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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주와 함께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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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함께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8)


2010년, 경인년(庚寅年) 새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2010년 신년 첫 주일에 주 앞에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 위에 인류의 축복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교수신문은 대학 교수와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최근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강구연월'(康衢煙月)이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강구연월이라는 말은 '번화한 큰 길거리에서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仲尼)편'에 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태평성대 시절을 표현하면서 처음으로 쓰인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많은 지식인들, 그리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2010년 새 해에는 이 땅에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태평한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새 해에는 희망을 가져도 좋은가?  아니면 지금 누리고 있는 분복마져도 무너지지나 않을까?  사실 금년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과 염려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지 1년이 채 되지 못하는 어느 외국인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이 송구영신예배를 인도하기 위하여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한국말은 아직도 많이 서툽니다.  그는 정성껏 준비한 노트를 보고 더듬거리며 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 1년 2년 3년 하는 것은 배웠지만, 한 해 두 해를 배우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친해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이 밤이 지나면 이년이 가고 새년이 옵니다.  새년은 어떤 년일까?  기대를 해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년도 저년도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년을 맞아도 잘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새년과 함께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2010년 첫 주일에 하나님의 집에 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비록 실개천 같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값진 2010년의 미래에 도전을 하십시오.  하나님을 붙들고 2010년의 미래를 열어보십시오.  누구든 하나님을 붙든 사람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아무쪼록 우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신으로 예배를 드리다가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내가 감화나 감동을 받고 여호와의 신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철 넘치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소스라쳐 깨어 일어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의 힘으로는 미래를 열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로운 날들을 열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찾아온 사람들 속에 제일 무서운 죄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믿음 없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붙들어야 됩니다.  믿고 살아야 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놀라게 합니다.  딸이 어머니를 고소해 버렸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고소해 버렸습니다.  집안이 속된 말로 콩가루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정신 병동의 병자들처럼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어지럽고 타락한 시대 속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까?  가정 안에 믿음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형제들간에 믿음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이 사회 속에 믿음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누가요?  내가 말입니다.  나부터 먼저 믿음을 붙들고, 믿음의 불씨가 되어서 내가 머무는 곳마다 믿음의 불을 일으켜야 합니다.  내가 가는 모든 구석구석에 믿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더 이상 불신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땅에는 불신의 구름이 아주 무섭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불신 앞에서는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돈을 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이 땅에 불신의 장막을 거두고 믿음의 사회를 만드는 일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세상에는 인간 사회를 지탱해온 위대한 덕목들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성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덕목들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한 시대의 주역으로써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회와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세상이 갖고 있는 덕목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믿음의 덕목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민족이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지도자도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업가도 절대로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해 여러분 속에 더 큰 믿음을 불러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더 뜨거운 믿음을 불태우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만이 혼탁한 이 시대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으로써 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진실한 믿음의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믿음의 사람으로써 진실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결코 부끄럽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징벌을 받아 파멸되는 순간에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 새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채찍을 들어 징벌을 가합니다.  아파서 울며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또 용서를 해 주십니다.  이 과정은 이스라엘 민족의 공식처럼 되풀이한 악순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깔고 있는 배경 역시 이스라엘의 죄악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 시대가 부패하더라도 믿음이 올바로 서 있으면 타락한 시대를 바르게 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비록 시대적 풍조가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시대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바른 믿음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바른 사회를 세워갈 수 있는 것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국가나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국가 지도자들이 타락했다고 할지라도 국민들의 믿음이 올바로 살아있으면 그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역으로 국민들이 아무리 타락했다고 할지라도 지도자들의 영성이 깨어 있고, 믿음이 있으면 그 나라를 반드시 반듯하게 이끌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지도자들이 타락했습니다.  "네 시조가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  그런가 하면 22절에 보니까 백성들은 부패했습니다.  조상들이 범죄의 씨를 뿌리고 민족의 지도자들이 흙탕물을 일으키는가 하면, 백성들이 죄를 먹고 마시는 시대가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이것은 필시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무너지는 망신의 징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 2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고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게 되는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본문 28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 거리가 되게 하리라."

먼저, 성소의 어른들을 욕을 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백성들의 타락을 많이 보고서도 지도자들이 회개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나팔을 불어야 할 때에 자장가를 불러댔습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모든 것이 병들고 썩어 문들어졌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백성들의 죄악을 외면한 채 오히려 평안을 선포하고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로 성소의 어른들이 짓밟히고 유린당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야곱이 진멸을 당하도록 내어 주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멸망하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될 백성들이 비방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될 이스라엘이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28절에서 비방거리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을 향한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이방 족속들과는 다르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어 개처럼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방 족속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저 사람들의 꼴 좀 보라고, 성민이라고 자부하는 저 작자들의 저 꼴을 좀 보라고 비방하고 조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소와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 때 언제나 영광과 칭송 대신에 비방과 조소와 수치를 당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가만히 보십시오.  멸망과 저주와 수치와 비방의 소용돌이 속으로 아침 햇살처럼 신선한 복음이 들려옵니다.  희망의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서 선포되어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 수재나 천재들을 불러모아서 새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의 정결하고 의로운 자들을 불러모아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가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 말은 죄의 전통에 물들어 있고, 죄악된 공기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백성들.  죄를 먹고 마시고 수치와 비방 거리가 된 내 백성들을 불러모아 새 일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잘나지 못했지만, 못나 보이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새 일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새해 벽두에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가 잘나서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여느 사람들보다 더 의로워서 이 하나님의 성전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의 저들보다 잘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저들보다 더 의롭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곳에 불러모으신 것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새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이 25절에 나옵니다.  본문 25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은 저주의 백성을 축복의 백성으로 바꾸시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비방 받는 자녀들을 영광과 칭송의 자식으로 바꾸시는 일입니다.  멸망의 자식들을 영생의 자식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이 많은 저와 여러분을 이 성전에 부르신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이 한 해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축복의 백성으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세상 속에서 영광과 칭송의 자녀로 크게 떨치고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주와 함께 이 놀라운 새 일을 이루어 가는 이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간섭하시고 그것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가 대단히 놀랍습니다.  내가 잘났기 때문에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향기로워서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내가 너무 소중하고 귀하고 귀해서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본문 25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용서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거룩하시고 능하시고 전능하신 그 분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축복하시고 세상 속에서 영광과 칭송을 받게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자식이 벌거벗고 길거리에 뛰어 다니면 부모인 내가 수치스럽습니다.  내 자식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더러운 행동을 하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니면 어머니에게 수치가 됩니다.  그래서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새 옷을 갈아 입히고 단정하게 만들어서 세상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치의 옷을 입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채찍에 맞아 피 흘리고, 울고 실패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을 행복하고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내 본성이기 때문에 나는 너희를 용서하노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이유도 놀랍습니다만 그 방법 또한 놀랍습니다.  "도말하고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도말'은 기록된 모든 죄를 아예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은 녹음된 테이프를 불태워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완전한 사죄의 은총이 있습니다.  이것만이 완전한 용서가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용서보다도 더 큰 새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랑보다 더 큰 새 일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저 지옥의 백성들을 건져내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는 구원의 역사보다도 더 큰 새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허물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약점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한 번 하나님 앞에 고백한 죄, 하나님이 용서해 버린 죄에 대해서는 기억할래야 기억할 수 없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세상의 재미있는 일들 기억하지 않아야 합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왔으면 포로의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 앞에 죄 짓던 일을 씻어 버려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잘못된 과거, 집착증 환자들, 과거 회상주의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새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18절을 시작하면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내가 새 일을 시작했는데 너는 왜 과거로 돌아가려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작년에 있었던 실패의 경험들을 이제 더 이상 기억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번 실패했다고 영원한 실패자 인양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작년에 있었던 아픔과 상처들을 이제 더 이상 기억하지 마십시오.  10년 전에 저지른 허물과 실수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용서받았으면 하나님도 잊어 버렸으면 여러분도 믿으시고 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불쌍한 사람들아 오라 하시네
너희 죄 사해주사 너희 죄 사해주사
기억 아니 하시네 기억 아니 하시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해 버리는 것입니다.  실수와 허물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과거에 한번 싸우고 지나 간 것, 서로 용서한 것, 과거의 허물, 고칠 수 없는 아픔들, 그것은 제발 끄집어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면 그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의 복음은 용서의 복음이요 속죄의 기쁨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 받았으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실패의 쓰라린 경험, 지난 날 내 기쁨과 행복과 평강을 빼앗아 갔던 모든 죄책감, 이 시간 십자가 밑에 다 묻어 버리고 새 해를 힘있게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국에 어느 정신병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95%가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이용하셔서 새 일을 만들어 가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실수까지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새 역사를 감당하게 해 주십니다.

마귀는 우리 과거의 실패를 자꾸 들춰냅니다.  처녀 시절에 실수를 들춰냅니다.  어린 시절에 상처받은 것을 자꾸 생각나게 만듭니다.  이전에 쓰라린 경험이 자꾸 나를 꽁꽁 묶어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과거를 잊어버리게 하십니다.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희망을 약속해 주십니다.  성령이 오면 환상을 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아십니까?  연필 끝에 지우개가 달린 것은 실수한 자국들을 지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는 능력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갈 수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갈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꿔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야곱'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별로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야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야곱을 닮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약점을 지적할 때에 우리는 속이 상합니다.  야곱의 약점을 우리 모두가 가졌기 때문에 야곱을 닮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야곱, 그는 형을 속였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가로채고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루스라는 광야에 이르자 해가 서산에 져서 더 이상 여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이불을 삼아서, 돌멩이 하나를 베개 삼아서 잠을 청하는데 그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이제 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구나.  고향 땅에서도 버림을 받았구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이제는 내 하나님이 될 수가 없구나.  나는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인생에 나 홀로 떨어진 고아가 되어 버리고 말았구나."

그 고독한 밤에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그를 감싸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겠다.  네 뜻을 이루고 돌아올 때까지, 네가 성공하고 돌아올 때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는 잠에서 벌떡 깨어나 하나님을 향하여 울며 찬송했습니다.  나 혼자 도망가는 줄 알았는데 이 길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고 계셨구나.  이 황량한 들판에 나 혼자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이 자리에 함께 계셨구나.  여기가 빈들이 아니로다.  성전이로다.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로다.  그는 돌 베개를 세워놓고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경배합니다.  실패의 자리가 도약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의 실수까지도 이용하시고 나의 허물까지도 들어 쓰실 때에 우리는 새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제 안경에 먼지가 묻었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안경에 때가 끼었다고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먼지가 묻었다고 해서 우리 인생을 폐기처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고 약점이 있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주십니다.  약한 것을 강하게 하셔서 여러분을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이 한 해 동안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승리의 행진을 계속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에서 '생각'이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새해에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공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미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욕망이 일어나는 사람은 사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잘못된 생각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앞에 넘실대고 있는 요단 강이 무엇입니까?  홍해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후원자가 되신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좀 작은 생각을 큰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대범하게 역사를 펼쳐 가십시오.  약한 생각을 강한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추악한 생각들을 선한 생각들로 바꾸십시오.  미움을 잊어버리고 사랑을 계획하십시오.  실패를 잊어버리고 성공을 생각하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새 역사를 이루어 가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전진해 가십시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파도가 출렁이는 배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파도에 빠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래로 떨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위를 쳐다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는 새 역사가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새로운 사랑의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 새로운 아름다운 사역의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업에도 새 희망을 가지고 전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입을 여는 것만큼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하여 새 역사를 이루시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죄책감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축복의 잔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수치와 비방 대신에 감사와 찬송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예배를 잃어버리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던 백성들이 강가에 모여서 녹슨 거문고를 닦아서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원망하고 상처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격려했습니다.  서로 축복했습니다.  서로 기도했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은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한 해 동안 불평 대신에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원망의 지난날을 묻어버리고 찬송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개울 창을 내려다보던 눈을 열어 저 높은 곳,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은 아름다운 자리를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때 성령이 우리에게 오면 환상을 보고 꿈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리스도인이 절망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힘이 없다고 낙심하는 것은 힘의 원천인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나에게 과거의 죄가 있다고 포기하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희망의 눈을 뜨고 기대의 고개를 쳐들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가정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사업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영적인 성숙들이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해를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일을 행하십시오.  그리하여 반드시 이 한해 마지막에 여러분이 역사의 마지막 종점에 서 있을 때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무엇보다 이 한 해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부흥과 회복의 역사가 나를 통해서,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통해서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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