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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받는 믿음 (갈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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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받는 믿음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이를 의로 여기시고 또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 중에도 가장 큰 복은 그를 믿음의 선조로 삼으신 것이며, 또한 그의 자손을 사막의 모래처럼 하늘의 뭇 별처럼 많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신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야 할 복 중에서도 가장 큰 복은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복입니다. 또한 영적인 분복, 즉 믿음으로 전도하고 낳은 자식들이 포도 열매처럼 주렁주렁 결실 맺는 복이 복 중의 복입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복 받는 믿음은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믿음입니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달력의 주일 표시는 모두 빨강색으로 되어 있는데, 빨강색은 모든 사람이 가던 길도, 하던 일도 모두 멈추라는 정지 표시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일과 주님을 위한 일 외에는 하지 말라는 적신호임을 알게하는 의미로 받기도 합니다. 주님의 일 외에 하던 세상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면 위험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력에 빨간 글씨로 되어 있는 주일은 세상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던 신자들이 하와이에 가서 노동을 하는데 주일을 잘 지키므로 농장 주인은 그것이 못마땅하여 심하게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외국에 와서 노예가 되었으니 예수나 잘 믿어야 한다고 동맹하여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말하기를 “주일에 일을 하지 않으려면 대신 매를 맞아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신자들은 일찍 주인을 찾아가서 “어서 때려 주시오. 주일예배에 가야겠소.”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이같이 열성으로 예배당에 가자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감동을 받아 주일을 잘 지키게 하고 자기도 예수를 믿고 교회까지 세웠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장로교회를 국교로 한 종교적인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일요일 곧 주일에는 상점 문은 물론이요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까지도 다 폐문한다고 합니다. 한번은 세계 관광협회에서 스코틀랜드의 관광협회에 관광단을 위하여 오락장소와 명문지의 문을 좀 열어달라고 요지의 발송된 서신이 전해온 것입니다. 그 때에 스코틀랜드의 일반 시민의 여론은 이를 거부할 뿐더러 반대 성명서를 발부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의미의 회답이 왔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일요일이면 영화관, 미술관, 운동장의 문을 닫으나 교회의 문은 열립니다. 만일 스코틀랜드를 정말 보고 싶은 사람과 참으로 스코틀랜드를 알고 싶은 사람은 영화관이나 미술관 또는 운동장이 아니라 교회에 와 주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스코틀랜드의 생활도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상해 선시 공사는 각종 공장과 각 판매부가 있어 5천명을 거느리고 일하는 세계적 대 회사였다합니다. 이 공사에서 총지배인으로 장정광씨를 초청할 때에 기독 신자인 장씨는 주일 휴업의 조건부로 승낙했다합니다. 공사로서는 하루 수만 원의 이해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바로 맞은 편에 영안 공사란 경쟁자가 있어서 심히 난처하였으나 장씨를 맞아들이기 위해서 주일 휴업을 하니 영안 공사는 기뻐했다합니다. 그러나 장씨가 입사하고 주일 휴업 후 8천명의 종업원들은 기뻐하며 6일간 성실히 일하므로 선시 공사의 성적이 영안 공사보다 훨씬 나았다고 합니다

복 받는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입니다

(신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경을 오해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옛날 평안도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교회 나온지는 꽤 오래됐는데 성경을 읽지 않고 설교도 듣는 둥 마는 둥 항상 졸기만 해서 마태복음을 찾으라면 구약에서 뒤적거리고 창세기를 찾으라면 신약에서 뒤적거리는 한 성도가 하루는 목사님이 말씀을 읽어야 된다고 강조를 하자 큰 맘을 먹고 읽기를 시작했는데 한번은 이 사람이 목사님에게 성경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목사님, 예수님께서 개고기를 참 좋아하셨나 봅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은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개를 기르긴 했지만 개고기는 먹지않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성도들이 킥킥거리면서 그 사람을 흉을 보는데 그런데 그는 성난 표정으로 성경을 뒤적거리더니 마태복음 16장 13절을 펼쳐 보이는 것이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보세요 성경에 분명히 이렇게 나와 있는데요” 하면서 구절을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밑줄을 그어 지명표시임을 나타내고 있는데도 이 사람은 평안도 사투리로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평안도 사투리로 [가이]는 개를 얘기하고 [사랴]는 사려고'의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예수님이 개고기를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온 유태나라의 개를 다 잡수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바다를 건너서 [가이 사랴]즉, 개를 사려고 빌립보 지방에까지 가셨을까하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참동안은 그 구절을 읽을 때는 꼭 이렇게 읽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개를 사러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그렇게 읽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일들도 그러 합니다.

한 할머니가 속이 아파 병원에 가셨습니다. 병명은 위(胃)가 안 좋은 것으로 나왔고 그래서 의사는 잔탁을 드시라는 처방을 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속만 안 좋으신 게 아니라 귀까지 안 좋아 잔탁을 장닭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할머니는 착실하게 의사선생님이 내려준 처방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가서 장닭을 큼지막한 것으로 사와서 이왕 먹을 것 인삼까지 넣어 푹 고아 먹었습니다. 안 그래도 속이 안 좋은데 기름진 닭에 인삼까지 넣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고 병이 오히려 더 악화되자 이 할머니 화가 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 선상님이 하란 대로 했는데 속이 더 아프니 어찌된 일이요?” 그러자 의사선생님, “ 드시란 약은 드셨습니까?” “하모!” “어떻게 드셨는데요?” “인삼을 넣어 푹 고아 먹었지!” 잔탁에 인삼을 넣어 고아먹었다니 기절할 일 아닌가요?

이 이야기를 인용한 목사님은 “나이 들어서 말씀보고 싶을 때 눈 어두워 못 보고, 귀 어두워 말씀 못 들고 한탄하지 말고 젊었을 때 성경 많이 일고 주님 일 부지런히 하십시오.” 하셨답니다.
말씀이 대단한 위력을 발휘 하기도 합니다. 

기가 막히도록 좋은 칼을 만드는 유명한 대장장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칼로 갑옷을 한칼에 두 조각낼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 대장장이를 불러 자신의 갑옷을 두 조각 내보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 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 대장장이는 칼을 단 한번 휘두르고는 칼집에 꽂았습니다. 왕이 다시 호통을 치려 하자 대장장이는 '왕이여 몸을 한번 흔들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몸을 흔들자 두 조각이 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왕은 놀라운 칼잡이의 실력 때문에 자신의 몸이 두 동강난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검의 위력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기를 만드시면 우리가 순간적으로 무언가 심오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윌리암 뮐러는 손이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잘린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병신이라고 멀리하고 흉을 보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뮐러 옆에는 항상 성경책이 있어서 희망과 용기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라서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진 것을 항상 감사하며 우편배달부를 했습니다. 불편한 몸이지만 그의 배달은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고된 배달이 끝나면 그는 주머니에서 성경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는 이 좋은 책이 모두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자신을 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영국 성서공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는 불구자에게 힘든 일이라고 거절했지만 성서를 보급시키고 싶은 그의 꿈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성서공회의 허락을 받고 부두노동자를 대상으로 성경 파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험악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처음에는 놀림을 받고 매를 맞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을 전하고자 하는 그의 정성이 노동자들에게도 전달되어 성경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노동자에게 성경을 보급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자 영국 성서공회는 그를 중국 선교사로 파송키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뮐러는 성경을 들고 낯선 중국 땅으로 떠났습니다. 힘겨운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팔았습니다. 중국에서도 그의 정성과 믿음은 받아들여져 성경책은 잘 팔렸습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뮐러는 장님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몸소 한문으로 된 점자를 만들었습니다. 북경에서 그는 장님에게 점자를 가르쳐 성경을 읽게 하였고, 마침내 장님학교까지 만들었습니다. 한쪽 팔만 가진 그가 주님의 은혜로 양팔을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한 것입니다.

말씀 중심할 때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1809년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주위에서는 이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미래를 내다 보고저녁 식사를 마친 후면 꼭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성경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아이가 아홉살 되던 해 어머니는 풍토병에 걸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숨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부자나 위인이 되기보다는 성경을 힘써 읽는 사람이 되라」 후에 이 아이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과 관심을 받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 이야기입니다. 

   복 받는 믿음은 시험을 참는 믿음입니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서양의 어머니들이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진주를 흔히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이 진주는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진주를 택했을까요? 그것은 진주의 생성과정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주는 '아비큘리데'라는 특수한 조개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굴속에 모래가 들어오면 굴은 '나카'라는 물질을 생성하여 모래알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나카가 많이 덮이면 진주가 큰 것이 되고 값이 비싸집니다. 이 나카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생성되기 때문에 진주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굴속에 모래가 들어오면 모든 모래가 진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카를 생성하여 모래를 코팅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모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래알을 무시하면 나카를 만드는 고생은 하지 않지만 결국은 모래 때문에 상처를 입고 병들어 죽어버립니다. 재미있지요? 굴이 모래를 맞이하여 나카를 생성하여 힘들더라도 진주를 만들든지, 아니면 모래알을 무시하다가 병들어 죽던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시련을 맞이하여 힘들더라도 건설적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할 것인지, 아니면 자포자기하여 실패한 삶을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시련 뒤에 복된 역사가 임합니다.

독일의 얼라피 박사는 우리가 매우 자주 이용하고 있는 약품을 발견하고는 606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왜 606호라고 했습니까? 606번째 실험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약 이름을 606호라고 붙였습니다. 600번 실험해도 안되었습니다. 605번 실험해도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아니했습니다. 에디슨은 어느 때는 한 가지 발명을 위해 일만 번이나 실험을 했다는데 그래도 흔들리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발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많은 시험과 환난이 있었지만 자기 자리를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손이 언제나 그와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에 중심의 심지를 보십니다. 마음을 보십니다. 일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시험이 오거나 어떠한 고난이 있을 지라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승리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은 재상이 왕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왕은 기름이 가득한 잔을 주면서 한 시간 안에 지시하는 거리를 돌아오라고 했다. 기름을 쏟거나 시간이 늦으면 엄벌에 처한다고 하며 칼을 든 군인이 뒤따르게 했습니다. 젊은 재상은 땀방울을 흘리며 기름을 쏟지 않고 제 시간 안에 도착했다. 왕은 만족한 듯 웃으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모퉁이 구두 가게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럼 쌀가게는?' '못 보았습니다' '그럼 가구점은?' '죄송합니다. 기름을 쏟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못 보았습니다' 그렇다. 맡은 일에 충성하다보면 시험에 들 겨를이 없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이 나이가 많았을 때 한 젊은이가 '선생님, 살아 오시는 동안 시험에 든 적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시험? 나는 평생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시험에 들 여가가 없었다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복된 믿음은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입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챨리 페이지는 직장도 없는 무일푼의 청년이었습니다. 하루는 거리를 지나다가 구세군의 가두전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찬송과 전도설교가 끝난후에 한 젊은 여성이 탬버린을 바구니 삼아 들고는 헌금을 걷으면서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이 페이지 앞에 왔을 때 페이지는 그녀에게, 자기는 헌금을 하고 싶으나 돈이 하나도 없고 실은 음식 사먹을 돈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자기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페이지에게 넘겨주는데 그것은 자기 돈 1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돈을 받으세요, 그 중 10센트를 여기에 헌금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수입이 있을 때마다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세요. 이렇게 평생동안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세요. 그러면 돈이 떨어져서 고생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페이지는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았고 그 중에서 10센트를 헌금했습니다. 

얼마후에 그는 곧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성의 말을 믿고 계속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을 때 챨스 페이지의 이름은 백만장자의 명단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께 십일조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병원을 지어서 바쳤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자선 사업도 하였다. 멋있는 출발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사역을 하시는 선교사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몽골교회에서 주일예배 때였습니다. 선교사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헌금을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한 성도님이 손을 높이 들더니 질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아무거나 십일조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요,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드리면 되는 겁니다.”성도님은 대단히 기뻐했습니다. 헌금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님이 큰 자루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헌금 바구니에 도저히 넣을 수 없었기 때문에 헌금바구니 옆에 두었는데 목사님은 그것이 무엇인가해서 자루를 풀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내용물은 다름 아닌 소똥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소똥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겨울이 되어 벽에 소똥을 바르면 아주 난방효과가 탁월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소똥은 8월 중순부터 6월초까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나라인 몽골에서는 땔감으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겨울을 나려면 적어도 26만 원 가량의 난방비가 필요한데 몽골에서 신입선생님의 월급이 4만 5천 원이니 땔감 비는 보통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정말 그 나라에서 소똥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소똥냄새가 교회를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함께 기도합시다.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이 성도님의 가정에 만 배의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놀라운 일은 다음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있는 모든 소들이 그 성도님 집 앞에 몰려와 볼일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소똥이 쌓여갔습니다. 그해 그 성도님은 엄청난 소똥덕분에 땔감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소똥은 이웃에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성도의 순수한 십일조 헌신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복된 믿음은 주를 앙모하는 믿음입니다.

(시 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63:1)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인간을 희망에 기초를 둔 존재로 정의하면서 “내 소유를 다 빼앗긴다 해도 나는 오직 한 가지, ‘희망’만은 가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합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군과 미군 포로 2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8,000명의 포로가 사망했는데, 대부분은 영양실조도, 질병도, 과로도 아닌 절망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전후 조사단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수백만 명의 유태인이 학살되었던 2차대전 당시 유태인들을 수감했던 한 지하 감옥의 벽에서 손톱으로 그린 다윗의 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춰오지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 된 사랑이 있는 것을 나는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우리는 이 글에서 극한 죽음의 공포와 뒤엉킨 어두움의 절망 속에서도 낙심치 않으며, 그 건너편에 존재하는 하나님과 승리를 바라보고 확신했던 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여서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습니다. 그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소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회가 복 받는 믿음으로 나아가되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믿음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 시험을 참는 믿음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 주를 앙모하는 믿음으로 복 받는 모두가 되고 영광 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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