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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 우선입니다 (요 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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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우선입니다 (요 5:10~18)  
 
 
1. 작년에 모 국회의원이 여선생님들의 신상비하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1등 신붓감은 이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 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의 의도는 여선생님들의 수입이 괜찮아서 인기가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외모와 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보는 1등 신랑감도 비슷할 것입니다. 키가 180cm 안되면 루저남(실패자) 이라고 했다가 네티즌들의 엄청난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돈 잘 버는 증권맨들이 신랑감 1등이라고들 합니다. 남자들 사이에는 “사랑이 밥 먹여주나” 라는 말도 있습니다. 

<만화보기>
“남자는 밥이 우선이다. 사랑은 그 다음 순위이다.” 
이 말을 확장하여, 친구가 밥 먹여주나, 정치가 밥 먹여주나, 애국이 밥 먹여주나, 종교가 밥 먹여주나, 하나님이 밥 먹여주나 까지 나갑니다. 일이 밥 먹여주고, 직장이 밥 먹여준다고 합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밥 먹여주는 것 즉 경제, 돈 버는 것 밖에 없습니다. 경제만 잘 되면 최고라는 그릇된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모르는 소리입니다. 사랑이 밥 먹여줍니다. 하나님이 밥 먹여줍니다. 사랑이 없으면 마음이 병듭니다. 영혼이 시들시들해져갑니다. 하나님 없이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호흡을 거두어 가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2. 2차 대전 후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산을 하나 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연합군과 결연이 되어 시설도 좋고 영양도 듬뿍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고아원은 비바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설과 영양이 좋은 쪽의 어린이 사망률이 환경이 좋지 않는 쪽보다 60%나 높았습니다. 상식에 위배된 이 결과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연구 결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쟁 중에 세 아이를 잃은 40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시설이 나쁜 쪽의 고아원을 찾아들었습니다. 이 어머니가 고아들을 자기 자식처럼 안아주고 얼러주길 수년간 계속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 의문이 풀렸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배어나오는 따스한 사랑이 아이들의 건강과 생명에 불가결의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사람에게는 물질보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3. 오늘 성경말씀은 안식일에 38년 동안 앓아온 병을 고침받은 한 사람과 관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베데스다란 못가에서 38년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 병자는 예수님께 병고침 받을만한 무슨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행도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남의 탓만 하고, 환경 탓만 했습니다. 

예수님께 병고침 받을만한 꺼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38년이란 긴 세월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이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이나 환경과는 관계없이 그냥 주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것이 사랑입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친 힘은 예수님의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엄마손이 약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제 배를 만지시면서 “엄마손이 약손이다, 엄마손이 약손이다” 라고 하시면 금방 시원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002년 영국의 과학잡지인 <네이처> 에는 엄마의 따뜻한 손이 아이의 신경조직을 자극해서 정서적 안정과 신체 발육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프리 허그(Free Hugs 안아주기)캠페인’ 이 있었습니다. 길에서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을 안아주는 운동입니다. 포옹은 가슴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며, 호흡을 나누는 것입니다. 포옹이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줄 수 있는 가장 쉬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영국의 BBC 인터넷판에서는 포옹을 하면 사람 사이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고 혈압도 낮아져서 심장병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포옹은 마음의 병을 치유해줍니다.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우리교회도 예배마친 후에 형제 자매들과 사랑의 포옹을 합니다. 약간 낯설기도 하지만, 포옹을 해보십시오. 가슴이 따뜻해지고 사랑을 느끼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사랑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4.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사랑의 행위를 무시하는 유대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법과 원칙, 규정을 더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친 사랑의 사건은 안식일에 일어났습니다.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38년 동안 병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나서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누가 그렇게 고쳐주었는데.’ 놀라워하며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판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기쁨과 감사가 넘치지만, 딱딱한 법과 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기쁨과 감사는커녕 도리어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안식일법은 아주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그 법에는 안식일에는 사람이나 그의 종이나 짐승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일이냐에 대한 규정을 39가지나 만들어 지켰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랍비들은 안식일에는 옷에 바늘을 지니고 다녀도 안식일법을 어겼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틑니를 하거나 목발을 집고 다닌 것도 문제 삼곤 했답니다(바클레이 요한복음주석). 

모든 법에는 법 정신이 있습니다. 법을 만들 때 왜, 무슨 목적으로 이 법을 만드는지와 같은 기본 정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법의 기본 정신은 생명과 사랑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법입니다. 법의 원래 정신이 사람을 구속하고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과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정신을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법 정신을 망각하고 법을 집행하는 것은 잘못된 법 집행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법을 지키느라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사랑의 정신을 망각해버렸습니다. 안식일법은 사람을 위하여 만든 법입니다. 365일 노동만 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하니까, 일주일에 하루는 쉬라고 안식일법을 만드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막2:27)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법으로 따지면, 우리 모두는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법으로 따지면, 38년된 병자는 도무지 나을 수 없었습니다. 14절에 예수님께서 그 병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면, 이 병자는 율법을 범한 죄를 지은 사람인 것입니다. 죄값으로 영원히 병으로 고통당하다가 죽어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바로 예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의 죄를 용서해준 것입니다. 사랑이 그의 병을 고쳐준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랑은 법을 뛰어넘습니다. 사랑이 법보다 우선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법입니다. 사랑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다 높은 분이 안 계시듯이, 사랑보다 높은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합니다.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국제적인 NGO인 <국경없는 의사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인종, 종교, 정치, 신념, 사상, 이데올로기, 국경을 뛰어넘어 재난당한 사람들,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 가난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찾아가서 봉사합니다. 적십자사는 전쟁터에서 적과 아군의 구별없이 부상병들을 치료해줍니다. 사랑이 기본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적과 아군의 벽을 뛰어넘습니다. 사랑은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라는 사상의 벽을 뛰어넘습니다. 사랑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5. 유대인들이 병고침 받은 사람에게 “너를 낫게 한 사람이 누구냐?” 고 물었습니다. 나중에 안식일에 이 사람을 낫게 한 사람이 예수님인줄 알고 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7절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그럼,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셨다는 데 무슨 일을 하셨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필로라는 유명한 유대인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의 속성은 타는 것이고 눈의 속성은 차갑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속성은 일하는 것이다.”
다른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식일에도 태양이 비치고, 강물은 흐른다. 삶과 죽음의 과정은 안식일에도 계속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안식일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 사랑을 베푸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 사랑, 자비, 긍휼을 베푸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랑은 안식일에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 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도 계속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6. 마지막으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이 가득한 예수님을 몰라 봤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니까, 화가 치밀어 올라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눈에는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도 압니다. 옆 사람을 보십시오. 형제 자매들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이 보입니까? 아마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그 분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렇게 믿으면 느껴집니다. 사랑이 느껴지고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천하를 얻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제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옵소서. 제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부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사랑으로 형제 자매를 섬기고 교회를 섬기게 하옵소서.”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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