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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상을 척결하자 (단 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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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척결하자 (단 2:31~35)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은 “우상을 척결하자” 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언지 아십니까?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나타납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베벨론에 멸망한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선지자들이 나타나 그토록 경고했건만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에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지니라.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라 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최소한의 계명입니다. 최소한 이 계명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최소한의 계명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다른 신이나 우상을 숭배합니까? 깨끗이 청산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는 우상은 버렸는데 마음의 우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8장을 보면 성전 안에 많은 우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그 우상 앞에 빌고 있었습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런 형태는 지금도 영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성전에도 무수한 우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을 막는 이 마음의 우상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영육간에 아름다운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본문 보니까 한 뜨인 돌이 나타나 신상을 부수고 그 돌들이 세상을 가득하게 덮었습니다. 여기 뜨인 돌은 예수님이신데 장차 우리 주님이 세상에 강림하시면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나라가 변화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강림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최선책입니다. 좁은 의미로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심령을 변화시키셔서 우리 마음의 악한 우상을 척결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척결해야 할 마음의 우상은 무엇일까요?

 1. 자아의 우상입니다.

여기 신상의 머리는 금이었습니다. 머리는 주권이요, 금은 신성의 상징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우상이 있으니 될 일입니까? 우리에게 적용하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하고 내가 내 인생의 하나님 노릇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인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텐데 내가 주가 되어 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까지 져야 하니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습니까? 이 나라는 우상이 문제입니다. 내가 우상인 줄 모르셨지요? 내가 우상이라는 것 성경이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바로 나를 깨뜨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삼고 예수님을 나의 주로 삼고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에 뜨인 돌이 한 일이니 아무도 막지 못해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지는 걸 누가 막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 기적입니다.

그러나 좀 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으로 주를 삼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주님의 소유로서 더 맡기고 더 부복하고 더 순종하고 더 충성하며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더 온전히 내가 죽어지고 하나님께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내가 죽어집니다. 예수님을 불러 주님이라고 하면서 그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나라는 우상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주인 된 우상이 척결되기를 바랍니다.

 2. 세상 것의 우상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다가옵니다. 다시 32절에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여기 신상의 가슴과 팔이 은이었는데 은은 당시 대표적인 화폐로 쓰이던 금속입니다. 그러니까 가치를 상징하는 물질입니다. 그리고 가슴은 마음이 머무는 품이요 팔은 취함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세상 것을 얼마나 사랑하고 품는지 세상 것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가치있게 보이고 그렇게 좋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머리와 같다고 할까요? 그만큼 쉽지 않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뜨인 돌이 나타나 가슴과 팔도 부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세상의 것이 무가치하게 보입니다. 권세 명예 물질 향락이 무가치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악의 바벨론 상품을 사모하지 않아요. 전에는 내 심령을 상하면서까지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다가 얼마나 은혜를 쏟고 세상을 사랑하다가 얼마나 하나님께 맞았습니까? 그래도 또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하고 품고 사랑하고 품고 세상 것 사랑하지 마세요.

요일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버리는 것이 내 맘대로 되나요? 세상 정욕은 거머리와 같아서 우리 마음에 붙으면 떨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셔서 가치가 없어졌으니 더 이상 취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빌3:8을 보면 그래서 바울은 전에 귀하게 여기던 세상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 은혜 받고 보면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 노래 부르기 싫습니다. 그렇게 바라보던 퇴폐적인 것들 이제는 추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나도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세상도 나를 향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세상에 볼 일 없지만 세상도 나에게 볼 일이 없어요. 이 시간에 성령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우상이 척결되시기 바랍니다.

 3. 탐욕의 우상입니다.

32절 하반 절에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랬습니다. 여기 배는 욕망이요, 넓적다리는 힘의 상징입니다. 빌3:19에 "저희의 신은 배요" 했습니다. 그러니까 배는 욕망의 신입니다. 골3:5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놋은 강한 쇠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육체의 본능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을 어떻게 이깁니까? 본능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어요. 성령이 임해도 본능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식욕이 없어집니까? 생식 본능이 없어집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범죄하지 않도록 조절해 나갈 뿐입니다. 우리 몸이 원하는대로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런데 뜨인 돌이 나타나 이 놋배와 넓적다리까지 부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령이 임하시면 육체의 욕망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육체만을 위해 살았다면 변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가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몸 드려 주의 영광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은혜 받으면 바울처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2:20-21) 이렇게 변화됩니다. 성령으로 욕망 따라 살던 우상이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4. 완고함의 우상입니다.

33절에 “그 종아리는 철이요”그랬는데 종아리가 튼튼하면 힘이 센 사람입니다. 종아리가 굵다고 부끄러워 마세요.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종아리는 짓밟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다리가 빛난 주석 같다는 것도 그 의미입니다. 그리고 철은 당시 모든 것을 다 부서뜨리는 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철의 나라 로마를 당할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철 종아리는 무엇이든 짓밟으려고 하는 완고함을 나타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완고함도 우상이에요. 삼상15:23에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어요. 하나님 말씀 앞에는 완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순히 순종해야 복을 받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심령은 완고합니다. 왜 그리 사람에게는 잘해도 하나님에게는 잘못하는지, 그래서 마음이 길바닥과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밭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고 자기 해오던 패턴[pattern] 그대로 유지하며 나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이 완고함의 우상이 무너지기 바랍니다. 은혜가 임하면 그 심령은 옥토 같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인내로서 지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부드러울 수 없어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주님을 본받은 자가 되었고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살전1:6-7). 이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5. 목적의 우상입니다.

33절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여기 철은 강함이요, 진흙은 저주요, 그리고 발은 행함입니다. 즉 저주의 길로 행하나 너무 강해서 아무도 막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거기 무슨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온 인류가 그것을 행해 달려갑니다.

돈을 목적 삼습니다. 돈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구별한 시간과 물질까지 범하지 마세요. 자녀 교육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이 목적이 아닙니다. 어떤 교사는 자기 종교는 교육이라고 하더군요. 착각하지 마세요. 교육이 중요하지만 교육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교육 때문에 아이들 하나님 멀리하게 한 학부형들 회개해야 합니다. 그 영혼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보면 그 아이들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교회 나와도 형식적입니다. 가정 화목도 그래요. 가정이 목적이 아닙니다. 육체의 건강도 목적이 아닙니다. 장사 잘 되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우리 목적은 아닙니다. 이것이 목적이 되면 그것이 우상이에요. 심지어는 하나님의 일보다 하나님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바빠 기도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 우상도 뜨인 돌에 의해 깨어졌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시면 인생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축복과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상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우상 주님이 임하시면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심령에 가득한 우상도 주님이 임하시면 사라집니다. 내가 우상입니다. 세상 정욕이 우상입니다. 육체 정욕이 우상입니다. 완고함이 우상입니다. 잘못된 목적이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한 대책은 하늘에 뜨인 돌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뜨인 돌의 축복이 임하여 모든 우상이 산산조각 나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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