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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십시오 (롬 8: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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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십시오 (롬 8:26~27)

   
우리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는데, 히11:6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히11:6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다른 것은 보시지 않고 믿음만 보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어야 영적인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아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아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 모두 다 허망한 것들뿐입니다.  세상에 지식으로 미련해졌습니다.  

롬1:21-22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따라 육신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갈 수도 있고, 영을 따라 영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롬8:5의 말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갈 수도 있고, 영을 따라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살고 싶습니까?  이제는 육신을 따라 살던 삶을 정리하고, 영을 따르겠습니까?

주님은 요3:6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육신만 따르고, 육신만 위해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이란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창2:7에 잘 나와 있습니다.  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기운이라고 했는데, 우리 성경에는 생기라고 하셨습니다.  육적인 존재인데, 생기를 불어넣어주시므로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인데, 하나님과 연결되었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존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영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로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나의 영혼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보셨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성령님의 사역이 아니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가지셨던 하나님이신데, 주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성령님을 보내어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 주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나의 모든 죄악을 대속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나야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난다는 말이요,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멸망 받을 죄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여 구원받은 것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요3:3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요3:5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나를 대속하신 주님으로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죄를 씻음과 성령님의 임재로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물로 거듭나고 나서 성령으로 또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누구나 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알기 쉽게 하는 다른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후에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성령, 아들의 영, 양자의 영,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시므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까?  사도바울은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저렇게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으로 말씀하신 적도 있고, 성령을 보내어주시므로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갈4:6을 보면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이 아들의 영, 곧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롬8:14-15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 양자의 영, 곧 성령을 보내어주셨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역사를 동시적인 역사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자녀로 삼아주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어주셔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 아들의 영, 성령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사람의 지식으로,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입니까?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시 강조하는데, 하나님의 영, 성령을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하신 자녀요,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 받은 사람, 성령이 임재하시는 사람, 성령의 사람,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사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고 성령을 받았다거나, 소유하는 사람이 없고, 성령 받은 사람, 성령이 임재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구원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확신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롬8:16에서 “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2:3에서 다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전12:3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오직 한분이십니다.  성령 충만을 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며, 성령의 권능을 주시는 분도 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임재하신 성령님, 그 분 성령님이 역사하실 뿐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역사하시는 모습이 다양하기에, 그런 성령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어떤 감화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한 인격을 가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고전12:13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죄를 씻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한 성령, 한 성령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한 분 성령님이십니다.  한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로마서8장을 잘 연구해보면,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성령 안에 거하는 것,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과 성령님을 모신 것은 동일합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거하고 계십니다.  누구나 성령을 소유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우리를 성전 삼고 우리 안에서 성화의 사역을 이루어가십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 능력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고전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성령의 사람으로 자라나게 합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게 하십니다.  또 하나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화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함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로 타락한 본성의 악한 소욕을 제어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열매를 맺게 하고 성령의 사람으로 강하고 능력 있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마지막 우리의 죽을 몸도 살려주십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은 우리의 죽을 몸도 살려주십니다. 당신이 성전 삼으시고 거하시던 육체이기에 마지막 부활 때에 육신을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마지막 날에 살려주시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모신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롬8:11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무궁무진한 세계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보다 더 크고 놀라운 세계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구원은 작은 구원이 아니라, 큰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구원의 무궁무진한 세계가 얼마나 놀랍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세계입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수천 배는 더 크고 놀라운 세계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인격성을 믿기에 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전 과정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다른 면으로도 역사하시기에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또 다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요는 우리가 성령님을 얼마나 사모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성령의 사람으로 사느냐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부르고, 함께 대화를 나누자고 부탁드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려는 사람에게는 감동적으로 역사하시지만, 모셔만 두고 부르지 않으면 성령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성령님을 자주자주 모시고 말씀을 나누고,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여야 성령님이 역사십니다.   성령님이라는 말씀만 드려도 성령님은 좋아하시고 함께 살아가고 위해서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부르고 사모하고, 강론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천로역정을 쓰신 영국의 비국교파 설교가인 존 번연(John Bunyan, 1628. 11. 28-1688. 8. 31)이 영국성공회 국교회파의 박해로 1660년 비밀집회 금지령 위반죄로 체포되어, 12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부인과 가족을 보시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존 번연은 고마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다가 돌아와 버렸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호의는 고맙지만 성령이 인도하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이 갇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간수장은 “이제 제가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을 테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셔도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다면 옥사장과 존 번연은 함께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순간순간 어려움에 갇힐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어떤 어려움에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실패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종종 “성령세례와 충만”이라는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성령론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령을 받은 것을 나타내는 생생한 수사학적인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성령 세례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것으로 누구나 다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이 또 다시 성령 세례를 사모하여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과 성령세례는 동일한 것입니다.  성령은 한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과 성령세례를 주시는 성령님이 다른 성령님이 아니라고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시는 성령을 보내어주시고,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라고 하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롬8:26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육을 가진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힘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와주시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지만,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잘하는 기도입니다.

“말할 수 없는” 이라는 ‘알랄레토이스’라는 단어는 ‘말 없는’이라고 번역하여 무언의 간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어떤 학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혹은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방언기도’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모하는 이들로 하여금 방언으로 기도하게 하시며, 말의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세계는 무한한 세계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 주님을 대신하여 보냄을 받으신 주님의 영이십니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 성령받은 사람들은 모두다 성령을 따라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일, 영적인 분야,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민감해야 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아가야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 가지고 살아가지 말고, 육신을 좇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세계에 대하여 사모하면 영과 육 다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영을 좇아가든지, 아니면 육신대로 살아가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육을 즐기는 사람이든지, 성령을 기뻐하는 사람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사모하면서 성령님이 감동하시는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감동주시고 역사하시면 우리 속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집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입니다.  오늘도 성령님은 악한 영을 물리치고 죄악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을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님이 임재하시고 내주하시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령님과 의논하고,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말고, 성령님과 함께 동역하시고 동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워렌 위즈베는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사용하신다.”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에게 나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나를 사용하시라고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혀,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심히 약하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에게 얼마나 순종하느냐, 성령님을 얼마나 사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심령대부흥회를 통하여 은혜 받으시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시고, 성령이 기쁘게 주시는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오늘도 성령님은 우리로 능력 있게 하시고, 은사를 주시고, 권능을 주십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시고, 성령과 함께 기도하시는 중에  영력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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