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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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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 (눅 2:1~7)


앞으로 닷새만 지나면 기다리고 있던 성탄절입니다. 성탄절만 되면 전 세계가 들썩입니다. 이날이 오면 흥분하는 사람이 많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과 같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날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고, 기쁨으로 축하합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닌,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아브라함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이 너무 소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누리게 된 축복은 예수님이 누구 신지 똑바로 알고, 믿는 사람들만이 받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누구 신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으므로 이 날은 그저 휴일로 여겨 먹고, 마시고, 즐기며 보내고, 예수님이 주신 복과는 상관없이 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이 오심으로 누리는 축복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똑바로 알려고 한다면 첫째,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서 알아야 하고 둘째,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증거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리스도’라고 하셨고, 성경 전체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 구세주이고, 메시아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기를「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하였습니다. 이런 증거가 그대로 다 이루어졌는데, 마태는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미가 선지자는 장차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는데, 그 말씀대로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역시 마태가 마태복음 1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며, 예수님을 온 세상의 모든 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 과거·현재·미래의 죄까지 모든 죄를 짊어지고, 속죄의 양이 되어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서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며 예수님이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항상 전쟁을 하시는데, 그들을 이기실 것이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도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실패가 없고, 패배가 없는 분입니다. 끝까지 이기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역사를 살펴보면 마태복음 2장 1절에서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예수님이 헤롯왕 때에, 장소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 1절에는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로마 속국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할 계획으로 모든 백성에게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마 황제는 이런 목적을 위해 이 일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오묘하게 이루어지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나사렛에 살던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 하러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해산하게 된 것입니다. 미가서의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정확합니다. 이 누가복음의 기록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몇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하늘의 별을 보고 따라왔다가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그때 예루살렘이 소동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은 예루살렘 전체에 소동이 날 정도로 모든 사람이 아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자기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돌아간 것과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또 다른 왕이 나타났다는 것에 화가나서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역사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보아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증거나 역사적인 증거가 분명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증거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연구하면 할수록 역사적 사실이고,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제국도 역사적인 진실을 은폐할 수 없을뿐 아니라, 너무나 확실하기에 기독교 국가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 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을 때 예수님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7~18)」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는 예수님, 베드로가 믿고 있는 신앙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베드로와 같은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만왕의 왕의 아들이 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호적 하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여관마다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의 인정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나오려는데 한 사람도 방을 내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아기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775년 어느 날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농부가 미국의 볼티모어에 있는 한 호텔에서 묵으려고 들어갔다가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여관방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사람이 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라는 것을 안 호텔에서 다시 모시겠다는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부통령은 “나는 이미 방을 얻었습니다. 그 뜻은 고마우나 허름한 미국의 농부에게 줄 방이 없다면 미합중국의 부통령이 묵을 방도 없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호텔에서 부통령이 온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 신지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예수님에게 관심도 없으니 예수님이 오신 것을 축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모든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시아만 오면 해결되고, 나라가 잘살고 강대국이 될 것이라 생각에 어서 메시아가 오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려면 먼저 죄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원인, 뿌리가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만 가지고 씨름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가 오게 된 뿌리가 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해야 문제가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저지른 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으려면 양이나 소를 제물로 들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일 죄를 범하면 또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고, 한 달 뒤에도 또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한 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8절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라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십니다. 죄를 해결함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은 저주를 해결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우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예비해주신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땅이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고 황폐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전에는 먹고 살 걱정이 없었는데, 이제는 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야 하고, 그렇게 고생해도 때로는 흉년이 오면 굶어 죽게 되고, 홍수가 나면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범하면 죽는다고 했는데, 죽기 위해서 병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목적은 우리의 모든 율법의 저주,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받은 저주를 속량하심으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저주 특히 가난의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가난하게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 양 한 마리를 드릴 돈이 없어서 누가복음 2장 24절에 보면 비둘기를 드렸습니다.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살지 않을 수 있는 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며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가난의 저주를 속량하기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대신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요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 가난하게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인이라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창세전에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아서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기 원하시는데 문제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한 목적은 먼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을 받는 것만 생각하는데 문제는 ‘열매를 맺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열매 맺는 비결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지, 떠나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죄가 있어도 예수님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열매 중에 가장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0~12절에 「내가 아버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면 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요한 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이 예수 믿게 되기가 쉽고, 은혜도 더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부요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가난한 대로 두어야 믿음이 부요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5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이 부요해져서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게 되니까 가난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믿음도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늘 은혜를 받던 말씀도 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을 수 없게 된 위기입니다. 이때 빨리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고생하게 하십니다. 둘째는 주의 계명을 순종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역사가 일어나는데, 교만하니까 말씀대로 안 살고, 말씀을 안 받습니다. 그래서 가난하면서도 은혜를 못 받고 믿음이 자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축복을 주시고, 부요함을 주셔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주의 계명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겸손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모든 저주를 속량 받은 자로서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며 나눠주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요해지면 타락했습니다. 교만해졌고, 불순종했습니다. 솔로몬이나 웃시야 왕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망해도 안 듣고 타락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부요함이 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재산을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려고도 하지 말고, 예수님 말씀대로 나누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어떤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계명은 어렸을 때부터 지켰다고 하자 예수님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주고 그런 후에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소유한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섬김이고, 나눔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고 공상입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 성탄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도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이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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