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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선택(11) : 긍정 (고후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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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택(11) : 긍정 (고후 1:15~22)


베스트 셀러 시인 이정하의 <고슴도치 사랑>이란 시가 있습니다. “서로 가슴을 주어라/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말라/소유하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 했네/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상처만 생긴다는 것을 알았네안고 싶어도 안지 못했던 그들은/멀지도 않고 자신들의 몸에 난 가시에 다치지도 않을/적당한 거리에 함께 서 있었네/비록 자신의 온기를 다 줄 수 없었어도/그들은 서로 행복 했네/행복할 수 있었네” 

우리 인생은 다 고슴도치와 같습니다. 실존의 외로움 때문에 이웃들에게 접근했다가 의도하지 않은 피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별수 없이 거리를 두고 살면서 시인의 말처럼 그것을 행복이라고 불러야 하는 슬픈 인생, 그러다 이런 상처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받게 되면 우리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런 상처 주는 사람들로 가득한 인생 자체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부정적이 되어 버립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후 받은 가장 큰 상처는 그가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 중에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에 바울이 떠난 후 바울의 사도 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지도자들과 율법주의를 가르치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바울 배척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운동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바울도 바울이 전한 메시지도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어난 것입니다. 본문은 이런 비난과 오해에 대한 바울의 해명입니다. 한마디로 이 해명의 내용은 “나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서로 믿고 삽시다”라는 말입니다. 상처 많은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정적 인생관이 아닌 서로를 믿고 긍정을 선택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1.하나님 때문입니다.

18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무슨 말입니까? 나는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인데 그 하나님을 보고서라도 나를 믿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한 말에 대하여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단지 처음과 달리 약속이 지연된 것은 그들을 만나 책망하기보다 고린도 교회 내에 상황이 호전되어 그들을 축복하며 만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1:23을 보십시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이런 바울의 의도는 2:1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의 여행계획의 변경 사유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바울은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도록 만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의 관계 안에서 은혜를 주고받는 만남을 위해 계획을 다소 변경한 것이지 약속 위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5-16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고린도)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그러니까 나를 믿어 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일 인간을 믿지 못하고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은 감옥이 됩니다. 서로를 향하여 마음을 열지 못하고 늘 의심하며 늘 긴장하고 늘 경계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감옥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의 이웃을 향한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고 또 하나의 상처로 돌아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을 믿어야 합니다. 속더라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이 믿을 만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완전하게 믿을 만한 대상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믿어야 할 이유는 인간이 비록 범죄하고 타락했지만 우리 안에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형상의 하나가 신실함입니다. 지금 바울은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18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faithful).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의 선의를 믿고 인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이 감옥이 되기 때문입니다.

2.예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 보다 인생의 약점과 불완전성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신 증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19-20절의 증언입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했다고 해서 인간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심으로 인간을 긍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믿고 인생을 긍정하고 살아야 할 이유-바로 이 예수님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믿어지지 않거든 예수를 전하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도 믿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그가 예수 안에 굳게 서도록 도우십시오. 그래서 바울은 21절에 우리가 그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굳건하게 세워져야 한다(established)"고 권고합니다.

요즘은 국민 드라마로 진행 중인 선덕 여왕에서 우리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캐럭터가 있다면 비담입니다. 비담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상처가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어머니(미실)에게 버림받고, 스승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여왕(덕만)에게도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그래서 그는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는 어머니 미실의 유언을 실천하기로 결심합니다.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는 그에게는 쟁취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는 운명적으로 ‘비담의 난’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그가 상처를 치유 받고 새 인생을 사는 유일한 희망은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럴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이 드라마의 비극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만이 소망이십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스(Yes), 삶의 긍정이요 인간에 대한 긍정이십니다. 예수 안에서 삶을 믿고 긍정하십시오. 인간을 믿고 아멘하는 삶, 긍정의 삶을 사십시오. 

3.성령님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우들에게 자신을 믿어 달라고 호소하며 이런 믿음의 또 하나의 근거가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라고 말합니다. 21-22절입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아직도 죄인이며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감히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인간의 가장 심오한 실존적 고민은 나도 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의 오류조차도 결국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로마서 8장을 기억하십니까?

롬8:26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간구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다음 절 롬8:27-28을 보십시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 ‘모든 것’안에는 우리가 받은 상처와 배신, 손해와 모욕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이 되게 하시는 분-그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령님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받고도 배신을 당하고도 인생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요셉의 사건이 아닙니까?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의 구덩이에 던지움을 당하고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고옥중에서 관리들을 돕고 그들의 출소를 도왔지만 그들에게 잊혀짐을 당하고그렇다고 그는 복수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져버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긍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삶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웃을 믿고 이웃을 돕고자 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기 앞에 부복한 형제들에게 말한 요셉 자신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45:5, 7-8) 

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긍정의 사람으로 산 것입니다. 이방 제국의 왕 바로조차 이런 요셉에게 무엇이라고 말한 줄 기억하십니까? 
창41:8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그러면 해답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긍정의 사람으로 살수가 있습니까?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날마다를 산다면 우리는 이 냉소적인 부정의 광야에서도 요셉처럼 긍정의 인생을 살수가 있습니다. 

2007년 4월 8일 터키에서 순교한 독일 선교사 틸만의 가족이 보여준 용기도 바로 이런 긍정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2년전 터키 중동부 말타티아에서 들려 온 소식은 온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틸만과 그와 함께 사역하던 현지 터키인 2명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5명에게 체포되어 3시간을 고문당한 후 칼로 목 베임을 당하고 온 몸에 칼로 난자를 당한채로 죽어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직후 터키 공영 TV방송에 출연한 틸만(Tilman) 부인 선교사는 “나와 내 가족은 내 남편을 살해한 이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고 선언하여 용서의 가치를 모르는 이슬람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나운서가 “이제 당신은 독일로 돌아가겠습니까?” 묻자 그녀는 침착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내 남편의 시체를 내 남편이 사랑한 이 땅 말라타야에 묻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9년 6개월을 살았습니다. 이 곳은 우리의 새로운 고향입니다. 나의 아이들은 여기서 계속 학교에 다닐 것이고 우리는 남편의 무덤에 꽃을 들고 자주 방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아 갈 것입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삶의 긍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성령님 때문입니다. 그러면 동일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면 당신도 인생의 상처를 넘어선 긍정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내가 받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선택하고 믿음과 사랑을 선택하는 위대한 긍정의 삶을 말입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사랑과 구원으로 바꾼 예수님의 삶-그 긍정의 삶을 말입니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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