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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 (골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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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와 비밀 (골 2:1~5)


우리나라 사람은, 명품을 정말 좋아한다. 명품을 좋아하다 보니까, 명품을 모방한 가짜, 짝퉁들이 판치게 되었다. 길거리 제품은 짝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명품은 좋고, 비싸고, 귀하고, 돈이 되기에, 모조품을 만들어서 팔게 된다. 짝퉁은 명품과 상표가 똑같다. 

외관상으로는 진짜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용하다보면, 바느질이 다르고, 재질이 다르고, 이내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짜는 진짜를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진짜와 같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구입한 사람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든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복음은 명품 중의 명품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면,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얼마나 뛰어난 가치가 있는가? 

복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 그 가치를 따진다면, 세상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다. 감히 샤넬이나 루이비통에 비할 바가 안 된다. 그러니까 짝퉁들이 많다. 따라서 복음을 가장한 이단들이, 너무 많을 수밖에 없다. 
짝퉁 물건에 속으면, 돈을 잃는 것이지만, 짝퉁 복음에 속으면,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 가짜는 진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생명력이 없다. 영향력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짜복음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진짜 성도가 되어야 한다. 

갈수록 예배당은 많아지고, 목사들도 많아지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지는데, 왜 세상은 더 문제가 많아지고, 타락할까? 그 이유는 가짜가 많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 교회에도, 명품 복음을 가장한 짝퉁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가짜 이단이 있었음을 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가짜 복음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며, 명품 복음을 구별하는 법을 말씀하고 있다. 그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이, 교회에 슬그머니 들어왔기에, 이들은 분별하는 법을 깨닫게 하려고 한다. 

그러면 가짜 복음, 짝퉁 복음은 어떤 모습일까? 비슷했기에 같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인 곳에서 달랐다.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하였다. 
짝퉁은 무엇을 해야만 구원받는다고 하기에, 구원의 확신을 흔들기에, 마음에 평안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고 교만하게 말하기에, 사랑 안에서, 연합되지 못한다. 자꾸 분열을 일으킨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짝퉁과 진품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지혜임을 말한다.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했다. 여기서 지혜와 지식을 강조했는데, 영지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영적 비밀을 아는 지식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양, 지식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지식이 무엇을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지식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적용능력 또는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용되지 않는 지식은 소용없다. 따라서 지식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구해야 할 참된 지혜와 지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이다. 

1.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2)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 가장 위대한 지혜와 지식이다. 글을 읽을 때, 아무리 짧은 글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주제가 있다. 수필이든 소설이든 주제를 모르면, 주제 파악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글을 읽어도 소용없다. 성경에도 주제가 있다. 성경의 주제는 무엇인가?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읽고 있었다.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 증언한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주인공도 그리스도다. 성경을 한 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책이다. 창세기-요한계시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벌겋게 물들어 있는 책이다. 

성경을 읽다가,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예수는 구원자요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구별하여 세운자라는 말이다. (창3장) 여자의 후손이 예수님이다. 가죽옷을 지어 입힘은,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부끄러운 죄를 가려주셨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온다. (창6장)에 노아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후, 홍수가 났다. 그때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 살았고,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다. (출12장)을 보면, 유월절 이야기가 나온다. 유월절 어린양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다(요1:29). 

(민21장)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불평을 했다. 그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서, 백성들을 물게 하셨다.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게 되자,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게 하셔서, 누구든지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 살게 하셨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게 하셨다. 죄 때문에 다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보게 하셔서, 사람들을 살리셨다(요3:16). (수20장) 도피성이 나온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안으로 도망하면 살게 되었다. 이 역시 예수님의 모형이다. 

(사53장)에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여기에서 ‘그’는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데, 그냥 보내셨는가? 아니다. 

예를 들어, 제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최집사님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분이다. 제가 돈을 받으러, 미국에서 한국으로 직접 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저와 최집사님은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다. 그러면 제가 무턱대고 한국에 와서, 최집사님을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 미리 다 연락을 해놓을 것이다. “최집사님, 제가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도착하는, ○○비행기편으로 한국에 가려고 한다. “저는 한국에 혼자 갈 건데, 제 키는 182cm 정도 된다. 그 날에 검은 가방을 들고, 검은 양복을 입고 갈 것인데, 

저는 안경을 쓴 사람으로, 머리에 수술자국이 있다.…” 이런저런 인상착의도 말할 것이다. 그래야 공항에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한국에 오면서, 언제 도착하는지, 누구를 만나러 오는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오는지를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와서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수도 없거니와, 목적하는 일도 할 수 없다. 사전에 약속을 하고 오게 된다.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모양으로 오실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그냥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다.”고 하면, 사람들이 “하나님 오셨어요?”하겠는가? 그냥 좋은 말을 하고, 마음씨만 좋고, 기적만 행하면 하나님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제가 공항에서 최집사님을 만난다고 생각해 보라. 

내가 대머리가 아니라면, 그것만 알아 가지고, 어떻게 올바로 만날 수 있겠는가? 올바로 만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더 말하게 된다. 대머리가 백 명 중에서, 한 사람이라고 하면, 확률은 백 분의 일이다. 그리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천 명 중에 한 사람이라면, 

대머리이면서 애꾸눈일 확률은, 십만 분의 일이다. 그리고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이, 천 명 중에 한 사람이라면, 대머리이면서 애꾸눈이며 외팔이일 확률은, 일억 분의 일이다. 그리고 한쪽 다리마저 없는 사람이, 천 명 중의 한 사람이라면, 그 확률은 천억 분의 일이다. 

즉 대머리이면서, 애꾸눈이면서, 외팔이이면서,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은, 천억 명에 한 사람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런 정도의 인상을 가진 사람을, 공항에서 만나자고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만나려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나신다는 것과,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등의 약속들이, 구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족보로 오신다고 했는데(삼하22:51),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마1:1). 

(사7: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약속하셨다. 그 약속이 (마1:18)에 이루어졌다.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탄생지를 예언했는데, (마2:1)에서 이루어진다. 

(슥11:12)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서, 예수님을 판다고 예언했다. (마26:15) 그 예언도 성취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은 벌거벗은 몸으로 못 박히게 된다. 그때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갖는다고 예언되었다(시22:18). 이 예언도 (요19:24)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어떻게 오실 지, 상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여기에 대해서 수학자 보렐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확률로 계산하여 결론을 내렸다. 어떤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확률, 동정녀에게서 탄생할 확률, 그리고 다윗의 계보로 태어날 확률, 

또 은 30에 팔릴 수 있는 확률, 그 사람이 죽을 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을 확률, 또 그 사람의 옷을 제비뽑아서, 나눌 확률을 추정하여 계산했다. 그런 확률을 근거로 계산할 때,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중에, 8가지가 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미국의 텍사스주 전체에다, 동전을 30cm두께로 깔아놓은 후, 그 중에 표시된 동전 하나를 감추어놓고, 그것을 한 번에 찾아낼 수 있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찾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성경에 예언된 약속 중에, 8가지만 이루어져도, 그는 약속된 사람이라고 믿어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8가지만 맞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삼백 가지 이상 예언되어 있는데, 그 삼백 가지가 예수님에게 다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미리 약속하신, 그 분이 틀림없다. 공자가 메시아가 아닌 이유를 설명하면, 공자는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하나도 맞는 게 없다. 

석가모니가 메시아가 아닌 이유도, 마찬가지다. 만일 키가 150㎝되는 사람이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목사님에게 “내가 바로 그 사업가다.”라고 하면서, “돈 10억을 달라.”고 한다면, 내줄 수 있는가? 전화로 미리 이야기했던, 그 사람의 모습과 다르니까, 내줄 수 없다. 그 사람은 아니다. 

누가 기적만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메시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슨 능력만 베풀면, 마음씨만 좋으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바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인 이유는, 그분은 오신다는 약속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메시아임을, 목숨 걸고 증거 했다. 

오늘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많은 이단들이 있다. 이만희, 정명석, 문선명…, 왜 그들이 잘못되었는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적용해보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렇게 약속대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다. 

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엄청난 보화가 있다(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안에는, 온전한 구원을 얻는 지혜가 있다. 강건한 삶의 비결이 있다. 

부귀와 존귀가 그 안에 있다. 바울은 이 보화를 발견하고부터, 세상의 최고 학문까지도, 배설물로 여겼다(빌3:8). 그러면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이단들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하면 혼합주의 이단이다(골2:8-23). 

(1) 유대교적 요소 : 안상홍과 장길자를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나 안식교회처럼, 특정한 절기나 안식일 등을 지키고, 또 특정한 음식을 먹거나, 관습이나 할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절기는 예수님의 모형일 뿐이다.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2) 이방적인 요소 : 철학적인 특성을 가지고, 철학과 헛된 속임수라는 말로 묘사되었는데(2:8), 후에 영지주의로 꽃을 피운 사상들이다. 특별한 영적 지식이나, 영적 공식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자로, 지금의 구원파, 심리학, 실용주의와 같은 자들이다. 바울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하였다. 

(3) 위장된 그리스도적 요소 : 하나님과 천사를 만났다는 체험이나, 꿈과 환상, 예언을 통해, 계시를 받 
았다고 강조한다. 뉴에이지 사상과 같다.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중보자요,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는 심각한 사상으로, 신비주의자들을 말한다. 

(4) 금욕주의적 요소 :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는 자들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장할 때, 그 당시의 천주교회는 고행을 많이 강조했다. 과거에 루터도 고행을 통해, 죄 용서함을 받으려 한 적이 있었다. 로마를 방문하여, 베드로 계단이라는 곳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고행을 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차도 팔고, 멋진 집도 처분해서, 가진 재산 전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야지, 예수님처럼 가난한 중에,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를 금욕주의라고 한다. 하나님께 용서를 얻기 위해, 수녀나 수도사가 되어, 엄격한 자기 부인의 삶을 말한다. 

그러나 골로새서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충분하심을 말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되신다.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러나 이단들은 부족한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예수님 + α를 믿고 주장하는 집단이,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가 왜 잘못됐나? 예수님에게, 많이 섞었다. 

무엇을 섞으면 더 좋을듯한데, 왜 이단사상이 되는가? 예수님은 갈보리십자가 위에서, 구속사역을 성취하실 때, 승리를 선언하듯 “다 이루었다.”고 크게 외치셨다(요19:30). 구원 사역은 성취되고, 완성되었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면, 모든 영적인 원천을 갖게 된다. 모든 힘, 지혜, 위로, 기쁨 위로, 평안, 인생의 성취 등등, 모두 예수님께 달려있다. 그런데 잘못된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예를 들면, 신학은 점점 더 인본주의적으로 변화된다. 

그래서 초점이 하나님에서 사람으로 옮겨졌고, 사람들의 문제와 상담이, 예배와 전도를 대신하여, 교회들의 주요 프로그램이 되었다. 신학교에서 성경보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심리치료자가 설교자와 성경교사보다, 성도들의 삶에 더 유익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보다 새로운 것이 없고, 그리스도보다 깊은 것이 없고, 그리스도보다 높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하였다. 예수님으로 만족하시기 바란다. 

결론이다. 속지 말라(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단은 속인다. 짝퉁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복음을 말하고, 성경을 말했다. 비슷하다. 전혀 다른 것이 없는 것 같고, 육안으로 판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결정적인 곳에서 다르다. (딤후2:18)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런데 결정적으로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가르친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시나요? 

믿지 못하면 거기서 걸려서, 잘못된 짝퉁 복음을 가진 사람처럼 될 수 있다. 그 당시 헬라철학이 유행했다. 헬라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기에,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이원론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육체는 부활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영혼만 구원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육체가 부활함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의 기준은, 당시 철학사상에 근거해서 판단했다. 그러니까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육체의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고, 당연히 예수님도 육체적으로 부활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활했다고 했다. 부활을 말하니까, 비슷하다. 그러나 부활을 말하지만,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다. 그래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이미 예수님이 영적으로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앞으로 부활하지 않는다. 다만 죽으면 육체는 폐기되고, 영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가짜 복음이다. 그럴듯하고 비슷하지만, 끝이 다른, 짝퉁 복음이다. 신앙을 혼미하게 하는, 이단이 날뛰는 상황에서도, 골로새 성도들은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음으로, 바울에게 칭찬을 들었다.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때, 우리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닌 다른 데에, 신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 이 놀라우신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행하는 삶은, 말 그대로 축복 받은 삶이다. 

지혜와 능력이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주님과 함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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