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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 마무리 (말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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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마무리 (말 3:1~6)

    
설교내용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해가 기울어 질 때 보면 중천에 떠 있을 때보다 급히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이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느끼는 것인데 1년 12달 중 제일 빨리 지나가는 달이 12월인 것 같습니다. 급하게 지나가는 이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마무리입니다. 마무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무리가 중요 합니다. 

저는 예배를 마치고 모든 성도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아 뒷정리를 잘하는 우리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볼 때마다 감사함을 금치 못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예배드리고 자기 앉은 자리를 깨끗하게 하고 가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성도들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더러는 주보를 남겨 놓고 가던지 아이들 과자 봉다리, 휴지등이 남아 있습니다. 

그 뒷 정리를 몇 분이 다니면서 하시는 거예요 지저분한 자리가 금방 깨끗해집니다. 마무리가 잘 된 것이지요. 다음번 예배에 참석 하는 분들이 깨끗한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마무리를 잘 해준 하나님의 일꾼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을 잘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을 잘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을 잘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죄악된 것들과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들과 썩어서 냄새나는 우리의 삶을 잘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할 준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피조물들입니다.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한 나그네가 프랑스 접경 알프스산맥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황량하고 메마른 불모지를 보며 탄식했습니다.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로군." 그곳은 풀 한 포기 없는 죽은 땅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광야에서 등이 굽은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도토리가 가득 담긴 가방에서 도토리를 꺼내 쇠지팡이로 땅에 구멍을 낸 후 도토리를 심고 있었습니다. 나그네가 노인에게 다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심은 도토리가 싹이 나면 이곳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할 것입니다." 나그네는 노인에게 무모한 일을 그치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25년 후,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나그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곳은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새들의 노래와 꽃의 향기가 가득한 축복의 땅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의 마무리 사랑과 희생이 황무지를 축복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창조의 이야기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기다려라, 준비하라, 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직접적인 그 이야기가 없지만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는 기다려라, 준비하라, 입니다. 1절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언약의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 말씀 속에 무슨 뜻이 담겨 있습니까? 기다리라는 것이지요. 기다리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입니까? 준비해야지요. 그것은 마무리입니다.

저 어려서 기억입니다. 마는 요즈음은 모르겠어요. 학교에 장학사가 온다. 하면 전교가 대 청소를 합니다. 책상 다 뒤로 밀고 쓸고 딲고 교실청소뿐 아니라 유리창도 딱고 뒤 게시판도 새로운 그림으로 단장을 하고 화장실도 물청소 하고 운동장도 나가서 휴지 다 줍고 장학사가 오면 교실서 소리도 내지 않고 쉬는 시간인데도 공부하는 척하고요. 저는 그 때 장학사 되는 분들이 하늘만큼 높은 분인 줄로 알았어요. 왜냐하면 선생님들도 다 떨고 학교에서 제일 높은 분이 교장 선생님인데 그분도 떨고 있쟎아요. 

주님이 오신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니까? 심판하러 오신답니다.“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 할 것이라” 심판이 무엇입니까? 마무리 짓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준비하라, 는 것이지요. 그냥 오셔서 심판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오신다, 오신다, 경고 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것 아닙니까? 행악 자들이 회개하고 준비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심판주로 오시지만 너희가 심판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지요. 

요한계시록 끝 장, 22장에서는 이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경건생활을 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은 흰 두루마기에 얼룩이 묻었는데 그대로 놔두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주님과 요한이 만나 대화를 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하니까, 요한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화답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렇게 축복하는 말로 끝납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기다리라. 는 거예요. 거기에 대하여 요한의 대답은 아멘입니다. 준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오시더라도 주님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무리가 잘 되었다. 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들은 종교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였고 가정이 부패한 생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2:17절에 “너희는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괴롭게'라는 말은 '아프게 하고, 피곤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괴롭게 할 수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지요. 미물과 같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힐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괴로워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망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십니다. 사랑하는 자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나님은 괴로워하셨습니다. 사43: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내가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이 괴로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괴로워하지 않도록 잘 준비해야 합니다. 심판주로 오시지만 심판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잘 기다려야 합니다. 잘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잘 기다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실패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합니다. 의심의 사람은 의심의 말을 합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믿음입니다. 말 한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로 표현됩니다. 주님은 주님 앞에 나와서 고백하는 말을 듣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세상을 사신분입니다. 그래서 그의 언어 중에 '죽겠다!, 고달파서 못 살겠다!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주님은 참으로 고달픈 생애를 사셨습니다. 머리 둘 곳 하나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찾으신 분입니다. 제자들이 배가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배가 고프지 않으셨나요. 잠자리가 없어서 산에서 밤을 보내고 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정적인 말씀이 없습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이상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는데 거의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을 발견합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그렇구나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그 후 3년 동안 이 말씀을 외치면서 최선을 다했더니 점점 자신이 생기고 그러면서 사업이 다시 회복되고 5년이 지나니까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가 감사하여 맹인들의 전도를 위해서 크게 헌신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합니다. 외치세요.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언어는 사람을 황폐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믿음 없는 사람과는 절대로 사업이나 그 무엇도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목사님 이야기인데 정읍에 갔는데 희한한 이름을 가진 다방이 있더래요 "곧 망할 다방" 어디에 이름이 없어서 저런 이름을 지었나 했는데 그 이름대로 망했데요. 몇 달 후에 다시그곳에 갈일이 있어 가 보았더니 망해버리고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부부는 결혼 전에 얼마나 뜨겁게 사랑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결혼 후 1년 만에 이혼을 했어요. 원인을 알아보니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노래를 좋아해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부인도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부르는 노래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느냐하면 이별가를 불렀어요 “가슴아프게” "목포의 눈물"이니,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런 노래만 1년 동안 부르고 나니까 머리속에 이별만 새겨지고 따라서 이별이 좋은 것 같아서 이혼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언어를 쓰고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오시는 날 우리들의 믿음이 보이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두 번째는 소망 가운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귀감이 됩니다. 그러나 그도 기다림에서 실패했습니다. 소망가운데 기다리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소망가운데 있는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 2)하셨습니다. 또한“네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4: 16)하셨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손을 주겠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집에서 기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하려고 했습니다. 더 나가서는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온 지 십 년만의 일입니다(창16: 3). 십 년은 잘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실수가 있었네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소망가운데 기다림은 쉽지가 않습니다. 저도 잘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지만 어렵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이 복입니다. 

끝으로 서로 사랑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것과 싸우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도 이야기는 쉽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내 버려두지를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쌓아가야 합니다. 

한꺼번에 온전한 사랑을 다하지 못 한다 해도 하루에 한 가지 아니면 한 달에 한가지씩이라도 쌓아간다면 우리는 사랑의 성을 쌓고 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상대를 온전히 다 배려하지 못한다 해도 한가지만이라도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면 온전히 배려하는 마음도 생길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시작이 중요 하고 출발이 중요 합니다. 우리사랑을 시작해 볼까요. 사랑하기위하여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을 맞는 준비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지 이천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다고 성경말씀이 거짓말이다 하고 포기하겠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소망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오시지 않았기에 더욱 사랑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7절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시편 40편 1절과 2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시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그런 날이 옵니다. 우리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다 들어나고 마무리 되는 날이옵니다. 신앙의 마무리를 잘 짓기 바랍니다.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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