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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쇠사슬에 매인 사신 (엡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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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 매인 사신  (엡 6:19~20) 
 
 
사신(使臣)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파송받은 사람입니다. 요즘 같으면 국가 간에 외교적 현안을 주요 임무로 하며 ‘대사’라는 직임을 가진 직업 외교관에 해당됩니다. 세기의 전도자 바울은 사신의 자격으로 로마에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를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신을 쇠사슬로 매는 나라는 없습니다. 

사신이 그 나라의 실정법을 어겼거나 본분을 이탈했을 때 추방시키는 경우는 있어도 인신을 구속하거나 형벌을 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쇠사슬에 매인 사신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상식 밖의 상황을 두고 바울 자신은 오히려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분입니다.

1. 하나님께 파송받은 사신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로마는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외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연히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대사가 파견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바울도 하나님께 파송받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입니다.

1) 우주적 대권을 가진 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선포하실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8:18).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를 뜻합니다. 똑같은 외교관의 신분이라도 파송한 나라와 보낸 사람의 비중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집니다. 요즘도 정치나 군사 또는 경제력이 막강한 나라는 그 대사의 위상과 영향력이 월등합니다. 

바울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받은 사신일 경우 세상의 어떤 나라 대사와도 비길 수 없는 특별한 신분과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의 명함에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갈 1:1).

2)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송되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요구와 권세에 따라서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여기에 어떤 불평이나 원망 없이 이를 승복하였습니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러 차례 설명하였습니다. 순서적으로 말하면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4). 또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은혜로 불러 주셨습니다(갈 1:15). 그것을 실행하기 위하여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그를 부르시고 굴복시켰습니다(행 9:4-6).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된 일정표에 따라서 되어지는 일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하면 할수록 제게는 가시채로 뒷발질 하는 것 같은 고통이 되었습니다(행 26:14). 그는 훗날 이와 같은 사실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딤전 1:12-13). 

3)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강조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중에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경우 예외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적을 위하여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당시 로마에 주재하는 많은 사신들은 모두다 신분의 보장과 특혜를 누리고 있었으나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과 신비로운 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신이 된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됩니다. 비록 쇠사슬에 매인 것처럼 열악한 환경과 힘든 상황에 놓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적과 사명 때문에 그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2. 특수한 목적의 사신입니다.

주재국의 대사들은 누구나 본국의 훈령에 따라서 자기의 소임을 수행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은 바울도 저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일에 신명을 걸었습니다.

1)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 하나님께서도 바울을 부르신 다음 공식적으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행 9:15). 그는 로마에 가기 전, 거기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나는 복음에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롬 1:14-15).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전도의 열정을 가진 바울에게 자유가 아닌 쇠사슬에 매이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근위병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높고 낮은 많은 사람에게 그침 없이 전도를 하였습니다(행 28:30-31).

2) 성경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채로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옥중서신(獄中書信)이라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비롯하여 그가 2차 투옥되어 죽음이 임박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록한 디모데후서까지 모두 쇠사슬에 매인 몸으로 로마에서 기록한 주옥같은 말씀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과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받는 계시문서이기 때문에 누가 기록했든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롬 16:26). 디모데후서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3)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입니다.

위대한 전도자요, 신학자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귀한 그릇입니다. 그는 성경 기록을 통하여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시켰고, 또 교회의 설립과 제자를 양성하고 교회를 관리하는 목회의 기준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는 바울이 가기 전에 이미 있었는데 이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체험을 한 사람들에 의하여 세워졌을 것으로 봅니다(행 2:10). 로마의 교회가 지상교회의 모교회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당시 세계의 수도로써의 그 비중이나 이후 교회사에 미친 영향을 볼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신으로 보내신 이유는 충분합니다. 특히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의 조직적인 박해에 의하여 완전히 박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 바울이 그곳에서 사역을 하며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해 주었습니다.

3. 특별한 방법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사신에게는 최상의 특권과 편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신인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채로 그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신체적인 얽매임 가운데서도 사명을 완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1) 신변보호의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마가 들끓는 죄악 세상에서 자기 백성이 마귀에게 유린당하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다윗은 수없이 많은 원수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그의 날개 아래 보호하신다고 하였습니다(시 17:8). 사도 바울의 경우 간 데마다 그를 죽이려는 무리가 도사리고 있어서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갔을 때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특공대가 40명이나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행 23:12-13).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말년에 그를 죄수의 신분으로 어디에서나 군인들의 감시 속에 보호를 받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갈 때 보병과 기병과 창군이 호위하였고(행 23:23),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갈 때는 백부장 율리오가 직접 호송하게 하였습니다(행 27:1).

2) 십자가의 삶을 뜻합니다.

세상 나라의 사신은 모든 특혜와 편리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지만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그의 종들은 십자가의 얽매임 속에 살아야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된 사람들에게 당부하신 유언입니다(마 16:24-25). 쇠사슬에 얽매인 채 근위병의 감시를 받는 사람은 자유를 속박당한 사람입니다. 무엇이나 자기의 욕구대로 행동할 수 없는 제약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평생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위하여 진력하는 사람은 세상의 유혹이나, 마음속의 정욕에 흔들릴 수 있는 여유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자기 육체에 찌르는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준 것도 이를 위한 안전장치로 여겼습니다(고후 12:7).

3) 하나님의 능력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쇠사슬에 매여 육체의 자유가 속박되었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은 더 강하게 작용합니다. 이와 같은 신비로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얽매임의 불편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9에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천부장의 영문에 갇혔을 때 주께서 자기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격려해 주었고(행 23:11), 그레데 해역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도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두려워 말라’고 하며 용기를 주었습니다(행 27:24). 로마 옥중에 있을 때에도 주께서 자기 곁에 서서 말씀마다 힘을 실어 주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딤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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