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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 벗은 사람/벗을 사람 (출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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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은 사람/벗을 사람 (출 3:1~10)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1)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2)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3)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4)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5)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7)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8)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9)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0)
<출애굽기 3장 1~10절>

할렐루야!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 절기로 표현하면 ‘강림절’입니다.
그래서 교회력에서는 
고난과 섬김, 희생, 헌신을 뜻하는‘보라색’을 사용합니다.
꽃꽂이 위원들도 교회력에 맞춰 
보라색으로 꽃장식을 해 주셨는데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도 넥타이를 보라색으로 맞췄습니다.

우리는 강림절에 ‘어떤 자세로 성탄을 맞이할 것인가’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내게) 구원의 길이 되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날 ‘성탄절’을 기다리는 순수함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 오시면 맞아들이고 언제든 다시 오시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누군가에게 쓰임 받는다는 것 ‘일’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나에게 일이 맡겨진다는 것은
나를 쓰고자 하는 분으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높고 존귀한 사람으로부터 쓰임 받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기준은 
일반 세상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뛰어난 사람’만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쓰시는데
평범한 사람, 능력 없어 보이는 사람, 약하고 실수가 잦은 사람,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무능력한 사람 … 도 쓰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부르시고 
훈련을 통해 변화시켜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도,
세상적 기준으로는 실패자였지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거룩한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1절에, 양치는 모세가 소개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 ”(출 3:1) 
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지금 양치고 있는 모세는 애굽왕 바로의 딸/공주의 양자였습니다. 
왕궁에 살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왕족들이 받는 전반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보면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행 7:22) 고 했습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많이 배웠고 지혜로워 말과 행동이 뛰어나 
능(能: 능할 능, 잘하다 / able, capable) 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실력있고 누가 봐도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잘 나가던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 도망가고 - 처가살이하며 -
장인의 양을 돌보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젠 팔십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왕궁에 사는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양치는 나이 많은 목동에 불과 했습니다. 
당시 양치기는 멸시 받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46장 34절에, 
“ …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 ”(창 46:34)라고 했습니다. 
“가증히 여기나니” 라는 말은 
‘얄밉게 본다, 싫어한다’는 뜻입니다.(쉬운성경 참조)
영문성경에 보면 “look down”(낮춰보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시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하는 일에 능했던 모세가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가증히 여기는/천하게 여기는/
낮춰보는 (look down) 양치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80나이에 자기의 양이 아닌 장인의 양을 치는 처지입니다. 

모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명예와 권력, 지혜와 젊음 … 
예전에 화려했던 모든 것을 잃고 볼품없이/천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떨기나무(Bush)는 이집트 본토와 시나이 반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아 종류의 가시가 많은 나무입니다.
떨기나무는 ‘비참하고 볼품없음’의 상징입니다.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참조>

예레미야 17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메마른 곳에서 
열매도 없이 살다가 죽는 떨기나무로 비유했습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렘 17:6)

하나님의 때, 시간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비참하고 볼품없는 - 사이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엄청난 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지혜로/경험으로/세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피조물인 우리가 
그저 믿고 순종해야 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모세에게 광야 40년의 바닥 생활은 시간낭비가 아니었습니다. 
혈기왕성해서 자신의 뜻대로 … 자신의 힘으로 … 
모든 것을 하려 했던 모세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만 할 수 있는 모세로 바뀌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그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1년 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3년, 5년, 10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광야 40년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애굽 왕궁에서 40년+광야 40년=80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특별한 장소가 아닙니다. 
모세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살면서
이런저런 들판, 이런저런 산, 계곡을 … 
안가 본 곳 없이 수없이 오르고 내렸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양떼를 몰고 이동하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되었고(출3:1),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출3:4~6)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하고자 할 때는 
기도원이나 높은 산 혹은 계곡에 들어가서 금식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금식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며칠 금식했다고 수척해진 얼굴로 
다른 사람들이‘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 
‘금식하며 기도하느라 힘들어서 그런다’고 답하려면 아예 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기도하기 위해 산이나 기도원을 찾는 것이
잘못 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야만 무엇인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자리 …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가정과 일터 …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교회에서 …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 여러분의 일터가 …
지금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이 교회/우리교회가 …
여기서 고신일목사가 설교하는 음성을 통해 …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을 벗으라

모세를 찾으신 하나님은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본문 5절을 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했습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고 종 된 자세로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당시 노예는 신을 신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주인이 맡기는 일에 거부할 권리가 없습니다. 
시키는 일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해야 합니다. 
노예는 일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헬라어의 ‘일꾼’은 
‘아래서’라는 단어와 ‘노 젓는 자’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일꾼’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휘페레테스(υπηετηs , hyperetes)’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밑에서 노를 젓는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복합 명사인데 ‘밑에서’와 ‘노를 젓다.’는 뜻입니다.
‘휘페레테스’- 고대 전함에서 노를 젓는 가장 하급 노예
휘포(전치사로 밑에서 라는 뜻) 
+ 아랫소(동사로 노젓는다는 뜻이 담김) = 휘페레테스 

그러므로 일꾼은 배 밑창에서 노를 젓는 노예(slave)를 말합니다. 
배 밑에서 일하는 노예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다만 노를 저으라고 하면 젓고, 멈추라 하면 멈출 뿐입니다. 
노를 저었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목숨을 다해 일할 뿐입니다.
배 밑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발을 쇠사슬로 배에다가 묶었습니다.
그게 노예이고 일꾼입니다.

여러분, ‘벤허’(BEN-HER)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보신 분은 기억날 것입니다. <1분 영상>

노예는 배가 침몰하면 배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일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 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즉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증거해야 하는 일꾼이기에 …
하나님의 말씀에 발을 묶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발을 묶었습니까?
말씀대로 살고 계십니까?
묶은 것 같으나 순간순간 풀어헤치고 자유인이 되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신 벗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신 벗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풍속에 아버지가 죽으면 장자가 그 재산을 상속받습니다. 
그런데 재산상속을 받을 장자가 동생이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우면 
자기가 받을 재산을 동생이 상속받게 할 수가 있는데 …
그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의미로 신발을 벗어 준답니다.

룻기 4장에 보면, 
나오미 집안에 기업무를 자가 기업무를 권리를 포기하고 
<쉬운성경에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번역함(룻4:1)>
보아스에게 그 권리를 넘길 때 신발을 벗는 장면이 나옵니다.(룻4:7)

기업(Inheritance) :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이나 사업 등으로 
이스라엘에서 기업은 주로 토지였다. 
기업 무를 자(Kinsman-Redeemer) : ‘기업을 되찾아 주는 사람’,
‘기업을 구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 해당되는 히브리 말은 ‘고엘’(go’el)이며, 
‘되찾다, 무르다, 구속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이 고엘 제도는 이스라엘 지파가 분배 받은 기업을 
영구히 보존하고 혈족을 유지하며 
부당한 피해를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기업 무를 자는 가난한 친척의 기업을 다시 사주어야 했으며(레 25:25) 
부당한 피해를 입은 친족을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민 35:12, 19, 21) 
또 자녀가 없이 죽은 친족인 경우 
그 미망인과 결혼해야 할 의무가 있었으며(신 25:5~6) 
거절할 경우 죄값을 대신 받아야 했다.(신 25:7~10) 
기업 무를 자의 자격은 혈연관계이어야 하며(룻 2:20) 
기업 무를 능력도 있어야 했다.(룻 2:1) -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참조 -

신을 벗는다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종이나 죄수들이 신발을 신을 수 없었던 이유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자신의 모든 소유/배경이나 환경 … 을 
포기할 때/신을 벗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나이가 ○○살인데’,‘내가 해볼 것 다해 본 사람인데’
‘내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
‘내가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인데’… 라는 마음으로 
목을 세우는 사람은 아직도 신을 벗지 못한 것입니다. 
잘난 것, 자존심이나 명예나 가진 것을 다 버릴 때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라고 
자신의 신을 벗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을 벗는 것은 경배의 뜻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에게만 신을 벗으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여호수아도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전에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나타나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수 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수 5:15) 

신을 벗는 것은 존경의 표시이자 경배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서 있던 자리가 거룩하고 특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곳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리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든 장소가 
거룩한 곳이며 신을 벗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는(ruling)/통치하는 곳이라면,
우리 가족이 모여 있는 거실이 … 식탁이 … 안방이 …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신을 벗어야 하는 거룩한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 지역, 장소의 의미로서 들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Region). 
이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 모두 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통치(권),주권, 영향력, 지배(권)의 의미입니다.(Reign). 
이것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나라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은 누가 지배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누가 통치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가정을 주장(ruling)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한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가족이 모여 있는 거실이, 식탁이, 안방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곳임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요. 거룩한 땅입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일을 할 때나 …
사업을 하면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
언제 어디서나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선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때마다 일마다 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신을 벗는 것은 고통을 뜻하기도 합니다. 
다윗 왕은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맨발로 울면서 피난을 갔습니다.(삼하 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15:30)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 길이
맨발로 울면서 걸어야 하는 고통의 길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키 위해 
많은 희생과 고생과 인내와 역경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아야 할 상황이 닥칩니다.
선교사들은 이런 것을 알고도 선교지에 갔습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죽을 줄 알면서도 예배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이 더 큰 줄 알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No Cross, No Crown!)
우리가 울며 맨발로 걸어야 하는 고난의 길이어도
그 길 끝에는 상급이 있는 것을 믿을 때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받는 영광과 특권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 혼자 있을 때도 신 벗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하고
신 벗을 사람이 ‘나’자신이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신 벗는 삶을 살 때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막대기 같은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의 지팡이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신 벗은 사람을 기억하고
신 벗을 사람이 ‘나’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교회에서도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신 벗은 사람이 나요, 신 벗을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주님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주님께 경배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말씀의 사슬을 묶고 사십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인터뷰를 했다고 글을 썼습니다.
the interview with God _ 하나님과의 인터뷰 (블로그에서)
“우리 인간들이 당신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What surprises you most about humankind?”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어린 시절을 지루해 하며 서둘러 어른이 되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
“That they get bored with childhood, they rush to grow up, 
and then long to be children again.”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번 돈을 잃는 것”
“That they lose their health to make money... 
and then lose their money to restore their health.”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잊어버려, 결국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는 것.”
“That by thinking anxiously about the future, they forget the present, 
such that they live in neither the present nor the future.”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살아보지 않았던 것처럼 죽어버리는 것”
“That they live as if they will never die, 
and die as though they had never lived.” 

결국 자기 기준으로, 자기 욕심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이 예수 믿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세례 받을 때.
집사, 권사, 장로 될 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신 벗은 사람으로 살겠다고 약속했을 것입니다.
말씀에 발을 묶고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삽니다.
신 벗은 사람이 나요, 신 벗을 사람이 나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 신 벗은 사람, 신 벗을 사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말씀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말씀에 발을 묶고 산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면서
노예라고 하면서 순간순간 사슬을 풀어 버렸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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