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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요 1: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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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다 (요 1:40~51)

 
이솝우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에게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몇 명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종이 다녀오더니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고 전합니다. 주인이 신이 나서 가봤더니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우글우글합니다.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서 종을 불러 야단칩니다. ‘네가 한 명밖에 없다고 해서 가봤더니 우글우글하더라. 왜 나에게 한 명밖에 없다고 말했느냐?’ 그랬더니 종의 말이 ‘제가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다니는 복도에 돌멩이가 하나 놓였는데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부딪혀도 어느 한 사람 그것을 옮겨놓으려고 하지 않는데 단 한 사람이 그것을 옮기더이다. 그래서 사람 같은 사람이 한명밖에 없다는 뜻으로 한 명 있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 말을 주인이 듣고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정말로 쓸 만한 사람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바다와 같습니다. 바다는 물 천지지만 마실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정말로 이웃이 돼줄 수 있는 사람, 또 내 마음까지도 헤아려줄 수 있는 사람, 정말로 공의로운 사람, 정직한 사람, 이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뿐만이 아니고 기업체든 공공기관이든 학교든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쓸 만한 사람, 하나님을 섬길 사람, 선한 일을 할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얻는 것이 돈을 얻는 것보다도, 또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도 사실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사역을 위하여 스폰서를 찾지 않았고 돈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구하시고 당신을 좇을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배우자를 찾고자 하는 젊은이라면 실감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구의 절반이 남자고 절반이 여자인데 잠재적으로는 얼마나 후보가 많다는 얘기입니까. 그럼에도 자기 짝을 쉽게 찾지 못합니다. 여자는 별과 같다고 발합니다. 별처럼 많고 별처럼 멀다는 얘기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겠지요. 정치인도 마찬가지에요. 세상에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은 많지만 정말로 국가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민족의 지도자, 정말로 어른이 되고 국민의 아버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 같은 대통령은 많지 않습니다. 아저씨 같은 대통령은 있어요. 그러나 아버지, 형님, 정말로 민족의 리더와 같은 사람은 찾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이 교회지만 특별히 우리나라처럼 교회가 많은 나라도 드뭅니다만 정작 나와 내 가족이 다닐만한 교회를 찾다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인구의 20 정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그건 상당한 숫자입니다. 열 명중에 두 명이니까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내게 신앙의 본이 돼주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노라면 그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이 적다 많다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후한 관점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각박하게 생각하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봤는데 그중의 대다수가 신실한 사람인 것을 알았어요. 이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고 미국 ․ 캐나다 ․ 

아프리카 ․ 중국 ․ 싱가포르 ․ 남아메리카 ․ 어느 나라 사람이든, 또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간에 기독교인들 중에 신실하게 믿고 믿음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고려하면 기독교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명의 훌륭한 신앙인을 만나봐야 된다.'''''''' 맞는 얘기입니다. 그 말은 우리 모두가 누군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갖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은 후하지 않은 관점입니다. 
첫째로 인재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신앙이 없는 천재 재능이 없는 신앙인’이라는 책을 쓴 것처럼 천재들 중에는 신앙 없는 사람들이 많고 신앙인들 중에는 천재적인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재능이란 예술이나 미술 ․ 음악 ․ 문학 이런 재능을 말하기 보다는 영적인 재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영적인 재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요셉에게는 꿈을 꾸고 꿈을 해석하는 재능이 있었고 다윗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데 재능이 있었고 또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재능이 있었고 또 무사로서 용사로서 그에게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 바울 또 빌립 ․ 요한 이런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잘 믿고 따른 것뿐만이 아니고 그 시대에 필요한 영적인 능력 ․ 은사 또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시대에 교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큰일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 중에 정말로 재능이 필요한 경우는 많지만 그것을 다 갖춘 사람을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를 일컫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대교체를 할 때 보면 원래 교회를 개척하고 일구신 원로목사님에 비교했을 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그 후임목사님들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 이유도 세상에 목회자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는 많아요. 그러나 실력과 능력에 있어서 다 같은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가 대를 이어서 영화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처럼 신학교가 많고 신학생이 많은 나라도 드뭅니다. 얼마나 신학교가 많은지 모르고 젊은 신학생, 중년에 신학교에 들어온 사람, 방송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양이 질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반드시 주의 종이 특출한 능력이 있어야 된다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기독교 역사를 돌아볼 때 소수의 특별한 인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적이 많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컨대 마틴 루터라든가 요한 칼빈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종교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또 요한 웨슬리라든가 조지 윗필드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영국의 신앙부흥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허드슨 테일러라든가 리빙스턴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선교운동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19세기, 20세기 미국의 D. L 무디 ․ 빌리 선데이 ․ 빌리 그레함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복음주의 운동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봐도 바울이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람이지만 그 한 사람이 회심하고 그 한 사람이 예수님께 헌신했을 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또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는 신학적인 기초를 닦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수의 특별한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십팔 년 전에 한국에 와서 한국 목사가 됐지요. 한국교회를 배우고 경험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제 자신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의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본 것도 사실이에요. 이것은 제가 어느 누구에게도 좀처럼 하지 않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제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그러나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고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만큼은 따분하게 생각하는 그런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목회자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도덕적인 문제라든가 믿음이 없다든가 그런 이유로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제가 많은 목회자들을 접하면서 느낀 것은 생기가 없고 자기의 일에 대한 기쁨이 없고 자신감이 없고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주의 종이라면 닮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되지 않습니까. 나도 저분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야 될 텐데 닮고 싶은 마음은 안생기고 오히려 닮아서는 안되겠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목사인데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에게 자네도 목사가 되는 것을 고려해 보라고 이런 식으로 권면을 해야 될 텐데 말리고 싶은 경우가 많아요. 

이것은 아마도 목회자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 그렇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 전반에 사람들이 평심이 없고 여유가 없고 자유하지 못하고 눌려서 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또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반영하는지도 몰라요. 한국교회의 병폐, 은혜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율법주의 적이고 또 하고 싶어서 하는 것보다는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그런 병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멋있지 않다면 그 말은 교회가 멋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목회자가 재미있지 않다면 그 말은 교회가 재미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것은 모든 인간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면으로 봤을 때는 행복해 보이고 또 자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그들이 다 연약하고 자신이 없고 또 절대적인 무력감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사람이 귀합니다. 정말로 쓸 만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인재가 드문 것뿐만이 아니고 인재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충성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저는 신학생일 때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부러워하고 닮고 싶었던 소위 스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타라 함은 목회를 성공적으로 잘 하는 제가 닮고 싶은 그런 목사님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외국 분들이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설교 테이프를 즐겨 들었고 또 그들이 나오는 tv설교방송을 즐겨들었습니다. 그들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견하는 것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분들이 계셨어요. 소리 없이. 성경을 보면 하늘의 별이 1/3이 떨어진다는 구절이 있던데 스타들 중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봤어요. 교계의 스타들 중에. 그게 저에게는 충격이요 실망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고 믿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 중에 우리가 바라볼만한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성공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저런 식으로 목회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성공적으로 목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갖는 것일텐데 만약 그게 아니고 나는 저렇게 되면 안되겠다 라고만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에게 문제가 있든 제도에 문제가 있든 우리가 가르치는 방법에 문제가 있든 신앙생활을 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든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예수님도 사람들을 쓰셨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고 무엇을 가르치시고 사람들에게 무엇을 얻으셨나.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실망하실 때가 있었고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봤을 때 예수님은 첫째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그 모든 걸 맡기고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사십일을 이 땅에 계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어떻게 승천하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왜 휴가도 제대로 못 가는데요. 누구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고 제가 직접 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병폐입니다. 예수님을 닮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그 허물 많은 열 한명의 제자를 두고 떠나셨습니다. 떠나셨다는 말은 결국은 그 제자들이 당신의 일을 이어서 할 줄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그 허물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이루는 것뿐만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을 믿으시고 교회가 성공 승리할 것을 믿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을 굉장히 단순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요한은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상당수가 이전에 세례요한의 제자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세례요한을 좇다가 예수님이 등장하신 후에 예수님께로 건너온 사람 중에 요한 ․ 야고보 ․ 안드레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들을 중심으로 제자들이 모였는데 나다나엘이라는 제자가 예수님에게 왔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면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이것은 사람이 예수님에게 오기 전에 이미 예수님이 그 중심 속에 무엇을 보신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그랬더니 예수님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부르기 전에 내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도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중심에 뭔가를 찾으신다는 얘기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 속에 뭔가를 필요로 하십니다. 진실함이든 선한 성품이든 잠재력이든 예수님은 그것을 보기를 원하시고 그런 것이 있는 사람을 제자로 선택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어떤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는 뭔가를 갖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이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을까. 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저희 집에 세계 지리책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백인 사진 ․ 흑인 사진 ․ 황인 사진이 나와 있었는데 저희 집에 같이 살고 있던 사촌 누나와 일하는 누나가 하루는 그 지리책을 같이 보면서 흑인에 대해서 흑인이 징그럽다 흑인이 어떻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듣고 어린 마음에 참 불공평한 말을 한다. 

왜 흑인에 대해서 나쁘게 말할까. 제가 봐도 원래 의로운 구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어렸을 때 흑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저희 사촌누나와 일하는 누나가 흑인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마음이 언짢았는데 아마 하나님이 그런 것을 보시지 않았을까. 그것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도 예수님이 나다나엘 속에 거짓이 없는 것을 보셨던 것처럼 당신이 쓰고자 하시는 사람 속에 뭔가를 찾으신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쓰실만한 재목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하시는 말씀이 42절에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어요.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은 아니지만 ‘장차-one day 네 이름을 베드로라 하리라’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내가 너를 반석 같은 인물로 만들어서 네 이름이 반석이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변화시키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뭔가 처음에 가진 것이 있어야 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을 장차 어떤 사람으로 만드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잘 통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희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I will, 예수님의 의지를 말씀하셨어요. ‘너희가 나를 따라오면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되게 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되는 것은 우리입니다. 

처음부터 사람 낚는 어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따르면 주님이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래서 정말로 베드로 요한 ․ 바울이든 사람 낚는 어부가 됐습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의지를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되게 하리라 하셨으면 됩니다. 될 줄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을 따라야 됩니다.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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