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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선택(10) : 감사 (민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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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택(10) : 감사 (민 11:1~9)


지금 들려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본래 병원 생활의 경험들을 기록한 병원 잡지에서 처음 알려지게 된 이야기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다가 나중에 유명한 <치킨 숲 스토리>에서도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병원 병실에 두 환자가 나란히 입원해 있었다고 합니다. 두 환자 모두 침대에 누워 있는 중증 환자였지만 그래도 한 환자는 하루에 몇 차례씩 치료의 과정으로 일어나 앉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창 곁에 있었기 때문에 옆에 누운 환자는 그가 일어 날 때마다 창 밖으로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친절하게 그는 바깥 호수에 대하여 그 호수가를 거니는 오리와 백조들의 이야기, 그 호수가를 산책하는 연인들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의 공놀이 광경을 전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그의 친절이 너무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그 사람에게만 창 밖에 광경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을 묵상하자 그가 미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창밖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옆에 누운 사람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비약하자 놀랍게도 옆의 환자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밤 자신도 고통스런 밤을 지나고 있는데 창가 환자가 기침을 하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응급 호출 버튼을 더듬어 찾는 부산한 소리가 곁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는 꼼짝 않고 자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으면 자기가 창가로 침대를 옮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를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고 그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새벽녘 창가 환자의 숨은 멎었고 병원 측은 그의 시신을 아침이 되기 전에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사람 마음속에서는 안 되었다는 생각보다 잘 된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창가 환자가 나간 후 그가 제일 먼저 요청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예, 자기를 창가로 옮겨 달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창가 침대로 옮겨 가게 되자 도우미들이 떠난 후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의외로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맞은 편 건물의 회색 담벼락 밖에는 말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는 창가 환자의 스토리가 자기를 위로하기 위한 그의 섬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미안했을까요? 얼마나 자신의 옹졸함이 후회되었을까요? 

무엇을 보고 사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관점에 따라서 감사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불평으로 일관하는 인생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벗어나 광야를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들은 지금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이 불평과 원망은 본래 선민이 아닌 섞여 사는 다른 인종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도 울고 불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절을 읽어 보실까요? “그들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 다른 인종들(출12:38-수많은 잡족들)은 출 애굽하는 이스라엘 편에 붙어 가는 것이 유익이라고 판단해서 이스라엘의 대열에 합류한 하나님을 모르는 족속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의 행진이 불편을 더해가자 그들에게서 먼저 불평과 원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서 불평과 원망을 배운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다를까요? 세상에게 감사와 기쁨을 가르쳐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세상에서 원망과 불평을 배우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우리도 여전히 인생을 사는 방식을 주님이 아닌 세상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래서 마침내 그 백성들에게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시 1절을 읽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아마 일종의 낙뇌 현상이 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천막도 옷가지도 다 불타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을 ‘다베라’라고 불렀습니다. <다 타버렸다>는 뜻입니다. <다 베린> 것입니다. 제발 정신 차리라는 하나님의 경계 신호였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주의 백성들이 원망과 불평의 늪에 빠진 원인-한 세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1.<과거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예 된 그들을 건지시고 자유와 구원을 주신 그 은혜 말입니다.

2.<현재의 축복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는 계속 내리고 있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좋은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더 좋은 메뉴로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한 것입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기다린 것이 한번 불타보는 일이었습니다. 불타보고 감사하시겠습니까? 알아서 감사를 하시겠습니까?

3.<미래의 전망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소간 불편하고 다소간 고통스러움은 있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나안에 빨리 도달하지 못한다고(‘가나안’을 ‘안나가’로 읽은 때문?) 가나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가나안으로 갈수 없다는 평범한 상식을 망각하고 너무 쉽게 가나안의 꿈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해결은 무엇입니까? 의외로 본문이 제시하는 해답은 단순합니다. 다시 우리의 과거로 돌아가 은혜를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던 그 감사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는 축복에 감사하고 자족할수 있어야 합니다. 

딤전 6:8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을 묵상해 보십시오. 본문의 6절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핑계이지요. 8절은 만나가 얼마나 좋은 식품인가를 증명합니다. “그 맛이 기름섞은 과자 맛 같더라” 

그리고 9절은 그 만나가 그 밤에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만나의 축복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이스라엘 백성이 거두어야 했던 것은 만나와 함께 감사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것이 잃어지고 불타버린 그 이튿날 이스라엘은 비로소 만나를 주신 축복을 감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찬양하며 가나안을 향한 행진을 지속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에 우리 교회도 지금 전 세계 80개국 600만의 사람들에서 진행 중인 <불평없이 살아보기>(불평 제로 프로젝트)캠페인에 동참을 선언하고자 합니다.(오늘 오전 현재 612만 8천 77명이 참여)이 운동은 미국 캔사스 시의 200여명 모이는 작은 교회에서 시작된 캠페인입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윌 보웬 목사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고 목사이면서도 불평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는 자신의 변화를 위해 이 간단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보라색 고무 밴드를 손목에 차고 있다가 불평할 때마다 다른 손목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지적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불평에 익숙한 사람들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21일만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살면 이 운동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21일은 무슨 일이 우리에게 습관으로 정착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21일만 불평안하고 살면 우리는 이 도전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이 성공하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4-8개월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서서히 우리의 삶의 패턴이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우리는 4가지 단계를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1)의식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단계 (2)의식하면서 불평하는 단계 (3)의식하면서 불평하지 않는 단계 (4)의식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앞으로 홈 페이지에 <불평 제로 도전 간증코너>를 신설할 것입니다. 성공담과 실패담을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수요 집회와 목장 모임에서도 자주 이 간증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내년 추수 감사절 이 습관에 성공한 것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축하와 상급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불평 없이 세상이 어떻게 바꾸어지느냐고 하실 분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단순한 불평객이 아니라, 불평을 비전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입니다. 불평의 마음이 들거든 그것을 비전의 언어로 바꾸어 보십시오. 예컨대 말틴 루터 킹 목사는 당시 흑인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불평하며 백인들에 대한 미움을 선동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역사를 바꾸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불평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에서 미시시피와 앨라바마에 이르기까지 옛 노예의 아들들이 옛 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입니다.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 자매처럼 손을 잡고 피부 색깔 대신 인격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며 평가를 받게 되는 꿈입니다.> 그 꿈이 오늘 날 백인 유권자들이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게 표를 던져 흑인 대통령과 흑인 퍼스트 레이디를 모시는 새 나라가 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불평제로 운동과 함께 비전언어 운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괜찮아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감사해요>
이 비전의 언어들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하게 하십시오. 비전 언어에는 주님의 마음과 기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억울하게 달리시면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준비하시며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떼며 잔을 나누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감사로 구원받은 빚진 인생들입니다. 

다시 살전 5:18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불평을 넘어선 감사의 축제로 약속의 땅을 행해 나아가는 사람들그것이 바로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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