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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셨고, 오실 주님 (눅 21: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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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고, 오실 주님 (눅 21:25~36)
  

시작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교회력으로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이 강단에서 교회력에 대하여 종종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력은 세상의 양력, 달력, 태양력과는 달리 교회의 한해의 circling이 되어있는 계절들을 말하는 것인데, 이 교회력은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을 중심하여서 한해의 circling이 되어 있고, 그리고 그 속에는 주일, 곧 작은 부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이 기본적으로 움직여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주간을 보면,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엿새동안 하나님이 일하시고 이레되는 날에 쉬셨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안식일이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구약의 개념이고, 그래서 오늘도 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을 토요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주일이라고 하는 한 주의 마지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앞부분에서 주일 그리고 한 주간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 작은 부활절이라 말할 수 있는 주님의 부활을 다시 회상하고 회상하는 주일을 중심으로 해 한 주간이 이루어지고, 그 한 주간이 52주로 이루어지는 일년을 이루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부활절이라고 하는 개념을 갖고 있는 이 주일은 여러분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소위 사순절동안,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거룩하고 경건하게 지내는 사순절동안, 40일 동안 주일은 count되지 않는 것을 여러분이 해마다 경험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집에 갖고 계신 달력이 어떤 것은,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되어있는 달력이 있고, 어떤 달력은 일월화수목금토 라고 되어있는 달력이 있습니다. 주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개념으로는 월화수목금토일이라고 되어 있는 달력은 걸면 안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또 그런 달력은 걸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집에 가셔서 보십시오. 

우리교회 달력은 어떻게 되어있는지 보십시오. 일월화수목금토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주일을 중심으로 하여 한 주간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일년의 교회력은 부활절을 중심으로 하여 한 circling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이 중심이면서도 한 해의 출발점은 부활절이 아니라, 성탄절이 아니라, 대림절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다리는 그런 의미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보의 뒤편을 보시면 함께 나누는 소식에 대림절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대림절, 대강절, 강림절이라 불리는 성탄절 네 주간을 대림절이라 통일하겠습니다. ‘주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절기’란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Advent입니다. 

성탄절 전 4주간, 오늘은 촛불이 하나가 켜져 있죠. 이게 다음 주는 둘, 셋, 네 개가 되면 그 주에 성탄절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유난히 대림절에 한자를 넣었습니다. 이 한 자를 보시면 대(待)는 기다릴 대, 림(臨)은 임할 임.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절기다 그런 의미입니다. 대림절, 대강절, 강림절 다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인데, 우리 교회에서는 대림절이라고 통일하겠다는 것입니다. 

감리교에서는 강림절이라고 통일하여 쓰고 있는데, 우리교회도 작년까지는 강림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6월 첫 번째 주간이 되면 성령강림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대부분이 헷갈려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말은 하지 않아도 그것과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강림절이라고 하는 것이 따로 있기에 이 강림절이라고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겠다. 그리고 대강절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의 느낌이 좋지 않아요. 어떻게 대강 대강 지나가는 것 같아서, 대림절이라 임하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라 통일하여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몸 말

라틴어에서 시간 개념을 보여주는 중요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futura인데 이는 과거->현재->미래로 진행되는 시간으로서, 영어단어의 future(미래)의 어원이 된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adventus이며 이는 미래->현재->과거로 진행되는 시간, 즉 미래로부터 오고 있는 어떤 사건이 현재의 우리를 규정하여 과거로 흘러가는 일련의 시간의 침투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시간의 역순을 나타내는 라틴어 adventus가 대림절을 가리키는 영어단어인 Advent의 어원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림절은 이런 시간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보통의 시간 개념 현상은 어제의 실패나 아픔 때문에 오늘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라면 Advent는 내일 소풍갈 일 때문에, 골프 치는 사람은 내일 골프칠 일로 오늘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하여 잠을 못자는 현상이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미래에 오늘의 나를 개방시켜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 속에서 나 자신이 조명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잠을 못자더라도 어제의 일이 아닌 오는 일에 의해서 잠을 설쳐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은 미래로부터 현재로 다가오고 있는 현상을 인지하라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일원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 중에 곤고하리라.’ 얼마 전 ‘해운대’란 영화가 관심을 몰고 갔습니다. 그 영화를 보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상에, 그것도 최근에 그와 유사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에 있었던 ‘쓰나미’현상을 모두 보았습니다. 25절의 말씀을 십 년 전만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모두 설명 없이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이 땅에 종말이 오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란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는 당시에 사람들은 이해하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다시 말씀하십니다. 2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눅 21:29-31). 쉽지 않습니까? 우리도 짙푸르던 나무가 색깔이 변하여 단풍이 되면 가을이 왔구나 하고 그 일이 낙엽이 되어 사라지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하여 예민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 34절에 보면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없이 살다보면 가을이 와도 낙엽이 져도 별 생각없이 시간은 지나, 어느덧 추운 겨울에 움추려 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8절에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일어나 머리를 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전의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진’것과 대조적 표현입니다. 생활의 염려로 땅만 보고, 세상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들고 주님을 바라보고 펼쳐지는 미래를 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Adventus를 설명할 때 말했듯이 미래로부터 펼쳐지는 것에 나를 개방하여 그것으로부터 나를 투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가올 일은 심판이요, 멸망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실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희망으로, 소망을 품고 기다립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약속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속된 메시야는 오셨고, 그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날이 오고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냥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도 우리 교회 정권사님의 딸 이 결혼을 하였습니다. 내일 시집갈 신부가 떨리고 설레는 마음은 말할 것 없거니와 그냥 있을 수 없잖아요. 모르긴 해도, 피부 관리도 하고 옷도 준비하고, 머리도 하고, 준비할게 한 둘이 아니지요. 심지어 오래전부터 다이어트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 어머니는 왜 다이어트를 하는 겁니까? 아무튼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8절에 보면,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더 구체적으로는 36절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이T으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가오는 마지막 때와 그때 오실 주님을 맞을 부끄러움 없는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오심을 믿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자, 이제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시 오실 주님과 이미 오신 주님, 구체적으로 성탄을 기다리는 지금, 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대림절의 의미를 설정해야겠습니다. 부활절을 기다리는 사순절이 자리한 계절이 봄 인 것과 관련해,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은 ‘겨울철의 사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은 대림절을 보내는 성도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대속이기에 사순절을 지키며 나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나심 그 자체도 속죄제물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죄악 때문이기에 우리는 기쁜 성탄을 앞두고 감사와 감격 속에서 참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림절 이 계절에 먼저 참회하며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신 주님으로 확신을 갖고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복음과 구원처럼 오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과 영생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실 주님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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