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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삶을 시작하며 살았는가? (창 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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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시작하며 살았는가? (창 5:21~32)
  

인류 역사상 죽음을 보지 않고 자기가 살던 세상에서 더 나은 하나님의 세계로 옮겨진 자는 에녹이다. 물론 선지자 중에서는 엘리야가 병거 타고 회리 바람과 함께 하늘로 승천했으나 그는 지도층의 사람이다. 그러나 평신도로서 옮겨진 사람은 에녹이다. 에녹은 아담의 7대손이지만 가인의 후손으로 온 에녹과는 다르다. 에녹이란 이름은 ‘시작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가 어떤 삶을 시작하며 살았는가?

에녹은 평생동안 흠없이 거룩하게 산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라고 하였으니 그의 삶은 어느 시점으로부터 변화된 것이다. 즉, 므두셀라를 낳고 부터 남다른 신앙의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에녹의 삶을 이해하는 비밀이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이 데라가시는 날까지 그의 삶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1.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 사람 (창5:22, 24)

창5:22을 보면 에녹은 삼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한다.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동행이란 참 아름다운 단어다. 동행한다는 의미는 결혼하였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그때부터 제 맘대로 살지 않는다. 처녀, 총각 때에는 자기 맘대로 살지만 결혼을 하면 상대방을 동반자로 알기에 남편이 있는 곳으로 다 짐을 싸서 이사를 온다. 동행하기 위해서다. 아내가 있는 곳으로 모든 삶을 내려놓고 의논한다. 동행하기 위해서다. 

동행이란 모든 일을 함께 하는 것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내 맘대로 살았다. 그러나 65세의 나이를 청산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새 출발을 하는데 철저히 동행하며 산다. 에녹이 성공적인 일만 동행한 것이 아니다. 좋은 일만 동행한 것이 아니다. 동행이란 넘어졌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떳떳치 못할 때도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말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하나님께 보여드리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삶을 살았음을 말한다. 

우리는 내 삶이 완벽할 때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부족한 것을 채우며 더러운 것을 씻으며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따르면 그것이 동행하는 삶이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산 사람 (히11:5)

신약으로 넘어가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를 보면 히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의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산 사람으로 정의된다. 에녹의 300년 인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히11:6을 보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녹의 믿음이 여기에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철저하게 믿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만나주시고 상을 주시는 응답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가 엄마를 신뢰하듯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업적으로, 학위로, 신분으로, 내가 가진 명예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믿음이 제일이다. 믿음이 우선이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에녹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다. 65년간 내 맘대로 살다가 이제 믿음을 갖게 되니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에 자신의 삶을 맡겨 드렸다. 이런 믿음의 삶이 기적과 능력, 승리를 가져오고 최고 최대의 생애를 만들게 된 것이다.
  

3.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전한 자 (유1:14~15)

유1:14~15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로서 예언하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주께서 뭇사람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뭇사람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불경건한 죄악 때문에 경건하지 않은 일과 주를 거스르는 완악한 말 때문이다. 

어떻게 에녹이 심판을 예언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열쇠가 바로 므두셀라를 낳고 난 후부터 변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300년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삶이 첫 아이를 낳고 시작되었다.

므두셀라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여기서 이름을 아는 일은 더욱 더 중요하다. 원래 히브리 사람들은 신앙의 사건을 담아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뜻 글자로 이름을 지어 크게 성공하기를 바라면 대성(大成)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우리나라와 히브리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므두셀라란 이름이 “그가 죽으면 오리라.”는 뜻이다. 즉, 끝이 온다는 뜻이다. 

무슨 이름이 그가 죽으면 끝이 온다는 것인가? 이는 경건치 못한 자들에 대하여 예언한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그 계시의 사건을 이름에 담은 것이다. 이 이름대로 과연 므두셀라가 죽었을 때, 성경 인물 중 최장수한 969세로 죽었을 때 노아의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다. 그

것은 창5: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187) 세에 라멕을 낳았고”, 창5:28 “라멕은 백팔십이(182) 세에 아들을 낳고” 그러니까 노아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므두셀라는 187+182=369세였다. 

그런데 창7:11에서 노아 홍수가 시작된 때는 노아의 나이가 600세 되던 해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홍수가 시작된 순간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600=969세인 것이다. 즉 창5:27의 말씀처럼 969세까지 살았던 므두셀라가 죽는 순간 홍수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이름 그대로 그가 죽으면 오리라는 심판이 온 것이다. 즉, 에녹은 심판을 예언했는데 바로 이 계시를 받고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것은 하나님의 인애다. 인류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는 사랑이다. 어찌하던 끝이 오리라는 예언이 성취되기 전 죽음을 늦추어서 종말을 늦추신 것이다. 

이 시대에 주님도 재림주로 다시 오신다. 다시 오신다고 하신 주님이 아직 오지 않으신 것도 주님의 은혜다. 그것은 죄악된 사람들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는 사랑이다. 벧후3:9을 보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사랑과 긍휼이 가득한 하나님의 계시를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을 때 받았다. 이 계시대로 이름을 짓고 에녹은 예언하고 삶을 바꾸어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믿음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4. 건강한 종말 신앙으로 살자. (창5:22)

에녹은 끝이 오리라는 것을 계시 받은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예언하고 전하는 것을 끝내지 않았다. 본인이 믿는대로 종말 신앙의 사람이 되었다. 종말 신앙은 나쁜 것이 아니다. 삶의 긴장감과 깨어 있음과 집중력을 주는 것이 종말 신앙이다. 그러나 종말 신앙이 시한부에 빠져서 잘못되면 삶을 망친다. 에녹의 종말론적 신앙이 건강한 것은 바로 창5:22에서 말해준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면서 일상의 삶을 똑바로 살아갔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는 말이다.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종말과 끝이 오니 현실의 삶을 외면하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삶, 가정과 직장 등 일상 생활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끝을 보는 신앙으로 산다. 목회의 끝, 인생의 끝, 그래서 허무하게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는 끝이 온다는 것을 항상 본다. 그러나 열심을 낸다. 하루 하루를 사랑하며 산다. 목회 낙수를 금주까지 880회를 썼다. ‘그만 쓸까?’라고 생각하다가고 ‘끝이 온다. 끝이 오고나면 교회의 지나간 역사, 목회의 지나간 흔적을 누가 남길 것인가?’라는 마음이 생겨 ‘이 시간은 기회다. 특권이다.’ 그 종말론적 신아이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하게 해준다. 

에녹은 건강한 종말 신앙의 사람으로 살았다. 그 삶은 날로 향상되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갔을 것이다. 

우리도 오늘부터 에녹의 이름처럼 새 삶을 시작하자.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과 계시를 받지 못하고 세월을 떠내려 보내며 살았던 불신앙의 삶, 오늘 종지부를 찍고 에녹의 삶을 시작하자. 평생 동안, 300년 동안 아니 우리 생의 끝이 올 때까지,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날까지 오늘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전하는 삶, 종말론적 신앙으로 건강하게 사는 삶을 살아갔노라고 후세의 사람들이 기록하게 하자.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말씀을 들은 오늘부터 비전 집회가 끝난 오늘부터 결단하고 시작하였다고 말하자. 

어떻게 시작하고 살았는가? 결단한 이후 변함없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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