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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성탄의 희망 (요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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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희망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NIV - Yet at the same time many even among the leaders believed in him. But because of the 
Pharisees they would not confess their faith for fear they would be put out of the synagogue;).”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누구나 교회나 길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추리를 좋아합니다. 2천 년 전 첫 번째 성탄절 때도 빛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천사들은 하늘에 환한 빛을 발했으며 목동들과 동방박사들은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구세주가 탄생한 베들레헴에까지 인도함을 받아 왔습니다. 

이 빛은 성경의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요한일서 1: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을 창조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 :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하였으며, 

본문 46절을 보면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NIV- I have come into the world as a light, so that no one who believes in me should stay in darkness.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햇빛과 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각 사람들이 삶에서 경험하는 어두움 즉, 이 땅에 살면서 시련과 고난을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사람 만나는 일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두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요일 1 :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번 성탄의 빛이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원합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약 1 :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모든 사람은  

1. 인생의 어두운 날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게 되는 네 가지 어두움, 즉 실망, 고통, 의심, 무기력 등이 나의 삶에 고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네 가지 가운데 모두나 그 이상을 경험하거나 그렇지 않아도 아마 한~두 가지 정도는 우리들이 지금 경험하는 문제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이번 성탄절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 분께서 주시는 해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함 받고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는 은총이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문제해결의 선물을 경험하는 복 된 대강절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는 우리가 실망의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욥기 30:26절의 말씀에 욥도 “내가 복을 희망했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라고 고백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와 같은 경험이 있습니까? 내가 바라고 희망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않은 어두움의 세력들이 닥치는 경험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우리를 실망시키는 뉴스들로 가득하게 들려옵니다. 청년 실업문제, 노령화 사회의 문제, 자살자들의 급증, 서울청장을 지내신 분이 코렐사장으로 가셨는데 이권을 위해 단체행동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노동계와 정계의 이견은 행동의 표출로 노사가 어려움을 겪지만 단체행동이 끊이지 않으며,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거칠고 험한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에 천사의 계시를 받았고, 신령항 은혜를 경험하였으며, 여자의 후손을 성령으로 잉태한 믿음의 여인이요, 의로운 마리아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실망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낳을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편안하게 호텔이나, 여관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출산해야 했습니다. 

인류의 메시아를 잉태한 ‘마리아(Mary)’는 예수님을 가장 초라한 곳, 말구에서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실망을 가장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도 이렇게 실망할 수 있는 환경에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환경과 사람들과 조건들 때문에 실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후 4 : 8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고 갈 6 :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2) 또한 고통의 어둠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위협적인 상황에 대한 신체적 반응’입니다. 장기간 과도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할 대 피로가 오고 근심에 빠지는 등 심신이 괴로워지게 됩니다.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일 때,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상황이 나쁠 때, 경제적 어려움, 가정적으로 힘들 때 절망감으로 인한 고통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성탄절의 ‘마리아(Mary)’도 아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스트레스[stress]로 인한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 위궤양, 고혈압 따위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 노이로제, 우울증 따위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하는 스트레스[stress]는 한 남자와 장래를 약속하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마리아에게 있어 임신이란 모진 수모와 불행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간음 한 자는 돌로 쳐 주이는 율법의 시대에 처녀가 잉태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하여야 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마리아는 자신의 잉태 사실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마리아의 겸손한 태도는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확고한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녀는 임신 9개월 된 임산부로 나사렛(Nazareth)에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산간 지방을 거쳐 북으로 약 134Km 떨어진 베들레헴(Bethlehem)까지 여행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스트레스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한 번도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없는 ‘처녀가 마구간에서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꼈을 것입니다. 

다윗도 이와 같은 스트레스[stress]를 경험했습니다. “내가 절망적으로 부르짖었사오나 나의 도움이 보이지 아니하나이다(시편22:2).” 여러분들은 이런 경험이 없습니까? 

“누구든지, 제발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내가 너무나 힘겨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내게 너무나 무거운 일이 많습니다. 나는 너무 큰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상황을 어느 누구도 도와줄 사람은 없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고통의 터널을 다 지나갈 때 까지 내 문제를 풀어주며 해결책을 제공할 사람은 없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가운데 어쩌면 지금 고통의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경제적, 육체적,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때로는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보통 평상 시는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괴롭히는 고통과 스트레스[stress]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107 : 13절에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3) 또 하나 불안의 어둠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불안증[不安症]이란 ‘타당한 이유 없이 저절로 근심스럽고 초조해지고 무섭기까지 한 병적 증상. 일부 신경증, 우울증병, 정신 분열병 따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2:35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두움에 다니는 사람은 표류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들은 분명한 목표가 없이 삽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실망하기 쉽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과 걱정이 앞섭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전환기적 시기는 불안의 농도가 더 진해 집니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의 병이 정신적 요소에 있다는 것은 우리 주변 환경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불안과 초조, 걱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이 정작 어디로 걸아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나?’‘ 나는 미래에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불안해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까? 목적지가 흔들리고 목적 없이 살아갈 때 불안은 점점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히 12 :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NIV-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the author and perfect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scorning its shame,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고 하였습니다.  

4) 그리고 우울함의 어둠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울(憂鬱)은 슬프고 불행한 감정을 말합니다. 우울증과는 다르지만, 우울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우울증과 같은 증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실망과, 고통 그리고 불안의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것과는 달리 우울하고 슬픈 감정과 의욕저하 등 다양한 신체적인 증상이 함께 나타나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내력 1년에 320만 명 정도 발병하며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발병빈도가 2배 정도 높습니다. 여자는 평생 동안 10~25%, 남자는 평생 동안 5~12% 정도가 적어도 한번은 우울증에 걸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막달은 골목길에 서있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내 인생에서 빛은 사라졌다’며 허탈해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홀로’라는 생각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음의 병에 시달립니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많은 질병 중의 하나가 ‘우울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점점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인(sign)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고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19-20절에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우리 가운데 올 한해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기를 보낸 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일 수 있으며, 사업의 실패일 수 있으며, 직장을 잃은 아픔일 수 있고, 육체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일 수 있고, 가정의 파괴로 인한 방황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가, 전혀 즐겁지 않게 느껴질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해가 전혀 희망과 기대에 찬 새해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기가 고통과 외로움을 가중시키며 우울하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다윗과 같은 심정 일 수 있습니다. 시88:16절의 말씀처럼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는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세상은 온통 어두움으로 가득할 뿐입니다”의 형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만약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세상에서 나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니다. 의인 욥도 욥 30 : 24절에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형편이 되면 그저 두려움과 놀라움과 답답함이 가슴을 엄습하는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그 누구에게서도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다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시편ㅈ기자는 시 33 : 20절에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NIV - Psalms 33:20, We wait in hope for the LORD; he is our help and our shield.)고 하였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살앟셔서 독생자를 대신하여 구원한 소중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돕기 원하십니다. 시 121 : 2절에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4 : 8절에도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시 146 : 5절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위에서 말씀드린 4가지 어려움들과 무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나, 어두운 터널의 한 복판에 서있는 자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위에서 사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풀리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느 시점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야 합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독제와 같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22:29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요 8 :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입니다. 

2. 예수님은 인생의 어두움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일을 행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1) 낙망할 때 우리를 격려하기 원하십니다. 

시편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는 첫 번째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신 31 : 6절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하였으며, 삼상 12 : 22절에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였으며, 

히 13 : 5절에도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올 한 해 동안 정말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진급에서 소외될 수 있고, 계획한 사업들이 뜻대로 되지 않고, 희망과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감에 빠져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은 내가 어려울 때 어디에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문제를 아시고 계실까요?’ 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조금도 염려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내가 실망 가운데 낙심할 때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셔 나를 격려하십니다. 나는 한 번도 혼자 버려진 때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격려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절에 

“여호와가 말하기를 너희를 항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상처받는 것을 나는 원치 않습니다. 나는 너를 돕기 원합니다. 시편기자는 시 118 : 7절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사 43 : 15절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미래와 희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살후 3 : 16절에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기위해 우리가 느끼는 실망감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 실망감 뒤에 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복 빌어 드립니다. 

2) 또 하나 우리가 고통당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있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해도 나는 헤쳐 나갈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 개인의 힘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주신 능력인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새해는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황폐하게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능력으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시편 23:4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에는 150편의 시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주제를 한 구절로 말한다면 

“인생은 험난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힘들지만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실망할 때 너를 격려할 뿐만 아니라 내가 고통당할 때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잠 3 : 25절에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마 10 : 31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365번이나 두려워하지 말 것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하루 하나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고전 12 : 26절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쉽게 의역하면  ‘내 말을 의지하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고통당할 때, 내가 네게 힘을 주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눅 12 : 7절에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 또한 우리가 불안해 할 때 우리를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8 :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NIV-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결박하며, 잠 못 이루게 만듭니까나? 우리의 속을 쓰리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혼란스럽고 불안할 때, 옳은 길로 인도하고 조언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충고는 우리를 결코 잘못된 길로 안내하지 않습니다. 히 10 : 32절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고 하였고,

이 안내자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19:105절에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믿을 수 있는 인생의 안내자는 오직 주의 말씀뿐입니다. 주의 말씀이 어두움 가운데 빛을 발하는 등대요. 희망입니다. 우리가 방황할 때 주의 말씀만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주의 말씀만이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소련이 붕괴되던 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소련연방 공화국은, 몇 가지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수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와 같은 문제입니다. 몇 세기동안 기독교가 발전시키고 뿌리 내리게 한 도덕적 가치관들은 우리나라를 새롭게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한 말이 아닙니다. 소련의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국의 지도자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오고 북한의 지도자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올 때가 멀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도 빛이 승리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고 기도하는 구국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 57 : 18절에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렘 32 : 37절에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 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겔 27 : 26절에 

“네 사공이 너를 인도하여 큰 물에 이름이여 동풍이 바다 중심에서 너를 파하도다”고 약속하였습니다.    

3) 더불어 우리가 우울해 할 때 우리를 변화시키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울해 할 때, 하나님께서 단지 우리의 등을 두드리며 “힘을 내거라” 라고 말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변화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태도,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도, 새로운 선택을 배우도록 돕기 위해 그 어두움과 고통과 우울함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원하시며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다. 

에베소서 5: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빛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 빛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하나니.” 하나님의 빛이 나의 삶에 빛 칠 때, 나를 생기 있게 만들고, 나를 어두운 무덤 속에서 끌어내며, 그 빛은 나의 삶을 채우고, 나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5: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삶을 그의 영으로 채우도록 허락할 때, 그 영은 우리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도록 역사하십니다. 

한 정신의학자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에 적힌 내용을 소개합니다. 

“정신 건강의 가장 큰 돌파구는 프로이드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어떠한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 받지 못한 것들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나의 인생에서 어두움을 몰아내 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들이 무엇인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빛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이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는 참 빛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생각할 때 참으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보고 따라왔던 그 별을 다른 사람들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 별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늘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수백만 명이 밤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그 별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세 명의 동방박사만이 그 빛을 쫓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박사(지혜로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빛이 있다는 사실과 그 빛을 따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두움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어두움 가운데 살거나, 빛 가운데 살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하신다면 반드시 빛 가운데 살기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선택에 따라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성탄 선물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빛 되신 그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따름으로 빛 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빛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절망하고 포기하려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희망이며 주님은 우리의 소망을 삼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희망의 사람으로 재출발해야 합니다. 잠 16 : 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이사야 14 : 27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시간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빛 되신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2장 14절에 보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으로 그들의 심령이 말라버린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 상태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못가에 있었던 38년된 환자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이 환자는 마음속으로 베데스다 연못에 한 번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를 물에 넣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친구 없는 자의 친구가 되셨고, 슬픈 자의 위로가 되셨고, 소망 없는 자에게 소망이 되셨고, 죽을 사람에게 생명이 되십니다. 여기 이 절망적인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물이 동할 때 먼저 들어가면 나을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병자에게 그것은 아무쓸데 없는 미신이라고 이론을 전개하여 그 병자를 성가시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그 불쌍한 병자를 도와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저 하느냐?” 이 말씀 한 마디가 38년 동안 절망의 심연에서 헤 매이던 이 병자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이 병자의 말에서 그가 얼마나 비참한 형편 가운데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물이 동할 때 그것을 보고 자기가 내려가 보려고 안간힘을 써서 움직여 보려면 벌써 다른 사람이 내려가곤 해서 물이 동하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마침 동하면 희망을 가지고 움직여 보았고, 그러나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므로 또 낙심하고 주저앉기를 38년이나 하였을 것입니다.

이젠 거의 체념하고 포기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어떤 점잖은 사람이 자기 앞을 지나가다가 자기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이 병자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희망을 가져보았습니다.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이 동할 때 이 분이 나를 들어 물에 넣어 주시려는가 보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병자는 자기의 가련한 상태 그대로 예수님께 직고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께 나의 사정을 그대로 아뢰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조금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실망, 고통, 의심, 무기력불안의 어두움이나 낙망과 고통과 우울과 고난의 어두움도 주님에게 아뢰고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451장 가사는 퍽 은혜가 많은 찬송입니다. 

1.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진 짐을 내려놓고 저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그 은혜로 상 주시리. 

4. 너 주님과 사귀어 살면 새 생명이 넘치리라. 주 예수를 찾는 자 앞에 참 밝은 빛 비치리라.

요한복음 5 : 5절에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38년 된 병자는 이 어른이 나를 도와서 물이 동할 때에 제일 먼저 들어가게 하도록 도와주실 분인가 보다 그 정도로 믿었습니다. 38년 된 이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마음 중심의 간절한 소원을 그대로 말씀하였습니다. 자기의 처참한 상태를 그대로 말했습니다.

38년 된 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 말씀은 이 병자로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자기 몸 하나 움직일 수 없던 사람이 어떻게 일어나기를 하며 자기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라”고 말씀할 그 때 이 병자가 

‘내가 어떻게 일어납니까? 38년이나 누워 있었는데, 내가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저 연못이 동할 때 내가 먼저 들어갔게요? 더구나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요. 어처구니없는 소리 그만 하시오’ 하며 신경질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38년 된 병자는 주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순종과 은혜는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 말씀 듣기는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만 순종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아예 무시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칼빈(Calvin)의 말대로 “믿음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심령을 38년 된 병자 같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성탄절에 우리에게 “네가 낫고저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의 가련한 모습, 간절한 소원을 그대로 아룁시다. 그리고 주님 말씀하시는 대로 무조건 순종하므로 지각밖에 넘치는 은혜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 22 : 22절에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시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기고 순종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살면 훨씬 역동적이며 생명력과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빛을 통해 희망을 주신 날임을 믿고 빛 되신 그리스도와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지하고 따르는 복 된 인생을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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