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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욕심, 죄, 사망. (약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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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죄, 사망. (약 1:12~15)


영락교회 부목사 시절 모든 부목사들이 주일날 성경공부 반을 하나씩 맡아서 인도하였었습니다. 워낙 교인들이 많아보니 조금만 두드러져도 교인들이 몰리는 일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제 성경공부 반에도 교인들이 많이 몰려왔습니다. 강의하는 옆자리까지 교인들이 가득차게 되었고 어느 날 드디어 교실의 창문을 뜯었습니다. 교인들이 복도에서까지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김동호 목사 성경공부 반은 창문을 뜯었다더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소문 때문에 34살 어린 나이에 담임목사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직공원 쪽에 있는 승동교회였습니다. 당시 승동교회는 분쟁으로 인해 일부 교인들이 분립해 나간 교회였고 주일 장년 출석이 150명 정도 되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선배들과 동료들이 말렸습니다. 제가 너무 서둔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차분히 기다리면 좀 더 좋고 큰 교회의 청빙도 받을 수 있을 터인데 아직 30대 초반인데 왜 그렇게 서둘러 싸워서 깨진 교회, 그리고 주변여건도 목회하기 쉽지 않은 교회를 가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 속에는 ‘내가 너냐?’ ‘너는 안 돼 그러나 나는 돼’ 라는 아주 교만한 생각이 들곤 했었습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이 있으니까 누가가도 될 만한 교회는 가기 싫었습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으로 1984년 6월 초 승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가자마자 제가 한 일은 교인배가 운동이었습니다. 연말까지 출석교인을 300명으로 만들자는 것이 제가 담임목사가 되어 한 첫 번째 일이었습니다. 교인들도 좋아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상처로 쳐져 있던 교회에 젊은 목사가 오더니 오자마자 패기 있게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하여 열심을 내니 교인들의 사기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순조롭게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말이 되면 아마 별 큰 문제없이 교회는 배가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 후 기도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300명이냐?’ 당황하였습니다. 질문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데 왜 하나님이 저렇게 부정적이시고 공격적이신 것일까가 의문이었습니다. 당황하여 다시 한 번 교인 배가 운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인배가 운동이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였고 교회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너냐?’라는 내 속 마음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제 마음에 있던 생각이 소명을 가장한 야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장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배가 운동을 포기하였습니다. 다시는 교회의 수적인 성장을 목회의 목표로 삼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자신에게 맹세하였습니다. 당시 승동교회의 150명 성도는 내 눈에 차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서 창문을 뜯었던 목사인데 겨우 150명 출석하는 교회를 할 사람은 아니라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평생 150명 교인 행복하게 해 주어야지....’

일 년 쯤 지났을 때입니다. 신문기자를 하던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를 믿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동안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사람이 변합디다. 아무개 집사도 변했고, 아무개 집사도 변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말 할렐루야였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을 만들고 제가 우리 직원들에게 첫 번째로 부탁한 것은 재단을 1등가는 재단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재단의 목표로 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단과 목적이 바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재단의 목표는 탈북자와 가난한 빈민들의 자활입니다. 그런데 재단의 성적을 목적을 삼게 되면 재단의 목적인 탈북자와 빈민들은 재단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재단이 탈북자를 위하여 존재하게 되지 않고 탈북자와 빈들이 재단을 위하여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단은 성장하여 큰 재단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아무쓸데 없는 재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재단이 아니라 나쁘게 말하면,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가난한 이웃을 이용해 먹는 나쁜 재단이 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가 소명과 야망을 구별하지 못하여 교회의 성장을 목표로 목회하게 되면 수단과 목적이 도치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고도의 수입니다. 교회 자체가 인간적인 야망 때문에 목적이 되는 순간 교회는 교회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쓸데 없는, 다시 말해 교회 본래의 목적과 소명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흥과 성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수단과 목적이 도치된 쓸데 없는 성장은 결국 성장의 장해요인이 됩니다. 사람들은 교회 본래의 사명과 목적을 상실하고 교회 자체에만 집중하는 교회에 동감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핵심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동감을 얻어 냄입니다. 그것은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의 동감을 얻는 기업은 성장하고 소비자의 동감과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기업은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적 고객인 세상의 동감과 공감을 얻지 못하는 교회는 결국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가 몰락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전례를 보면서도 우리 한국교회가 열심히 지금 그 뒤를 좇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장 속에 있는 패망의 인자인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스포츠 강국 중에 하나입니다. 옛날에는 권투와 레슬링과 같은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종목에 강하더니 요즘은 수영, 휘겨 스케이트 그리고 골프와 같은 선진국형 스포츠에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골프는, 그 중에서도 여자 골프는 완전히 우리 한국이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LPGA는 우승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우리 한국 선수들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우승을 하니 관심을 가지고 가끔 골프 게임을 시청합니다. 골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방향(direction)과 힘(power)입니다. 방향성은 좋은데 힘이 약해도 안 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힘은 좋은데 방향성이 틀려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골프를 잘 치려면 임팩트가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임팩트란 골프채가 공에 맞는 순간에 발생하는 강한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임팩트가 좋아도 방향이 정확하지 않으면 공은 오른 쪽으로 나가거나 왼 쪽으로 나가 아웃이 됩니다. OB가 됩니다. 그러면 결국 벌점을 먹고 게임을 잃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교회가 요즘 새 예배당 건축 때문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하여 교회가 써야 할 재정의 규모가 2,500억 원 가까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한 교회가 자신의 예배당을 위하여 2,500 억 원이라고 하는 예산을 세울 수 있다는데 우선 사람들은 놀랍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교회의 강한 임팩트를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임팩트는 좋은데 방향성이 잘못되어 OB가 나는 것이 아닌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공감과 동감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 교회가 2,500억 규모의 예배당을 지어야만 할 형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무조건 그 교회가 그렇게 큰 예배당을 짓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예배당 건축은 교회의 여러 가지 목표와 목적 중에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와 목적은 분명 아닙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가장 큰 목표와 목적을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쓰고, 보다 낮은 수준의 목표와 목적을 위하여서는 적은 돈을 씁니다.

예배당 건축은 교회의 제 일 가는 사명일 수 없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형교회의 문제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그 교회가 어떤 목적에도 사용해 본 일이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을 교회의 몇 번째 목표일 수 있는 일에 투입하려고 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무시무시한 집중 된 힘이 예배당 건축에만 발휘된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공감과 동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예배당 건축을 하면서 힘들지만 1,000 억 정도를 예배당 건축이 아닌 보다 중요한 교회의 사명과 목적을 위하여 세상에 내어 놓는다면 아마 사람들은 그 교회가 그 엄청난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시비를 걸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2,500 억 원 짜리 예배당을 건축한 교회가 앞으로 세상을 위하여 5,000억 짜리 프로잭트를 구상하고 그것에 도전하려 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그 교회 예배당 건축을 도우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까지로는 임팩트는 좋은데 (공포를 느낄만큼) 그러나 방향성은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OB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은 바로 그와 같은 OB를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히브리어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계속 OB를 낸다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세상의 공감과 동감을 얻지 못하여 계속 쇠퇴하게 되고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다면 그 상당한 책임을 그 교회가 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설교를 제가 어느 큰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설교로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그 대형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대개 다 비슷한 유형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서는 엄청난 힘을 쓰지만 정작 그 힘을 그 힘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위해서는 잘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사업을 하고, 직장을 생활을 합니다. 그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방향성입니다. aim을 어디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에임을 야망으로 할꺼냐 아니면 소명으로 할꺼냐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죄의 뿌리는 욕심입니다. 그 욕심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향성에 치명타를 가합니다. 욕심은 언제나 자신이 목적입니다. 자신이 목적이 됨으로 정말로 중요한 삶의 목적을 상실하게 합니다. 잊어버리게 합니다. 관심 없게 합니다. 욕심 때문에 성장하고 발전하지만 방향이 잘못되어 쓸데 없는 성장과 발전이 됩니다. 인생 OB가 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중요한 게임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오늘 본문은 아주 간단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멘.

소명을 가장한 야망도 문제입니다만 야망을 버리려다가 소명을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골프는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임팩트도 중요합니다. 타이거 우즈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은 대개 드라이버의 비거리가 엄청나게 깁니다. 저는 교회를 분립하였지만 저는 아직도 대형교회를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한 목표를 설정한 후 그것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는 엄청난 임팩트를 대형교회는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가 에임을 바로 하여 장타를 페어웨이에 올릴 수 있다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고 한국 교회의 전체적인 부흥과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소명까지도 야망으로 인식하고 모든 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과 높은 사람이 되는 것 자체를 죄악시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힘이 강한 것을 죄라고 하지 않고 과녁을 벗어난 것을 (하마르티아) 죄라고 합니다. 그리고 욕심이 바로 우리의 과녁 즉 삶의 목표를 바꾸어 OB를 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그 욕심이 과녁을 빗나가게 하여 (죄) 결국 게임을 잃게 할 것입니다. (사망) 그렇다고 무조건 모든 욕심을 다 버리면 힘이 없게 되어 아무리 과녁을 잘 조준하였다고 하여도 과녁에 미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도 벌고, 열심히 출세도 하여 힘을 기르지만 그 목적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늘 마음 아파하시는 가난하고 어려운 우리의 이웃들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욕심을 버리지 말고 바꾸십시다. 욕심의 방향을 바꾸시면 됩니다. 욕심의 방향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바꾸십시다. 저는 하나님을 목적으로 한 욕심을 의욕이라고 부릅니다. 義慾이라고 부릅니다. 욕심을 버리면 사람은 무기력한 사람이 됩니다. 욕심이 삶의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방향만 바꾸면 됩니다. 야망을 소명으로만 바꾸면 됩니다. 사람들은 야망을 위하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는 소명을 위하여 공부하고 출세하고 돈을 벌고 성공하면 됩니다.

소명을 가장한 야망에도 속지 말고, 야망을 버린다고 소명까지 버리게 하는 사탄의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말고 강한 임팩트와 방향성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참 된 의미와 성공과 승리를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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