업의 총 이익보다 두 배나 많았습니다. IT와 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고, 휴대폰, LCD TV, 냉장고, 에어컨 등 세계 1등 제품이 됐습니다. UN의 경제 원조를 받던 개발 도상국가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돕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선진 20개국 정상 모임을 개최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이번 주에는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프랑스를 제치고, 40억 달러에 이르는 아랍에미레이트 원전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적임을 온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영국이나 프랑스는 감히 넘보지 못하는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대한민국의 저력이 놀랍습니다. 이 모든 것이 피땀 흘린 숨은 주역들의 노력의 열매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습니다. 불과 60여년 전만해도 국민소득 200불이 되지 않던 후진국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미군이 던져주는 쵸코릿이나 씨레이션을 먹고 살았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계를 이끌어 가는 당당한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선교 126년 만에 세계에 우뚝 선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바벨탑이 아닙니다. 통일 한국과 세계 선교를 위해 쓰시고자 하시는 놀라운 섭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짧은 선교 역사 가운데 대한민국을 사랑하셔서 복음의 불길이 들풀처럼 타오르게 하셔서 32만 명의 목회자와 5만 3천여개의 교회와 1천만을 헤아리는 성도를 주셨습니다. 전 세계 168개국에 2만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해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선교 강국이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대한민국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셔서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만할 때가 결코 아닙니다. 더 열심히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더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한 상태에 머물면 그것은 곧 퇴보가 됩니다. 
 
특별히 기독교 신앙은 끊임없는 전진과 도전을 요구합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유혹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좋아도 내일의 비전을 품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절망과 좌절 속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그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미 하나님은 6일 동안의 사역을 통하여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벨론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말합니다. 포로 되었던 자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맞이하게 될 새로운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이 새롭게 만드신 기쁨의 나라, 평화의 나라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고난의 자리를 기쁨의 자리로 만드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온 삶은 고통이요 아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조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 체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성전은 불탔습니다. 성벽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축복의 땅은 황무지처럼 변했습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종살이를 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힘과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방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열심은 끝나지 않습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의 고레스 왕을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왕이 직접 명령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에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꿈꾸는 것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살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적같은 일을 베푸신 것입니다.

18-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아멘!
 
하나님이 베푸신 엄청난 역사 앞에서 백성들은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고통의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백세에 죽으면 젊은이가 죽었다고 안타깝게 여기고, 백세가 못되서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로 여길 만큼 생명의 수를 누리는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기쁨의 나라입니다. 영원한 즐거움의 나라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보여주십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그치게 하시고 새로운 기쁨과 감격을 주십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들 가운데 아픔의 질고로 신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남모르는 아픔을 끌어안고 잠 못 이루며 애태운 자들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지금까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새해에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통의 자리가 기쁨의 자리로 바뀌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찬송이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어도 우리 주님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한 일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새해에는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손이 수고한 대로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헛손질이 없습니다. 21-23절 말씀을 다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주의 백성들은 손이 수고한대로 거두게 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후손들이 잘 되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내가 수고했는데 열매는 다른 사람이 거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달렸는데 수고의 상을 얻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열매를 거두었지만 그것을 내가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한 해 동안 무엇을 심고 무엇을 거두셨습니까? 나는 수고했지만 여전히 내 손은 텅 비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마침내 주시는 복입니다. 내가 정말 정직하게 수고의 땀을 흘렸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열매를 거두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삭을 통해서 그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확실한 정체성을 가진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야곱을 축복합니다.  그는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온유와 관용의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랄에 거주할 때 우물을 파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매워버립니다.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도 이삭은 다투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새 우물을 팝니다. 그러자 다시 그랄 사람들이 와서 빼앗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대적하지 않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 지역의 아비멜렉 왕과 화평의 조약을 맺게 합니다. 다시는 우물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입니다. 그 의미는 ‘장소가 넓다’입니다. 비록 쫓겨 다니는 비참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온유한 이삭의 삶에 지경을 넓혀주시는 르흐봇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창세기 26장12-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복은 마침내 허락하시는 복입니다.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면 마침내 백배나 얻게 하십니다.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게 하십니다. 새해에는 이삭처럼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백배나 얻는 역사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침내 모든 어려움을 뚫고 창대케 되고, 거부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서로 사랑하는 평화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긍극적으로 평화의 나라입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평상시에는 이리와 어린 양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으며 온순하게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대립과 불신이 사라집니다. 모든 적대관계가 없어집니다. 자기 이기심의 노예로 살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베풀며 나누며 삽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평화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참된 안식과 평화가 없습니다. 전쟁과 테러로 얼룩져 있습니다. 새해에는 먼저 우리의 마음 속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정 가운데, 우리가 섬기는 교회 가운데 주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나라와 이 민족 위에도, 저 북녘 땅에도 주의 위로와 평화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좌정하셔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스리시도록 우리를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 속에 진정한 평화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일’입니다.
 
독일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하나님을 '미래의 힘'(the power of future)으로서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찾아 오셔서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미래를 건설할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된 이래 끝없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오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망했을 때 이스라엘 역사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들(remnants)을 통하여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기독교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후에 부활이 시작되었고, 연이어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 당했을 때 이방 선교의 희망은 무참히 꺾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했지만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인간의 희망이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은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면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새 예루살렘 성의 청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시작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절망의 순간에 새로운 소망의 문을 여십니다. 인간의 절망의 자리는 바로 하나님의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가 꿈꾸었던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새롭게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나온 과거의 모든 일들은 던져 버리고, 새해에 새롭게 만들어가실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새로운 희망이요 꿈입니다. 안 된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나를 통하여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보십시오. 그리고 힘차게 도전하십시오. 

땜질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던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12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 그의 운명은 끝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시련과 치욕의 순간이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라고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 불멸의 고전인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을 썼습니다. 바로 존 번연(John Bunyan)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힘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힘차게 도전하십시오. 새 중에 가장 오래 사는 새는 바로 솔개입니다. 솔개의 원래 수명은 40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수하는 솔개는 30년을 더 삽니다. 그 비결이 놀랍습니다.
 
40년이 되면 솔개의 모든 기능이 퇴화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이 때 솔개는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한답니다. 그냥 죽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제2의 삶을 살 것인가?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솔개는 높은 바위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무려 6개월 동안의 처절한 갱신의 과정을 거칩니다. 먼저 길게 자란 부리를 바위에 내려칩니다. 입술이 터지고 피가 나는 아픔이 있지만 참고 견딥니다. 그러면 길게 자란 부리는 깨지고 새로운 부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자신을 덮고 있는 긴 털을 뽑아내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털빠진 솔개로 변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솜털처럼 부드러운 새 털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두꺼워진 발톱을 뽑아냅니다. 이런 6개월의 처절한 갱생의 과정을 통해 솔개는 완전히 새롭게 변신합니다. 그래서 30년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미물인 솔개도 자신의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 처절한 도전을 합니다. 하물며 우리들이 새롭게 열려진 새해를 맞이하면서 아무런 변화나 도전이 없다면 새해를 맞이할 준비가 부족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지나온 우리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성찰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에 새로운 도전과 변화가 없다면 그 인생은 이미 녹슬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미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힘차게 새해를 향해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동행하심으로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실 줄 믿습니다. 갱생의 과정을 통하여 제2의 솔개로 거듭나 창공을 날아오르는 솔개처럼 우리도 새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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